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축소판 산티아고, 그 시작인 생 쟝

생 쟝에서 인생의 시작점을 되돌아보다.

by 김성희

피레네 산맥이 시작되는 지점, 프랑스와 스페인의 경계에 위치한 작은 마을 생 쟝 피에 드 포흐(Saint-Jean-Pied-de-Port)에 드디어 도착했다. 오는 동안 블라블라카 안에서 각기 다른 목적지로 가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잠도 자고 하는 사이, 벌써 나의 도착지에 당도해 있었던 것이다. ‘산길의 발치에 있는 성 요한의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작은 마을에는 오고 가는 순례자들로 가득했다.


생 쟝은 마치 동화 속 요정의 마을 같은 느낌으로, 알프스 산장 느낌의 집과 꽃, 배낭등으로 꾸며진 아기자기한 창문 장식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지팡이와 모자, 베드 버그 약등 필요한 물건들을 추가로 구매할 수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주요 출발점 중 하나인 마을답게, 생 쟝의 가게들 안에는 온통 산티아고를 상징하는 조가비와 노란 화살표, 그림과 글들이 가득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것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며 평생 마음에 품고 사랑하게 될 표식들이었다.

순례자 사무실 담장에 걸린 조개 장식들

사람들을 따라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낡은 나무 문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을 발견하게 된다. 순례자 사무실이다. 이곳에서는 까미노의 쉬운 코스와 어려운 코스를 알려주며, 선택한 코스에 맞는 자세한 지도와 안내 책자도 나누어준다. 그 모든 것들은 거의 무료에 가깝다. 산티아고의 성자, 성 야고보의 정신을 기리며 순례자들에게 그저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고마운 장소였다. 책상 앞에 앉은 봉사자는 익숙한 손길로 나의 이름을 묻고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크레덴셜(Credential). 바로 순례자 여권이었다.


"부엔 까미노(Buen Camino)."


좋은 길 되기를. 그 짧은 스페인어 한마디가 낯선 길 위에 선 이방인의 마음을 단단하게 어루만졌다. 아직 한 걸음도 떼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그 길의 일부가 된 기분이었다. 봉사자가 건넨 짧은 축복과 함께 내 크레덴셜의 첫 번째 칸에 도장이 찍혔다. 생 쟝의 문장이 새겨진 그 작은 도장 하나가 뭐라고,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이제 이 종이 위에는 내가 땀 흘려 도착할 마을들의 이름이 하나씩 채워질 것이다.

생 쟝에서 찍어준 도장

사무실에서는 순례자들에게 원하는 조개껍데기를 고를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중 가장 눈에 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인 보라색의 조가비를 골랐다. 모든 순례자의 배낭 뒤에는 저마다 자신이 고른 조가비가 매달려 있다. 마치 삶에서 부여받은 자신만의 소명처럼 개성 있는 각양각색의 조가비들이.. 그렇게 나는 툴루즈에서 떠나 온 여행자에서 산티아고 길을 걷는 순례자가 되었다.

나의 보라색 조가비와 호피무늬 지팡이

내 손에 쥐어진 지도와 순례자 여권이 왠지 모를 용기를 주었다. 내일 새벽, 나는 저 피레네의 안갯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앞서는 시간이었다. 떠나기 전 생 쟝을 좀 더 둘러보기 위해 마을의 가장 높은 곳, 시타델로 향하는 가파른 오르막을 올랐다. 중세의 성벽 안으로 들어서면 조약돌 길을 따라 낮은 집들이 이어지고, 붉은 나무 창틀과 하얀 벽은 바스크 지방 특유의 색을 품고 있었다.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강 위에는 작은 다리가 놓여 있고, 그 다리를 건너는 순간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배낭에 넣은 채 산을 넘을 준비를 한다. 이곳에서는 이름도, 나이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배낭에 조개껍데기 하나를 매달고, 내일부터 마주할 험난한 피레네의 안개를 함께 걱정하는 동료들만 있을 뿐이었다.


성벽 위로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마을의 좁은 골목마다 낮은 조명이 켜지면서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아, 정말 걷게 되는구나. 내일이면 저 거대한 산맥을 넘어 낯선 땅 스페인으로 향하겠지만, 오늘 밤만큼은 이 포근한 프랑스 마을의 품 안에서 설레는 맘으로 혼자만의 축제를 즐기고 싶어졌다. 근사한 근처 레스토랑에서 버터갈릭 소스를 올린 족발 구이를 먹은 후 알베르게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생 쟝은 그렇게 여행자의 두려움을 기대로 바꾸어 놓는 마법 같은 첫 정거장이었다.

꽤나 맛있었던 족발 구이

새벽 6시 30분, 드디어 까미노를 걷기 위한 길을 나섰다. 나보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 순례자들이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고, 세상은 서서히 동이 트며 빛을 머금고 있었다. 전날 마을 곳곳을 천천히 눈에 담아둔 덕분에 피레네 산맥으로 통하는 순례길의 시작점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새벽 6시, 아직은 밤의 기운이 남아있던 시간

까미노(Camino)'는 스페인어로 길(Road)이라는 뜻이다. 우리에게 산티아고 순례길로 잘 알려진 이 길의 풀 네임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즉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을 의미한다. 여기서 '산티아고'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성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이다. 바로 내가 툴루즈의 성당에서 마주했던, 지팡이와 조가비를 양손에 들고 있던 그 조각상의 주인공 말이다.


그는 왜 하필 고향 이스라엘에서 4,000km나 떨어진 이 낯선 땅까지 걸어왔을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스페인은 '피니스테레(Finisterre)', 즉 세상의 끝이라 불리던 곳이었다고 한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돼라"던 스승의 마지막 명을 지키기 위해, 그는 신념 하나만을 배낭처럼 짊어지고 당대 인류가 알고 있던 세상의 가장 먼 벼랑 끝까지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차가운 박해였다. 기독교의 존재 자체가 죄였던 시대, 포교를 마친 그는 다시 돌아간 고향 이스라엘에서 참수를 당하며 예수의 열두 제자 중 가장 먼저 생을 마감한다. 죽음으로써 사명을 다한 성자의 유해는 그렇게 잊히는 듯했지만, 한 수도사가 신비로운 별빛에 이끌려 찾아간 들판에서 성 야고보의 유해는 800년 만에 기적처럼 발견된다.


사람들은 그곳을 '별들의 들판'이라는 뜻의 '콤포스텔라'라 불렀고, 그 무덤 위에 세워진 성지가 바로 순례자들의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다. 중세 시대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죄를 씻거나 삶의 답을 구하기 위해, 별빛이 안내한 그곳을 향해 성 야고보의 발자취를 따라 걸었던 길이기에, 순례길이라고도 불리는 그 ‘길’ 까미노. 삶에 물음표만 가득하던 그 시절의 나에게, 삶에 대한 네 질문에 답을 구하라고 신이 안내해 준 길이 까미노였음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정하게 나를 보살피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언제나 함께였음을 다시 한번 느끼며 감사드리게 되는 순간이었다.


프랑스 길의 첫날은 악명이 높다. 까미노에서 휴식과 쉼을 주는 마을들은 오아시스 같은 존재인데, 마을 하나 없이 쉴 곳이라곤 오로지 가파른 언덕 중턱의 오리손 산장 하나뿐인 험난한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쳐 있었다. 숙소에서 피레네로 오르는 입구까지도 힘겹게만 느껴지는데 첫날 목표인 30km를 어찌 걷지.. 걷는 동안 이내 무릎에 신호가 오기 시작하자, '내일부터 못 걷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앞섰다.

평화로운 피레네 산맥의 소떼들

다행히 가방이 무겁지 않아 풍경을 눈에 담을 여유는 있었다. 아침 무렵의 산은 안개로 가득했고, 한여름임에도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때만 해도 나는 까미노에 대한 정보나 거창한 기대도 없이 그저, ‘남들이 걷는 대로, 걷는 방향으로, 남들보다 늦지 않기만을 바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알베르게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새벽에 길을 떠나는 게 좋다는 말에, 아무런 생각이나 고민도 없이 새벽에 떠나기로 결정한 까미노의 출발부터가 그랬다. 그것은 내가 태어나 자라는 동안 아무런 의문 없이 남들을 뒤쫓으며, 출발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타인의 속도에 맞추려 아등바등 애쓰며 살아왔던 내 인생의 어느 한 지점과도 닮아 있었다.


안갯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앞서가는 사람들의 흐릿한 뒷모습을 놓치지 않는 것뿐이었다. 풍경을 볼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내 마음은 여전히 타인의 속도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보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는 게 더 중요했던 새벽. 무엇을 위해 걷는지 같은 고민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저 낙오되지 않겠다는 마음 하나만을 붙잡고 꾸역꾸역 안갯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내 인생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나의 까미노 역시 그렇게 등 떠밀리듯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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