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Aug. 2023
웰컴 컬렉션의 Milk 전시가 웰메이드라고 당시 소문이 자자했었다. 전시 주제만 들어도 너무 흥미로울 것 같았고, 여긴 늘 전시를 잘 꾸리는 곳이라 기대를 하고 갔다. 결과적으로는 대만족. 역대급 전시였다. Informative 한데 그 정보들이 지루하거나 어렵거나 또는 지겨지 않고, 너무 색다르고 재밌었으며, 관객에게 다양한 영감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전시였다. 그 방식에 있어도 획일적이거나 억압적이지 않고 자유롭고 재미있었다. 특히 좋았던 건, 여러 기관에서 푸시하는 반복적인 어젠다들에서 벗어나, 제너럴하고 펀한 정보에서 시작되어 관객에게 통찰력을 불러일으키는 전시였다는 점.
전 세계 다양한 우유갑 형태를 보여주는 유리 작품.
우유를 제공하는 인간과 동물의 몸을 care 와 extraction의 관점에서 바라보길 의도한 작품.
티와 함께 서빙되는 우유를 담는 Creamer jug 크리머 저그의 소 모양 디자인. 소 등 쪽에 우유를 넣고 소 입으로 우유가 나오는 형태. 여기서 인사이트는 인간에게는 늘 이렇게 소가 행복하게 우유를 제공하는 이미지로 소비되었다는 점. 소의 이런 사회적으로 선택된 이미지를 고찰해 보기 위해 가져온 세라믹 오브제들.
냉장고가 생기기 전에는 우유가 상하기 때문에 장거리 유통이 불가능했었고, 도심 인구에게는 도시 cowkeeper 들이 공급하는 우유가 소비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유 가게 뒤편 좁은 공간에 소가 갇혀있다 보니 우유가 오염되기 십상이었다고. Cow keeper의 가게를 보여주는 1825년도의 그림.
이런 19세기에는 우유 용기를 위생적으로 제작하는 회사도 생겨났는데 그게 바로 Dairy Outfit Company. 꽃무늬를 사용한 것도 우유를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보관하고 전달한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한 브랜딩의 일환.
오염된 우유로 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깨끗한 우유를 먹어야 한다는 문구가 담긴 포스터가 정부의 주도 하에 여기저기 배부되었다.
그 와중에 전시 케이스는 재활용 플라스틱을 활용했다. 그리고 2번째 사진에 1903년도의 Bacteriology of Milk, 또 그 옆의 너무 재밌었고 몰랐던 우유의 색에 대한 이야기. 19세기에는 봄에 풀을 먹은 소에서 나오는 우유의 농도와 색이 겨울보다 더 진했다고 한다. 따라서 Annatto라는 회사는 식물에서 나온 색을 우유에 넣어 일 년 내내 크림 색을 유지하도록 했다. 현재는 균질화 과정을 통해 이런 인공적인 과정 없이도 우유가 균등히 유지된다고 한다. 한편 치즈 회사는 여전히 이 아나토의 상품으로 노랗거나 주황, 또는 빨간색의 치즈를 생산한다고 한다.
우유를 통해 유럽의 흑인 유모 이야기도 그림을 통해 다뤘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모가 그냥 내니의 의미로 쓰이는 데 사실 wet nurse 유모는 다른 사람의 아기에 젖을 물려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깨끗한 우유의 공급이 발전된 시설과 유통 과정으로 가능해지면서 유럽에서 일하던 유모들의 일자리를 잃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 이렇게 월급을 받는 유모가 있는가 하면, 노예화된 아프리칸 여성들은 돈을 받지 못하고 정작 본인의 자식과는 떨어진 채 유모 업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1912년에는 농업 위원회(Board of Agriculture)가 낙농업 국립 연구 기관(NIRD)을 리딩 대학에 설립하여 우유 생산에 과학적 원리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깨끗한 우유를 생산하여 낙농업의 현대화를 이룩하는 게 국민의 건강에 있어 중요한 과제였다. 이 기관은 낙농업 농장주들에게 소의 건강, 소 우리의 청결과 우리 제작, 우유 기구의 위생 등을 교육했다.
1618년도의 책. 책 속 일러스트는 우유를 자연적이고 순수한 상품으로 광고하기 위해 모유의 이미지를 활용했다. 그 외 어떻게 역사적으로 모유를 어떻게 이미지화했고 여겼는지에 대한 책들.
당시 신생아 사망률이 높아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문구로 우유의 위생과 공급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프로파간다를 했던 정부의 포스터들.
Happy Motherhood라는 문구로 여성에게 역할을 강조하고 모유 수유 과정을 행복함으로 점철시켜버리는 책. 오늘날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메시지들이 엄마들에 어떤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연구한다. 현실 속 모유 수유의 과정은 지저분하고 힘든 과정이기 때문. 이를 그냥 페미니즘으로 엮어도 되는데 텍스트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괴리감이 부모 모두에게 아이를 낳았을 때 실제로 덜 준비된 상태가 되게끔 만들고, 모유 수유를 하며 맞닿는 예기치 못한 어려움들로 실패의 기분을 느끼게끔 한다고 한다고 확장시켰다.
아이의 건강함의 척도로 무게를 정기적으로 쟀던 오늘날과 같던 과거. 다만 달랐던 건 왼편의 아기를 넣어 무게를 재는 데 사용한 바구니.
몇몇 의사들과 학자들이 분유를 먹고 큰 아이가 과체중이지 않을까 염려를 했었고 이에 대항하듯 분유 회사가 만든 자신들의 상품과 연관 지은 건강한 아이의 성장 차트.
음식 속 비타민과 미네랄에 대한 지식은 불과 20세기나 되서야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영양분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지식을, 영국 정부는 건강한 식단에 대한 가이드라인으로 도입했다. 쭉 전시를 보면서 이 모든 과정에서 크게 작용한 정부의 개입 때문에 국가의 운영과 역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영양학 전문가 보이드 오르가 쓴 책 Food and the People에는 전쟁 시 배급과 그로 인한 공공 건강의 증진을 말한다. 전시에 음식에 대한 배분이 사실상 더욱 공평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이 결과는 영양실조는 음식의 비 공급이 아니라 사회의 불평등에 의한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한다.
1940년부터 Welfare Food Scheme 이 퍼져 엄마와 어린아이들에게 소득과 관계없이 분유가 분배되었다. 2006년에는 NHS 가 이걸 살짝 바꿔 분유 대신 특정 음식과 바꿀 수 있는 바우처를 제공했다.
이 영상은 당시 우유가 '문명'과 '번성'과 연관 지어졌다는 식민지 시대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1921년의 불편한 영상.
To housewives. 제목부터 웩 스러운 정부에서 배분된 1920년대 엽서. 당시 영국에서는, 가족의 건강에 대한 책임은 전부 여자에게 지어졌다. 이 엽서는 건강하게 먹는 것에 대한 조언을 담고 있는데, 이게 왜 to housewives 냐는 것. 그리고 오른편 또한 여성에게 추천된 건강한 식단을 꾸리는 레시피 조언 책.
헨리 무어의 작품으로 현대 조각까지 가져왔다. 이를 통해 이전의 조각들이 엄마와 아들을 조화스럽고 아름다운 모성애 이미지로 그려왔다면, 무어는 이런 모성애에 대한 기존 관념에 도전한다는 걸 보여준다.작품을 보면, 아이는 엄마의 가슴을 잡아 삼키려 하고 있고 이런 모자간의 힘겨루기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마지막 공간에는 인도인과 영국인이 티에 대해 얘기하는 해학적이고 재치 있는 영상도 소개되었다. 인도와 영국에서 온 티가 어떻게 영국의 대표 문화가 되었는지, 그 뒤에 얽힌 복잡한 역사와 식민지 착취.
어떻게 이렇게까지 리서치했나 싶었던 플라스틱 우유 용기로 만들어진 아이들이 사용한 축구공으로 시작되는 소의 품종 이야기. 유럽인들은 식민지 시대에 에티오피아의 노동력과 땅을 이용해 낙농업을 확장시켰고, 오늘날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퍼진 소는 에티오피아 소 품종이라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찬양가들의 영상. 여기서 그들은 우유를 마시며 본인들의 남성성, 인종의 순혈성, 힘, 그리고 백인 등을 과시한다
Milk Report. 이것도 너무 좋았다. 보이지 않는 여성의 재생산 노동. 영은 모유 수유하면서 들었던 시간을 6개월 동안 매일 기록했는데 이를 합하면 무려 720시간 7분라고 한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5,911 파운드를 벌 수 있었던 만큼의 노동.
이것도 너무 흥미로웠던 오브제. 정말 우유로부터 시작된 담론의 어마어마한 확장.
The Milk Tea Alliance(MTA)는 2020년 중국의 민족주의에 대항한 태국, 홍콩 그리고 대만 사람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되었다. 이 깃발의 색은 이 각 지역 티의 색들을 상징한다. 우유를 넣지 않고 티를 마시는 중국과 다름을 강조하기 위해 이 색들을 상징으로 사용하였는데, 2001년 트위터는 이를 받아들여 이 깃발을 위한 이모티콘을 제작해 주기도 했다.
심지어 바닥에 accessibility를 고려한 장애인 친화적인 전시 환경까지 조성되어 있었음.
너무 완벽했다. 이 블로그를 쓰는 현재,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국 살이 4년간 본 전시 중 이 전시가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정말 깊고 다채롭고 해롭거나 불편한 구석 없는 전시였다.
마지막 뮤지엄 숍에 마련된 전시와 관련된 도서들. 이 미술관은 이 부분까지도 좋다. 늘 이렇게 전시와 관련된 리딩 리스트를 꾸려 서점에서 판매하더라. 큐레이터들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읽었을 서적들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