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뻔뻔한 영화평 - 6 >
폭력에도 미학이 있을 수 있을까?
현실에 존재하는 폭력은 그 어떤 구실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영화라는 픽션의 세계에서는 인간 내면에 숨어있는 악마성을 고발이라도 하듯, 때론 무자비한 폭력을 소재로 다루기도 한다. 이러한 폭력 묘사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영화감독이 있다. 바로 ‘셈 페킨파’(Sam Peckinpah) 감독. 이름에서도 왠지 파워가 느껴진다.
페킨파는 자신의 폭력 묘사에 ‘고속촬영’을 즐겨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80년대 홍콩 누아르 영화에서 자주 나왔던 슬로 모션 액션 장면(고속 촬영)의 원조가 바로 페킨파 감독이다.
영화는 1초에 필름 24 프레임으로 만들어진다. 정지된 사진 24장을 1초 동안 연속해서 보는 것과 같다. 그런데, 1초당 48 프레임으로 영사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슬로 모션‘이 된다. 그래서 영화 용어로 ’ 고속 촬영‘(high speed cinematography)이라 함은 실제보다 느리게 보이는 화면 효과를 만드는 기법이다. 1초에 48 프레임을 소화하려면 촬영기도 영사기도 그만큼 빨리 돌려야 함은 당연한 이치다.
페킨파는 이 ‘고속촬영’을 하나의 기법을 넘어선 예술적 표현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의 대표작 ‘와일드 번치’(1969)는 느린 화면을 통해 ‘폭력 미학’의 정수를 보여 준다. 총격 장면 속에 간간이 이어지는 슬로 모션은 처절한 사투 중에 시간을 멈춰 세운 뒤, 관객에게 삶과 죽음에 얽힌 철학적 질문을 툭 던지는 듯하다.
월드컵 축구 중계에서 찰나의 순간을 생생하게 전하던 초 슬로 모션은 과연 얼마나 고속으로 촬영된 것일까? 자그마치 1초당 2700장의 사진을 촬영하고 영사할 수 있는 초고속 특수 카메라가 동원되었다. 1초당 4000장 이상을 처리하는 초고속 카메라는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카메라 기술의 발전이 우리가 보아왔던 것과 다른 축구의 세계를 보여 주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 거장 페킨파가 폭력의 순간에 사용했던 슬로 모션은 ‘폭력 미학’을 위해서가 아니라 눈에는 보이지 않는 폭력의 추악한 내면을 포착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