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혀있던 나의 세계

단단했던 나의 알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by 김성희

어린 시절의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너머의 세상에 유독 귀를 쫑긋 세우던 아이였다. 친구들이 만화 영화에 열광할 때, 나는 무당의 방울 소리나 귀신 이야기에 묘한 긴장과 흥미를 느꼈다. 학교 도서관에 가면 내 손길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사후 세계의 풍경, 외계인의 존재, 오컬트, 타로 혹은 죽음 뒤에 펼쳐질 천국과 지옥의 형상들. 보이지 않는 세상 속 신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지, 어린 마음에도 그 막연한 형체들을 상상하며 책장을 넘기곤 했다. 하지만 자라면서 그 호기심은 현실이라는 벽 뒤로 가려져버렸다.


이십 대의 나는 철저히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몰두하며 요리 커리어를 쌓았고, 이후 7년 동안 바리스타로 일하며 완벽한 한 잔의 커피를 내리는 일에 매달렸다.


그 무렵의 나에게 세상은 오감을 통해 증명되는 것들의 집합이었다. 돈을 벌면, 소유하고 싶은 것들을 사 모았다. 내 공간이 만화책과 CD, 음반들로 꽉 차갈수록 나의 존재도 함께 단단해진다고 믿었다. 닥치는 대로 물건을 모으던 그 시절의 수집벽은, 어쩌면 손에 잡히는 것들로 나를 증명하려 했던 치열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가족들에게 절은 그저 한 번씩 떠나는 나들이 장소였다. 어린 시절, 선물을 준다는 말에 혹해 교회를 가보고 싶기도 했지만 무서운 아빠 때문에 발을 들이지는 못했다. 신이나 종교는 언제나 내 삶의 주변부만 서성일 뿐이었다.




서른 무렵, 문득 성당을 찾았던 건 역설적이게도 그곳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미적인 것에 예민했던 습성 때문인지, 세례명의 우아함과 세례 때 쓰는 레이스 천의 고결함에 마음을 뺏겼다. 그렇게 예비 신자 교리를 시작했지만, 정식 신자가 되기 직전 나는 도망치듯 성당을 떠났다.


하느님의 자녀로 공식적으로 입문한다는 사실이 갑자기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두렵게 다가왔다. 성경을 공부할수록, 젊은 날 내가 저질렀던 크고 작은 잘못들이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나를 짓눌렀다.


'나는 죄가 너무 많아. 나는 자격이 없어.'


겁이 덜컥 났다. 신의 사랑을 받기엔 내가 너무 얼룩진 존재 같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내가 믿던 유일한 세상, '물질의 세계'로 숨어버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확신했다. 보이지 않는 존재 따위는 없다고. 인생은 그저 목표를 세우고 산을 정복하듯 치열하게 나아가는 것이며, 오직 물질만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여전히 바리스타로 일하며 매일같이 커피를 내리던 어느 평범한 일상이었다.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나의 세계에 균열이 생긴 건 바로 그때였다.


꽁꽁 얼어붙어 있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녹아내리며,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존재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 사건. 그 일은 내가 이후 유학을 떠나 음악을 전공한 연주자로 살아가게 되기 전, 한국에서의 평범한 어느 날 찾아왔다.

핸드드립 커피 바리스타였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