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준과 교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거창하게 시작하려 하지 않으려 했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인류가 쌓아온 문명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식과 교양의 수준을 높여온 여정을 생각한다면, 저작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 그 방대한 역사를 되짚지 않을 수가 없다.
가족단위로 모여 살았을 초기 인류의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상식은 평등과 배려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왕권을 무너뜨리고 귀족제를 타파하며 노예를 해방하고 여성의 참정권을 비롯한 권익을 보호하며 최근에 와서는 동물권과 저작권까지.
하지만 이러한 발전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한쪽의 권익을 보호하고 억압을 해소하는 것은 반대쪽의 반발을 일으킬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그럴 때마다 사용된 것이 '교육'이었다.
지금에야 당연한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라는 명제는 수백 년 전 만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을 수 있다. 새로운 기준을 세우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교육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 기준이 상식이 되었을 때. 인류는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 변화의 가운데 있는 새로운 기준은 아마도 '동물권'과 '저작권'일 것이다.
동물을 학대하는 행동이나 상황에 대한 공감대나 상식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예컨대 시골에서는 1m 남직한 쇠사슬에 평생 개를 묶어두는 게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여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차이는 노예제를 바라보는 과거와 현대사람들의 인식차이만큼이나 까마득한 거리가 있다.
저작권은 동물권보다 더 변화가 뒤처져있다 할 수 있는데, 동물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귀엽다'라던가 '든든하다'라던가 하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즉 동물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으므로 동물권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둘째 치더라도 동물권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저작권, 특히 저작인격권은 인류가 발전시켜 온 상식과 교양의 가장 높은 수준일 것이다. 누군가의 창작물에 담긴 제작자의 사상과 감정 등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수준이므로 이것에 대한 '인지' 자체를 해본 사람이 드물 정도이다.
저작재산권이나 저작인격권 모두 법에 의해 규정되고, 판례에 따라 위법의 범위가 알려지고 있긴 하지만, 이것이 앞으로 세대가 갖추어야 할 당연힌 '교양'이라면 이를 교육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윤리와 도덕을 공교육 교과목에 포함시킨 것이 우리나라 시민의식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아마도 증명할 필요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교육이 저작권, 특히 저작인격권에 대한 교육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겠다. 나이와 발달단계에 따라 인류의 '당연한 교양'으로써 저작인격권을 가르치기 위한 사례를 계발해야 할 것이다.
100년지대계
그래, 이런 것이 100년지 대계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