뒤늦은 슬픔이 찾아올 때

by 심횬


이유 없이 울컥하는 날이 있다.

슬픈 영화를 본 것도 아니고,

서러운 일을 겪은 것도 아닌데

문득 마음이 휘청인다.

슬픔이 밀려오는 날.

뒤늦은 슬픔은

늘 조용히 찾아온다.

아무 소리도 없이,

마치 오래전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 쌓여 있다가

어느 틈에 조용히 흘러나오는 것처럼.

이런 슬픔이 이상했다.

왜 아무 일도 없는데 서러울까.

왜 평범한 날에

갑자기 울컥할까.

이제는 안다.

그건 ‘아무 일도 없어서’ 오는 슬픔이다.

바쁘지 않아서,

긴장하지 않아서,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어서

마음이 드디어 숨을 쉬는 순간.

숨이 길어질 때

그동안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조용히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뒤늦게 찾아온 슬픔은

마음이 회복을 시작했다는 증거다.

마음이 자신을 드러내도

안전하다고

안심한 것이다.

그래서 슬픔을 밀어내지 않는다.

“그래, 괜찮아.

지금 울어도 돼.”

뒤늦은 슬픔은

내 마음이 나에게 보내는

가장 순한 울음이다.


뒤늦은 슬픔과 담담하게 만나는 법

1. 이유를 캐묻지 않는다.
뒤늦은 슬픔 앞에서 우리는 자꾸 원인을 찾으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 때문인지, 언제부터였는지.
하지만 슬픔은 설명되기 전에 느껴져야 하는 감정이다. 이유를 묻는 대신 이렇게 말해본다. “지금은 슬퍼도 되는 시간인가 보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은 한 겹 가벼워진다.

2. 슬픔을 처리하려 들지 않는다.
뒤늦은 슬픔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없애야 할 감정도 아니다. 울음이 나오면 막지 않고, 조용해지면 억지로 붙잡지 않는다. 슬픔을 ‘관리’ 하지 않을 때 오히려 슬픔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3. 슬픔이 결국 지나간다는 것을 믿는다.
뒤늦은 슬픔이 찾아올 때 가장 무서운 건 이 감정이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는 불안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전의 수많은 슬픔도 결국은 지나갔다는 것을.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울고 난 뒤의 나는 조금 더 가벼워져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을 믿는 것만으로도 슬픔은 덜 아프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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