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같은 일이 반복될 때는 잠깐 뒤를 돌아보세요.
프랑스에서 음악 공부를 결심하던 무렵의 이야기다.
삼십 대 후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7년을 일해오던 카페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며 카페 일 틈틈이 프랑스어 공부도 해왔지만 마음속에 품고만 있던 꿈을 정작 실행하려던 용기도 없었던 나. 해고는 어쩌면 우주가 행동하라고 등 떠민 기회인지도 몰랐다. 당시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서울과 포항을 격주로 6년간 왔다 갔다 하며, 악기 레슨 또한 꾸준히 받아오고 있었다. 딱 1년만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오겠다던 뒤늦은 결심은 어느덧 나를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곳에 머물게 했다.
유학 초기의 나날은 꿈결 같았다. 오랜 시간 꿈꿔왔던 나의 꿈이 드디어 현실이 되던 순간이었으니까. 에어 프랑스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내 영혼은 숨이 탁 트이는 자유를 느꼈다.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풍경은 에어 프랑스의 스튜어디스였다. 중후한 나이에 든든한 풍채의 아주머니 스튜어디스가 스니커즈를 신고 승객들을 돌보던 부분부터 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내가 살던 세상의 풍경과는 너무 달랐다. 마침내 도착한 프랑스에서 나는 두 번째 충격을 받게 된다. 그건 바로 공항 바닥을 쓸고 있는 흑인 청소부 할아버지였는데, 공항 직원의 유니폼을 입고 직원용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뭔가 이상했다. 허리까지 길게 내려온 레게 머리에 양쪽 귀에는 반짝이는 은색 링 귀걸이가 달려있었다. 그 모든 것이 한국에서만 살아온 나에게는 새로움과 자유로움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4년의 유학 시절 동안, 이방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계속된 비자 갱신 절차는 나를 서서히 지치게 했다. 무엇보다 당시의 나를 괴롭힌 건 음악 공부를 계속해 나갈수록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된 새로운 부분이었다. 친구들과 순수하게 음악을 나누며 잼을 하거나 조용히 혼자 악기를 연습하는 것은 즐거웠지만, 주목받는 것을 꺼리는 성향의 내게 무대 위 연주는 고통에 가까웠다. 내 영혼은 무대 위에 설 때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이런 내가 과연 연주자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아르바이트로 하던 번역 일을 진지하게 시작해 볼까. 하지만 늦은 나이에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려고 떠났고 그 많은 시간, 에너지와 돈을 들인 음악 공부를 두고 다른 일을 한다는 건 어쩐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을 또다시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의 시야가 참 좁았다. 음악을 전공하면 반드시 연주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 보면 말이다. 음악 그 자체는 내 영혼의 기쁨이었지만, 연주자로서의 길은 내 영혼을 거스르는 강한 저항이 있었음에도 그때의 나는, 그런 사실을 그냥 눈 감고 모른 척했다. 예전의 깨우침을 잊은 채, 또다시 날갯짓을 부단하게 하는 꿀벌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비자 만료일은 다가오고, 앞날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이 어지럽던 어느 날이었다. 우주가 그런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내가 펼친 책, 무심코 본 영화, TV에서 스쳐가듯 지나간 광고 속, 그 어디에나 ‘산티아고'가 있었다. 처음엔 우연이라 여겼지만 반복되는 상황에 마음이 흔들릴 때쯤, 아무 생각 없이 찾아간 툴루즈의 생 세르냉 성당에서 바라보던 조가비와 지팡이를 들고 있던 조각상의 이름마저 산티아고의 성자라는 안내판을 보게 되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이건 신호다. 나는 산티아고에 가야 해. 지금 당장. ‘
직감적으로 산티아고에 가면 지금 내가 고민하는 것들에 대한 모든 해답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이게 맞는 건가? 너무 충동적인 거 아니야? 논리적이지도 못한 전개고…’하는 에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난 직감과 느낌 편에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미친척하고 그냥 가보자. 어차피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거 외에 내가 할 일은 없으니… ’라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여행을 준비했다. 마침 귀국 전까지 열흘 가량의 시간이 있었다. 귀국 준비도 거의 다 마친 상태여서, 나 자신에게 프랑스를 떠나기 전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홀가분하게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산티아고에 대해 이름만 들어봤을 뿐, 어떠한 정보도 없던 나였기에 일단 검색을 하고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여러 경로로 통해 있는 산티아고 길을 걷기 위해 나의 첫걸음을 어디서 시작하는 게 좋을지 알아봤다. 검색 끝에 내가 있던 툴루즈(Toulouse)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의, 생 쟝 피에 드 포흐(saint-jean-pied-de-port)라는 프랑스의 마을을 찾아냈다. 차를 이용하면 3시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산티아고를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그렇게나 가까운 거리에 산티아고의 출발 지점 중 하나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토록 가까운 곳에 저 유명한 산티아고가 있었는데, 몇 년을 툴루즈에 살면서 한 번 가 볼 생각도 못했다니… 한국에 돌아가기 전 알게 돼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떠나기 전 짐을 꾸리면서부터, 산티아고는 나에게 한 가지 중요한 깨우침을 주었다. 긴 트래킹을 위해서 최소한의 짐을 추려 배낭 하나에 담는 동안, 내가 살아가며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얼마나 많이 움켜쥐고 있었는지 알게 된 것이다.
내 마음이 그토록 무거웠던 건 ‘욕심’ 때문이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만큼 꼭 성공해야 한다는 욕심. 잘해야 한다는 욕심. 무대 위에서는 늘 완벽해야 한다는 욕심. 그 모든 것들이 나의 마음을 납덩이처럼 누르고 있었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매일 아침 새로운 곡을 배운다는 사실만으로 신이 났던 그 마음. 그 순수한 열정이, 평생토록 계속될 줄 알았던 그 설렘이 거짓말처럼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음악에 대한 나의 열정은 삶을 즐겁게 하는 신의 선물이었는데, 나의 욕심들이 그 선물을 앗아가 버린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내게 어떤 가르침을 주기 위함이었을까. 내가 어떤 마음에 집착할 때마다, 신은 나에게 그 마음을 내려놓게 하셨다.
마음은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데, 시간과 돈은 여유가 있는 이상한 순간. 번아웃과 불안함에 젖어있던 내게 산티아고로 가라는 신호는 하나의 지푸라기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결심한 지 하루 만에 산티아고 행 차편에 몸을 실었다. 떠나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그 길은 떠나기 전부터 나에게 ‘비움’이라는 큰 가르침을 건네고 있었다.
겁이 많아 늘 친구들과 함께이던 내가, 배낭과 신발 하나만 장만해 유럽의 카풀 서비스인 '블라블라카(BlaBlaCar)'를 혼자 예약하고 타다니… 나를 지극히 사랑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수호천사처럼 나를 도우려고 이끌고 있다는 느낌, 그 사소한 신호를 지팡이처럼 의지하며, 나의 운명이 부르는 길로 향했다. 그 길 위에서 만날 사람들, 그리고 길 위를 걸으며 마주할 나의 새로운 모습들이 벌써부터 무척 기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