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세계

< 내가 살고 있는... ぼくが生きてる、ふたつの世界 >

by simpo

이래도 안 볼래?

# 영화 보다가 졸고 싶은가? 이 영화 놓칠 수 없지!

#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지 않아도 좋다. 대강 설정을 파악한 후 졸다가 먹다가 싸다가... 그렇게 봐도 좋다.

가끔 이런 영화 보는 것도 참 좋다.

# 배경 음악도 거의 깔리지 않는다. 일상 속의 소음들이 음악 대신 흐른다.

누군가는 이 영화가 '영화 중에 가장 조용한 영화'라고 했다.

# 일본 소도시 여행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 70년대 '국민학교'를 다닌 아재 세대, 모두 보다가 졸기 딱 좋다.

# 그대가 하굣길 아이들의 기쁜 발걸음과 웃음소리에도 감동받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 영화 내내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뻔뻔 평점

* * * * * 5개. 잠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6개!

영화 읽기

청각 장애가 있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정상 청각의 아이, ‘이가라시 다이스케(다이)’.
이 영화는 다이가 자라며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는 과정을 조용하고도 깊은 시선으로 따라간다. 다이에게 세상은 언제나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부모님의 침묵의 세계와, 자신이 살아가는 명료한 음성의 세계.
그는 부모에게 소리를 ‘통역’해주는 존재이자, 부모의 침묵을 세상에 ‘번역’하는 존재다.

결국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 모두가 겪는 ‘오해와 이해의 사이’를 평생 건너 다니는 통역 작업이 아닐까. 가족 사이에서도, 타인 사이에서도,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우리는 끊임없이 오해하고 이해하려 애쓴다.

다이의 부모는 들을 수 없지만, 세상의 그 어떤 부모보다 절절하게 그에게 사랑을 전한다. 그들의 수어에는 말보다 깊고 강렬한 마음이 담겨 있다. 침묵의 언어 속에서, 관객은 말이 아닌 ‘진심’으로 통하는 소통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다이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가 가진 '경계인의 정체성'이 우리 모두의 삶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두 세계를 산다.

'나의 내면의 침묵(고독)'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소음(갈등과 소통)'의 세계. 다이가 부모님과 세상 사이를 통역하듯이, 우리는 평생 내면과 외부 세계 사이를 오가며 살아간다.

다이의 부모님은 듣지 못하지만, 그 결핍 덕분에 다이 가족은 침묵 속에서 가장 깊은 사랑의 언어를 체득한다.

다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부모님에게 하루의 '소음'을 수어로 전달할 때, 관객은 깨닫는다.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은 시끄러운 드라마나 격정이 아니라, "오늘도 무사히 밥을 먹고, 함께 웃고, 잠자리에 드는" 이 조용하고 반복적인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을.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이 가족처럼 묵묵히 생로병사를 감당하며, 소리 없는 결핍 속에서도 서로에게 닿으려는 끊임없는 노력은 아닐까?

이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영화일지 모르나, 우리의 내면에서는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다이의 성장은, 우리가 평생 외면하고 싶었던 인생의 담담한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 보게 한다. 그 진실 속에서 우리는 슬픔과 동시에, 가장 순수한 행복을 발견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라는 새로운 소음의 세계로 떠나기 직전, 다이가 어머니와 함께 시내 쇼핑을 한다. 돌아오는 전철에서의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순간이다.

전철 안은 낯선 타인들의 '소음'으로 가득 찬 세상의 축소판이다. 사춘기 이후, 다이는 어머니를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이 날만큼은 긴 이별을 앞둔 다이가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수어로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전철에서 내린 어머니가 다이에게 건넨 "고맙다"는 수어 한 마디.

이 한마디는 다이의 내면을 강타하고 그 순간 그는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언제나 세상을 향해 당당했고 세상 또한 부모님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직 아들인 나 자신만 부모님을 부끄러워했구나. 그리고 어머니는 언제나 그 사실 때문에 슬퍼하셨구나!'

부모님은 장애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삶을 영위해 왔다. 하지만 그들의 유일한 아들이 자신들을 '부끄러워했던' 사실, 그리고 그 사실 때문에 아들이 보였던 비수 같은 말과 행동들... 어머니는 그 모든 세월의 상처를 침묵 속에서 '견뎌왔던' 것이다.

다이의 오열은 바로 이 '어머니의 슬픔'에 대한 참회의 폭발이다. 자신이 부모님에게 가한 슬픔의 깊이를 깨달았을 때, 다이는 비로소 인간으로서 가장 원초적인 감정, 즉 죄책감과 사랑의 무게에 압도된다.


동양 사상의 ‘효’에는 위아래로 방향이 다른 두 갈래의 뿌리가 있다.

하나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을 인류 보편의 사랑으로 확장한 '인(仁)'.

다른 하나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공경과 복종을 강조한 지배이념 '충(忠)'.

'효'개념의 진짜 핵심은 바로 '부모의 자식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에 있다.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가? 부모는 자식을 위해 그럴 수 있다. 사람이 자신을 슬프게 한 존재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부모는 자식을 결코 미워하지 않는다.

다이의 오열은 이 조건 없는 사랑의 무게를 깨달았을 때 터져 나온다. 부모의 사랑은 다이의 모든 실수와 결함을 덮고도 남는 거대한 바다와 같으며, 그 사랑이 바로 이 가족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한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이 글을 읽고 '부모님께 효도하자는 거?'라고 정 반대로 이해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위해 명료하게 다시 외친다. "우리 자식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자"

부모 답지 않은 부모가 많아지는 세상이 문제다. 젊은이들은 잘못이 없다.

나라의 부모라고 하는 작자들이 내란을 일으켰던 게 이제 겨우 1년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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