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힘을 다해 부딪히던 나에게 우주가 보내온 다정한 선물
주변은 온통 꽃과 따뜻한 바람으로 가득한 봄날이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천국 같았으나 내 마음은 오랜 시간 동안 지옥이었다. 몇 년째 억지로 붙들고 있던 ‘어떤 일’때문이었다. 그 상황 속에 머물수록 내 영혼은 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지만, 나는 바보처럼 미적대기만 하며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카페에 가서 일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집을 나섰다. 무심하게 버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습관처럼 눈물을 흘리던 바로 그 순간, 작은 꿀벌 한 마리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투명한 유리로 된 버스 정류장 안으로 잘못 들어온 작은 꿀벌이었다. 꿀벌은 눈앞이 유리로 막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날갯짓을 하며 '텅, 텅' 소리가 나도록 연신 정류장의 유리에 몸을 부딪히고 있었다.
잠시 내 괴로움을 잊고 그 작은 생명을 지켜보았다. 저러다 죽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꿀벌이 제발 날갯짓을 멈추기를 바랐다. 고집스럽게 날갯짓을 계속하던 어느 순간, 갑자기 꿀벌은 기력이 다한 듯 날개를 멈추었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허공에서 그대로 날개를 멈춘 모습이었다.
당연히 꿀벌이 바닥으로 떨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어디선가 불어온 강하고 따뜻한 바람이 꿀벌의 몸을 두둥실 실어 바로 옆의 탁 트인 허공으로 날려 보낸 것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꿀벌의 몸을 안전하게 감싸 안아 가볍게 옮겨다 놓은 것처럼.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꿀벌은 이내 힘차게 날개를 움직이며 푸르른 하늘을 향해 자유롭게 날아갔다.
그 순간 깨달았다. 저 꿀벌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죽는 줄도 모르고 유리에 부딪히며 '노력'만 거듭하던 내 모습이 보였다. 필사적으로 날갯짓을 하는 동안, 나는 신이 도와주실 틈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꿀벌이 노력을 멈추고 온전히 힘을 뺐을 때 비로소 신의 손길인 바람이 찾아올 공간이 생겼다.
'내가 무언가를 너무나 간절히 원하고 있었구나. 이 간절함이 나의 노력이었고 집착이었구나.'
그 일에 대한 마음을 그냥 탁 내려놓아야 함을 마음으로 깨닫는 순간, 나를 짓누르던 무거운 마음이 눈처럼 스르르 녹아내렸다. 마침내 찾아온 자유였다. 참으로 홀가분했다. 하지만 이내 아주 중요한 의문 하나가 묵직하게 내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누굴까?
누가 나를 이토록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내 마음이 온통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누가,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대체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방식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온 것일까.
그 물음에 답하듯, 아주 오래전 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가 선물처럼 떠올랐다. 중학생 시절의 어느 하굣길, 도로 위에서 차에 치여 종잇장처럼 튀어 올랐던 작은 배추흰나비 한 마리. 배가 찢어져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그 가녀린 생명을 나는 차마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두고 올 수 없었다. 어린 나는 나비를 조심스레 손에 받쳐 들고 인근 풀숲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나비의 고향인 자연의 품 속, 철쭉꽃 잎 위에 소중히 올려두었다. 비록 살기 힘들지라도, 마지막 순간만큼은 차바퀴 아래가 아닌 꽃의 품 안이길 바랐던 어린 날의 간절한 마음이었다.
어쩌면 그날의 나비는 우주의 메신저인 요정이 아니었을까. 이름 없는 작은 생명의 존엄을 지켜주려 했던 그 순수한 소녀를 우주는 잊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 나비 요정이 시간이 흘러 길을 잃은 나에게 꿀벌의 모습으로 찾아와, 이제 그만 네 마음을 옥죄는 유리벽을 내려놓으라고 속삭여준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에게 우주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도록 마법의 가루를 뿌려준 것은 아닐까.
내 마음에 떠오른 생각과 느낌은, 그 또한 우주로부터의 메시지였다는 것을 나는 훗날에야 깨닫게 된다.
내가 처음으로 느낀 우주는 부모님에게서도 느껴본 적 없는, 엄청나게 크고 엄청나게 따뜻한, 다정한 무언가였다. 다시 눈물이 났다. 혼자라고 믿어왔던 순간조차, 난 언제나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보이지 않지만 늘 나를 사랑해 왔고,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듯 걱정하며 내 곁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던 존재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다만 그동안 내가 마음을 닫아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어떤 존재'를 조금씩 감각하기 시작했다. 신, 혹은 우주, 아니면 그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아직 '신'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엔 어딘지 쑥스럽고 거창하게 느껴지는 그 존재를 말이다. 이제부터 그 존재와 소통하며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우주의 존재는 마치 피터팬의 영원한 친구, 팅커벨과도 같다. 오직 요정을 믿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고, 그 마법 또한 믿는 사람에게만 기적처럼 효력을 발휘하는 요정 팅커벨. 그러니까 이건 비단 나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라도 마음의 문을 열고 귀를 기울인다면, 일상 곳곳에서 언제나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늘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는 따뜻한 존재를 만나 소통할 수 있다는 희망에 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