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헤어짐은 물처럼 흐르는 것
7월 말, 한여름이라고는 해도 새벽녘 산의 공기는 꽤나 쌀쌀했다. 차갑게 식어가는 몸을 이끌고 12시가 조금 안 된 시각, 피레네 산맥의 오리손 산장에 도착했다. 산장에서는 간단한 샌드위치와 따뜻한 야채수프를 팔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프를 한 그릇 비워내고 나니, 비로소 다시 걸을 힘이 차올랐다.
까미노는 한국 사람들이 참 많이 찾는 길이다. 산장 한쪽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고, 한국인을 위한 안내서도 마련되어 있었다. 방명록에 가득한 한글을 구경하고 있는데, 산장 주인아저씨가 나에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신기한 건 내 뒤를 따라온 중국인에게는 곧장 "셰셰"라고 인사했다는 점이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수많은 순례자를 마주해 온 주인아저씨의 눈썰미가 예사롭지 않았다.
피레네의 날씨는 굉장히 변덕스러웠다. 안개가 자욱하다가도 어느 순간 눈부신 햇살이 쏟아졌고, 산맥의 가장 높은 곳을 넘을 때쯤엔 갑자기 비가 퍼부었다. 황급히 우비를 꺼내 입는데, 미처 가방까지 덮이지 못한 우비 자락을 뒤에서 걷던 한 청년이 다가와 조용히 덮어주었다.
그를 다시 만난 건 조금 더 길을 내려온 지점이었다. 허기진 순례자들을 위해 과일과 달걀을 파는 하얀 트럭 앞. 걸음이 느린 허약 체질인 탓에 내가 도착했을 땐 삶은 달걀이 겨우 두 개 남아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아까 우비를 배낭에 씌우던 걸 도와주었던 그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앙트완. 검은 곱슬머리의 작은 키에 선량한 눈을 가진 그는, 퀘벡에서 온 레바논 청년이었다. 까미노는 처음이라 했지만 서핑과 여행을 즐긴다는 그는 퀘벡의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곧 고향인 레바논으로 돌아갈 예정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우리는 한동안 나란히 걸었다. 앙트완은 걸음이 느린 나에게 기꺼이 보조를 맞춰주었다. 길 위에서 우리는 종교와 철학, 그리고 시시한 농담들을 주고받으며 한동안 같이 걸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걸음의 속도가 달라졌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의 속도로 헤어졌다.
까미노에 혼자 오면, 새로운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다. 낯을 가리는 편이라 생각했던 나였지만, 길 위에서 꽤 많은 동행을 마주했다. 우리는 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 마주치기도 하며, 때로는 영원히 작별했다. 마치 인생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문득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마음의 평정을 잃곤 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인연이란 이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었는데, 왜 그때의 나는 그것을 그냥 흐르게 두지 못하고 붙잡으려 애썼을까.
까미노(삶) 위에서는 누구나 혼자다. 곁에 누군가 걷고 있다 해도, 등에 짊어진 내 짐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해 내야 하는 건 결국 나 자신뿐이다. 까미노의 첫째 날, 나는 다짐했다. 더 이상 만남과 헤어짐에 연연하지 않기로. 인연도, 삶도, 그저 물처럼 흐르게 두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