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아프다고 심장을 뽑아 던졌지.

위험을 관리하는 외국, 위험에 도망치는 한국

by 당신들의 학교

IMF라는,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어본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포기하는 것들의 리스트 정도는 통계를 찾아보지 않고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외식을 줄이고

여행과 문화생활을 줄이고

취미와 자기 계발을 미루고

옷과 미용 항목을 졸라맨다.


마지막까지 남겨두는 지출항목은 주거비나 공과금 등의 필수지출인데, 필수가 아니면서도 어떻게든 지키려 노력하는 항목의 첫째는 단연코 '교육비'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이러한 경향이 세계적으로 일반적인 것인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이 땅에서 교육이란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런 대한민국에서 학생의 학습권이란 공교육에서 지켜내야 할 '심장'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https://www.usmbc.co.kr/NewsArticle/823367


체험학습이 없어지고 있다.


다른 교과, 교실 안에서 할 수 있는 어떠한 프로그램도 소풍, 수학여행, 수련회를 대체할 수 없다.


지정된 교실 안 좌석에 앉아 제한된 활동만 하는 아이들이 학교 밖에서 사회적 경험을 쌓고(관계 만들기, 관계 강화하기), 개인적인 소소한 문제(통제에 순응하기, 규칙을 조율하기, 갈등을 해결하기, 타인의 불편을 배려하기)를 직접 겪는 과정은 교실 수업으로는 재현할 수 없다.


낯선 공간에서 길을 찾고, 시간을 맞추고, 역할을 나누고, 예상치 못한 변수에 대응하는 경험은 문제집으로 풀 수 있는 종류의 학습이 아니다.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이고, 기술이 아니라 관계의 감각이다.


학교 밖 활동은 교과의 ‘보충’이 아니라, 교과가 닿지 못하는 영역을 채우는 장치다.


교사들이 그렇게나 주장하던 '사교육과 다른 지점', '교사의 존재 이유', '공교육의 가치'가 집약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행사라기보다 교육의 또 다른 본질에 가깝다.




교사들은
위기가 다가오자
그 본질부터
내다 버린 것이고




교사들이 본질을 내다 버렸다고 단정하는 이유는, 교사를 위한 면책조항이 생겼음에도 이것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대책을 마련하라며 드러누웠기 때문이다.


원래 형법의 과실치사상은 법적책임에 있어 과실의 중대함, 예측가능성 등을 따진다. 사상이 발생한 이유, 시기, 장소, 상황, 각종 우연과 불운 등이 사건에 영향을 미치므로 기존 형법에서도 사고 후에나 과실이 중한지, 예측할 수 있었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고가 나기 전에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조건을 미리 만들어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교사에게는 의무를 다했을 때 과실치사상의 면책을 따로 규정하였다.




법적으로 이 정도면
할 만큼 한 것이다.




현장체험학습 거부의 빌미가 된 춘천의 테마파크 사고에서는


인솔교사가 맨 앞에서 걸어가면서 일부 무리가 떨어져 나가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도 모를 만큼 오랫동안 뒤돌아보지 않은 점이 판결의 주요 이유였다.


충분히 과실치사의 책임요건이 된다고 보는데, 판결문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교사가 버스기사의
책임이라고 주장한 점




법적 책임 앞에서 자신의 죄는 크지 않다고 항변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 와중에 다른 사람의 탓을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판결문에 판결의 이유로 반드시 적어야 할 만큼, 저 내용이 중요했다는 것일 텐데 (판결의 결과에 영향을 줄 만큼) 그게 뭐였을까.


속기록을 찾을 수 없어, 그냥 소설을 써보자면




판사는 교사에게서
학생에 대한 어떠한 책임감도
못 느낀 것이 아닐까?




법 용어 중에 '개전의 정'이라는 게 있다. 유무죄를 가르지는 못하더라도 형량에는 영향을 주는데, 교사는 아마도 항변하는 과정에서 죽은 학생에 대한 안타까움이라던가 죄책감이라던가 후회를 보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사정은 이렇지만, 교사들은 하나같이 사고가 나면 교사가 혼자 독박을 쓰는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현장학습을 할 수 없다고 한다.


학생의 안전과 교사의 안전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이 정말로 "무슨 일이 있어도 교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법적인 약속인가?



가능할 리도 없거니와
그래서는 안 된다.




평소에 외치는 교권이라는 것의 반의 반만큼만 학생의 학습권을 생각했다면, 교사들이 나서서 안전한 인솔과 통제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안전하게 현장학습을 하고, 안전교육이나 인솔 시의 근거를 남겨 법적으로 교사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사들은 그러지 않았다.


교사들이 교육의 본질을 내다 버리는 '쉬운 결정'을 하는데 반해 다른 나라들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알아보자.


성격이 다른 세 나라의 예를 가쟈왔다.





1. 교육철학과 시스템이 있는 잉글랜드



1. 교육적 성격이 강한 School trip


영국의 체험학습은 보통 school trip이라고 하며, 피크닉의 요소보다는 교육적 목적으로 박물관이나 유적지, 의회 등을 방문하는 개념이다.


packed lunch(도시락)을 준비하여 하루 안에 다녀오는, 공교육의 연장선에 있는 활동이다.




2. 안전, 책임에 대한 체제가 엄격하다.


리스크 평가서(Risk Assessment) 작성이 필수이고, 이는 교육부의 규정이 세세하게 적용된다.


잉글랜드의 리스크 평가서가 얼마나 세세하냐면


이동 중 교통사고 가능성, 도보 이동 시 도로 횡단 위험, 야외활동 시 추락·미끄러짐, 물 근처 활동 여부 (pond, sea, river)와 같은 활동 관련 위험에 대해 평가하여 기록해야 하고

낯선 시설 구조, 비상구 위치, 응급의료 접근 가능성, 인파 밀집 가능성 등 사전답사를 통한 장소의 특성을 파악하고 보고하며

SEND(특수교육 필요 학생), 알레르기, 약물 복용, 행동 문제 가능성 등 학생 개개인의 관리 또한 시스템에 공유하도록 한다.

집합·해산 절차, 점검(Head count) 방식, 소그룹 배치, 비상시 연락 체계 등의 인원 관리 방안이 미리 계획되고

응급처치 담당자 지정, 구급키트 준비, 현지 병원 위치, 부모 연락 체계 등 응급 시 행동도 숙지해야 한다.

폭우·강풍, 고온·저온, 일정 변경 기준 등 기상악화에 대한 대응책까지 시스템화하는 등 '평가와 기록에 미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미쳤다는 말은 좋은 의미이다)



3. 교사 1인당 학생 수 기준이 엄격하다.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Health and Safety Executive와, Department for Education 가 합리적 감독 수준(adequate supervision)을 요구한다.



잉글랜드의 현장에서 일반적인 교사와 학생의 비율은 다음과 같은데



대단히 적은 수의 아이를 교사가 담당한다는 느낌은 없다. (상당한 과밀학급의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나라의 대부분 현장학습은 잉글랜드의 기준에는 부합할 듯하다)


사전 답사와 꼼꼼한 리스크 관리로 안전을 담보하는 느낌.




4. 굳건한 교육철학


2000년대 초반에 영국에서 risk-averse culture(과도한 위험 회피 문화) 논쟁이 있었다. 일부 학교가 놀이 시설 이용 금지와 소풍 금지를 한 것이었는데, 영국 정부가




아이들에게 위험을 경험할
기회를 뺏지 말라




라는 공식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영국 의회가 야외교육의 중요성과 안전에 대한 잘못된 인식(risk perception)이 야외 교육 감소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교사가 불필요한 법적 책임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했었다.


이는 잉글랜드의 일반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는데



더운 날씨에 야외활동이 위축되지 학부모들이 'FURY', 말 그대로 분노했다는 기사가 날 정도이다.



교사보다는 학생의 학습권에
무게를 두는 정부와 학부모의 모습에
영국이 정상이고 우리가 비정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내 생각도 그러하다.





2. 추억을 위해 모두가 - 일본


1. 엔소쿠(遠足)와 “수학여행(修学旅行)


초등학교는 엔소쿠, 중고등학교는 수학여행이 중심이 되는 일본의 현장학습은 공동체 훈련과 정서적 추억 만들기라는 느낌이 강하다.


좋은 날씨, 좋은 풍경, 좋은 경험과 유대감, 단체행동을 통한 공동체 의식이 중요한 부분이 된다



2. 전 교사 총출동


일본의 문부과학성이 권고하는 현장학습 시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잉글랜드보다 조금 많은 수준인데,



실제로는 학년의 모든 교사가 총출동하므로, 실질적 1인당 학생수는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3. 학생에게 미션이


어느 정도 독립적인 활동이 가능한 학생들이 가는 수학여행에서는 학생끼리 활동하는 시간이 주어지는데


4~6명 소그룹으로 편성하여 이동경로를 사전에 제출하고 체크포인트 도착을 보고하거나 귀환시간까지 반드시 돌아와야 하는 등 '미션'이 주어진다.



4. 현장학습은 무조건


수학여행의 경우에는 특히나 코로나 때도 없애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 일본인들에게 수학여행은 인생의 추억이면서 공교육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사회성 교육이기 때문이다.


잉글랜드가 문서로 리스크관리를 강화한다면, 일본은 계획과 통제를 완벽히 하려고 하면서 학생들에게 약간의 '자유'를 주는데, 일본정부의 공식발표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잉글랜드와 비슷한 교육철학이지 않겠는가 한다.



학생에게 현장체험학습은 중요하고
공교육은 어떤 위험과 변수에도
학생의 학습권을 위해 이를 지속해야 한다.




3. PTA(Parent-Teacher Association)의 미국


1. Field trip


미국 교육의 특징은 PTA이다. 교육과정에 참여하고 바자회나 모금행사를 열기도 하는 등 학부모의 참여가 '의무'라고 해도 될 만한 교육문화를 보여주는데,


현장학습에서도 교사와 보조교사, PTA 자원봉사자, 외부 가이드 등 해서 일단 많은 어른이 같이 가는 구조이다.


미국은 경험을 축적하고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활동이 현장체험의 주요 방향이 된다.



2. 민사와 보험의 문제


PTA 자원봉사자의 참여가 많으므로, 기본적으로 필드트립에는 어른들이 많다.


게다가 Waiver(면책 동의서)라는 것이 있는데, 부모가 서명하는 책임 동의서가 필수이다. 여기에는 건강 정보·응급처치 동의가 포함되며 활동별 개별 동의받는 경우 도 많다.


예방보다는 (아무래도 어른들과 함께 하는 활동이니까) 사후 문제의 여지를 없애는 쪽으로 발전한 모습인데, 실제로도 완전한 통제 실패가 아니라면 형사입건은 거의 고려되지 않으며, 민사상 책임이나 보험요율의 문제가 된다.





잉글랜드와 일본, 미국의 현장학습을 살펴보았다.


현장학습의 성격도 다르고, 모든 나라에서 현장학습에서 불행한 사고들이 있었다.


불행한 사고에는 법적 책임 등의 문제는 반드시 벌어졌고, 어떤 경우에는 무죄가, 어떤 경우에는 안전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나라도
현장체험학습을 거부한 경우는 없다.



영국처럼 철저한 리스크관리에 대한 사전준비와 보고를 통해 위험을 줄이고 교사들이 겁내하는 법적 책임의 확률을 낮출 수도 있다.


일본처럼 해당학년의 교사가 총 출동하여 학생을 통제하고, 학생에게도 계획서와 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 관리를 강화할 수도 있다.


미국처럼 PTA를 꾸리지는 못하더라도, 임시로 학부모 자원봉사를 위촉하거나 가이드를 채용하는 등 '어른들과 같이 체험'하는 형태도 가능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아니라면 '한국형' 현장체험학습의 해법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춘천의 사건이 일어난 지 3년이다.


그동안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현장체험학습은 반토막 났고, 소풍 한번 가 본 적 없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마저 나왔다


생활수준과 부모의 사정으로 여행이 어려운 학생에게 있어 이것은 아동학대이며,


가족끼리의 여행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모든 학생에게 학습권을 박탈한 것이다.


나는 여기에 대해 교사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몹시 이상하고


학생이 현장체험학습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별일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이상하다.


당신들은 어떤 생각이신가. 댓글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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