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물건과 마음 사이, 혼돈 속에서 나를 찾는 시간
이사 온 지 어느덧 3주. 초반의 설렘은 어느새 희미해지고, 방은 아직도 정돈되지 않은 채 그대로다. 마스터룸이자 나의 작업실이 될 공간. 그러나 짐들은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흩어져 있고, 베란다 창고의 계절 수납부터 꺼내 쓰기 쉬운 동선까지 고려하다 보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 정도면 그냥 눈 감고 박스째 밀어 넣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체념이 들다가도, 그러면 이사 나갈 때까지 다시는 못 꺼낼 것 같은 두려움이 찾아온다.
정리는 단순히 물건의 배치를 넘어, 삶의 구조를 짜는 일이라는 걸 요즘 실감한다. '지속 가능한 정리'라는 말이 내겐 너무 거창하게 느껴질 정도로, 지금 나는 그 첫발을 떼기도 벅차다.
이 방은 단순한 침실이 아니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오래된 꿈,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바람, 또 어쩌면 유튜브를 시작해 볼까 하는 막연한 시도들이 뒤엉킨 공간이기도 하다. 막상 마주한 현실은, 짐더미와 매일의 갈등뿐이다.
'과연 나는 뭘 하고 싶은 걸까?' '나는 정말 화가가 되고 싶은 걸까?' 어쩌면 그저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내 안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나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무엇이 되기 위해, 이 작업실을 꾸미고 있었던 걸까.
꿈을 부르는 재료들, 그리고 공간의 줄다리기
유화, 아크릴, 수채화.
재료마다 성격이 달라서 준비할 것도 다르고, 마감도 다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들이 말 그대로 방 한가득이다. 캔버스는 크기별로 쌓여 있고, 미국에서 어렵게 들고 온 고급 수채화지며 붓 세트들이 “제발 나를 써달라”라고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그것들을 당장 안 쓴다고 창고에 넣어버리면, 그건 곧 ‘내가 이걸 다시 꺼내 쓸 가능성은 없을 거야’라는 자기 암시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망설인다. 비워두고 싶은 여백의 공간과, 당장이라도 꺼내 쓰고 싶지만 마땅한 보관 공간은 없는 재료들 사이에서 나는 매일 줄다리기 중이다.
작은 복도, 폭 800mm. 그곳만큼은 숨 쉬는 공간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요가 매트를 깔고, 낮은 테이블 하나 놓아둘 수 있는 그저 나만의 공간. 그런데 그 자리에 수납장을 놓을까 고민하고 있는 나를 보며 스스로 씁쓸한 웃음이 났다. 나는 결국 또 무언가를 밀어 넣고, 또 다른 공간을 찾아야 하는 반복에 갇혀 있었다.
작은 성취가 주는 숨통
그 복도를 조금이나마 비워낼 수 있었던 건, 내 책들을 남편의 공간 한편에 놓을 수 있도록 배려받았기 때문이다. 기꺼이 책장 한 칸을 열어준 덕분에, 생각보다 많은 짐이 풀렸고, 답답했던 공간에 비로소 길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또 한참 쓰지 않던 카메라 장비들…각종 렌즈, 필터, 삼각대, 조명까지. 그것들을 과감히 정리하고, 새로 마련한 철제 수납장에 섹션별로 넣으면서 이 방이 '호흡할 수 있는 방'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주 작고 사소한 성공. 하지만 그 작은 성취가 나에겐 너무도 절실했다.
공간이 묻는 질문, 그리고 나를 찾아가는 길
가끔은 내가 가진 것들을 다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진다.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보다, 그냥 내가 나로서 살고 싶다는 감정이 더 크다.
방송국에서 보낸 수십 년의 시간, 쌓아온 경력과 이력들이 때로는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일까. 이 공간에서 나는 자꾸 나에게 묻는다. "그동안 넌 누구였고, 앞으로는 누구이고 싶니?"
답은 아직 모른다. 이 방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고, 내 마음도 마찬가지다. 어지러운 물건들 사이에서, 어지러운 감정들이 왔다 갔다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바로 '나'라는 것을, 이 공간이 나에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그리고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 이 어지러운 공간이, 언젠가는 그 답을 품고,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끌어 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