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쌓인 길 위에서
출근 준비를 하던 아침이면, 말도 못 하던 아이가 내 손을 꼭 쥐고 울곤 했다. 그 작고 따뜻한 손에서 전해지던 불안감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어느 날, 소아과 의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애기 목이 쉬었어요. 누가 돌봐요?"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신중하게 면접을 보고 들인 도우미 아주머니. 하지만 평소보다 이른 퇴근을 한 어느 날, 집안에 울려 퍼지던 풍경은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텔레비전 소리, 전자레인지 돌아가는 소리, 전화 통화.
소음 속에서 아이는 울고 있었고, 그 울음 위로 험한 말과 짜증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날 밤, 결심했다. 이 아이를 지켜야 한다. 당장 이사를 가자.
그때 나는 육아휴직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TV를 끄고 클래식 음악을 틀고, 백화점 식품관을 돌며 알록달록한 과일과 채소를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말 못 하는 아기에게 하루 종일 말을 걸며, 하루라는 시간을 아이와 채워갔다.
하지만 복직은 피할 수 없었다. 어렵게 만들어낸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졌고, 다시 선택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더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는 거리. 회사에서 걸어서 5분. 창밖으로 회사 건물이 보이는 곳.
그곳이 우리 가족의 첫 '여의도' 집이었다. 여의도는 그렇게, '엄마로서의 나'가 다시 태어난 곳이 되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어느 여름, 우리는 뜻밖의 이유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몇 년 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의 연령에 맞춘 학군 좋은 지역을 고민했고, 여의도는 더 이상 우리의 선택지에 없었다.
새로운 동네의 삶은 어색하고 낯설었다. 새벽 등교 라이드, 러시아워 출근길, 분절된 하루. 퇴근해 돌아오면, 사춘기 아들은 혼자 배달 음식을 먹고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같은 집에 살았지만, 함께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여의도로 돌아왔다. 아침 8시 40분. 천천히 걸어 출근길에 오른다.
햇살을 느끼고, 바람을 마신다. 이 여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너무 잘 안다. 놓쳐버린 나, 사라졌던 시간, 잊고 있던 감각. 회사까지 이어지는 이 10여 분의 걸음이, 나를 다시 회복시키고 있다.
퇴근길,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여의도에 소고기 맛집 있는데, 오늘 갈래?"
"알아서 해."
툭 던진 말. 무뚝뚝했다. 그런데 반가웠다. 예전엔 답조차 없었으니까. 우리는 마주 앉아 고기를 구웠다. 안심 특 2인분과 된장말이. 고기가 입에서 녹듯, 어색함도 조금씩 풀어졌다.
"여의도 다시 오니까 어때?"
"… 좋지."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말에 울컥했다.
며칠 전엔 혼자 IFC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판다익스프레스에서 식사까지 했다고 했다. 남편은 요즘 아이가 쿠팡이츠 주문을 거의 안 한다며 놀랐다. 아마 아들도, 이곳에서 자기 삶의 리듬을 되찾아가는 중일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거리로 나섰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걷던, 바로 그 길이었다. 지금은 나보다 훌쩍 커서, 성큼성큼 앞서 걷는다.
"우리 여기 자주 왔었지."
아들이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길이 우리 집이야. 우리 기억이 머무는 동네야.
여의도는 여전히 오래된 아파트들로 가득한 동네다.
초고층 빌딩들이 매일 자라듯 올라가도, 이곳에는 아직 키 큰 나무가 있고, 오래된 시간의 온기가 남아 있다.
여기는 내가 '엄마'로 다시 태어난 곳이고, 아이가 '나의 아들'로 자란 곳이다.
해 질 무렵, 다시 그 길을 걷는다. 샛강 위로 저녁노을이 내려앉고, 우리는 함께 걷는다. 시간과 기억을 품은 이 길 위에서, 우리의 집도, 우리의 삶도 다시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