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자, 제발

< 칠드런 오브 맨 Children of Men >

by simpo

이래도 안 볼래

# 롱테이크로 찍은, 인류를 위한 가장 거칠고 아름다운 유서.

# 내일 출근하기 싫어서 지구가 멸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봐!

# 이 영화 촬영 감독에 주목해 보자. 왜 냐고? 영화 안 봤군.

# '엠마누엘 루베즈키' 카메라 감독. 아카데미 촬영상을 3년 연속받았다. 롱테이크 달인이다.

멕시코 출신으로 세 번의 오스카 촬영상을 모두 멕시코인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수상했다.

2014년, '그래비티'(알폰소 쿠아론 감독), 2015년 '버드맨'(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그리고

2016년 '레버넌트'(또 이냐리투)

# 나는 롱테이크 기법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 나오는 두 번의 롱테이크 시퀀스는

"압도적"이다! 안 봤으면 꼭 보시라!

# 2006년에 개봉한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2027년이다. 우리나라에는 개봉한 지 10년이나 지난

2016년에 개봉했다. 아마도 흥행에 실패한 탓에 초기에 관심을 받지 못해서 일거다.

# 인류 최후의 임산부 '키(Kee)'와 그녀의 아기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를 은유했다.

아기의 친부를 모른다는 점은 처녀 임신을 암시하고, 키가 자신의 임신을 밝히는 장소는 마구간이다.

키가 아기를 낳기 위해 먼 길을 떠나고, 아기를 죽이려는 자들로부터 몸을 피한다.

요셉과 마리아가 헤롯 왕을 피해 베들레헴을 떠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 제목 'Children of Men'도 성경에서 따 온 것이 분명하다.

“사람의 자식"(Son of Man)은 신약에만 80번 정도 나온다. 구약 성경에서는 벤-아담(아담의 자식), 즉 인간을 이르는 명칭인 반면, 신약 성경에서 사람의 자식이라 하면 바로 예수를 가리킨다. 예수 본인이 자기 자신을 가리켜 “사람의 자식”이라고 불렀다.

인간의 아이들은 곧 하나님의 아이들이며 모든 탄생은 기적이다! 아멘. 제발 아이를 낳자!!!

# 엔딩 크레디트 뒤 나오는 'Shantih Shantih Shantih(샨티 샨티 샨티 / 평화 평화 평화)'는 본래 산스크리트어다. T.S. 엘리엇의 장시 '황무지'의 전체를 종결하는 시구로 유명해졌다. 시 황무지와 본 작품은 주제가 같다.

# 상당히 심오한 철학적 깊이가 있는 영화이면서도 아주 아주 재미있다. 안 본 사람 있으면 반드시 보시라.

# BBC가 뽑은 21세기 최고의 영화 13위다.


뻔뻔 평점

* * * * * * 6개. 6개 준 적이 오랜만이어서...

영화 읽기

영화 좀 본다는 인간들이 모이면 꼭 나오는 작품이 있다. 알폰소 쿠아론의 <칠드런 오브 맨>. 개봉 당시엔 마케팅 실패로 쪽박을 찼지만, 지금은 SF 걸작의 반열에 올랐다. 사람들은 보통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입에 거품을 물고 '롱테이크(Long Take)'를 찬양한다. 후반부 켑스 난민 수용소의 시가전 장면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대단하다. 카메라에 피가 튀어도 컷을 나누지 않고 밀고 들어가는 그 집요함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단순히 '촬영 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차력 쇼' 쯤으로 기억한다면 번지수를 한 참 잘못 찾았다.

이 영화를 굳이 다시 꺼내 든 이유는 영화 기법 때문이 아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지독하게 현실적인 종말'과, 그 시궁창 속에서 피어나는 '먼지 같은 희망'이 지금 우리의 꼬락서니와 너무 닮아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은 2027년 런던. 멸망은 생각보다 조용하지만 한편으로 참 구질구질하다

전 세계 여성들이 불임이 되어 더 이상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세상이다. 인류 최연소자였던 '베이비 디에고'가 죽자 세상은 슬픔에 잠긴다.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미래가 없다는 사실에 미쳐버렸거나, 쾌락에 빠졌거나, 아니면 정부가 나눠주는 자살 키트(Quietus)를 기다릴 뿐이다.

이 영화가 무서운 건, 멸망의 풍경이 너무나 익숙해서다. 레이저 빔이 날아다니고 외계인이 침공하는 게 아니다. 거리는 쓰레기로 넘쳐나고, 난민들은 철창에 갇히며, 관료들은 무기력하다. 2006년에 만든 영화가 2020년대의 뉴스를 예언서처럼 보여준다. 쿠아론은 알고 있었던 걸까? 세상이 망한다면 펑하고 터지는 게 아니라, 천천히 썩어 문드러질 것이라는 걸.

주인공 테오(클라이브 오웬)는 영웅은 아니다. 그는 한때 사회 운동가였지만 지금은 알코올에 찌든 무기력한 공무원이다. 돈 때문에 전 부인의 부탁을 들어주다 억지로 사건에 휘말린다. 총을 쏘며 적을 제압하는 건 그의 몫이 아니다. 그는 그저 기적적으로 임신한 흑인 소녀 '키(Kee)'를 지키기 위해 맨발로 뛰고 구르고 얻어터질 뿐이다.

이 영화의 백미는 후반부 롱테이크 시가전이다. 포탄이 터지고 총알이 빗발치는 생지옥 한가운데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총성이 멈춘다. 군인도, 반란군도, 난민도 모두 멍하니 아기를 쳐다본다.

"울지 마라, 아가야."

누군가 중얼거린다. 그 짧은 정적. 인류가 멸망해 가는 그 순간에 찾아온, 압도적인 성스러움. 하지만 영화는 다행히도 할리우드 식 신파로 빠지지는 않는다. 그 숭고한 순간이 지나자마자 다시 총질은 시작된다. 그게 현실이니까. 희망이 보인다고 해서 세상이 갑자기 천국으로 변하니?

결국 테오는 목숨을 바쳐 키와 아기를 '미래(Tomorrow)'라는 이름의 배가 올 약속 장소로 보낸다. 그는 피를 흘리며 죽어가면서도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불친절한 결론: 희망은 개연성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그래서 인류는 구원받았나요?" 솔직히 알 게 뭔가. '미래'호가 진짜 인류 프로젝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수용소로 가는 배인지 영화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중요한 건 테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쓰레기장이고, 내일이 없을 것 같고, 내가 하는 짓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아도, 생명(희망)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다.

<칠드런 오브 맨>은 우리에게 무심하게 한마디 하고 있다. 희망은 화려한 조명 아래서 오는 게 아니라고. 가장 더럽고, 비참하고, 절망적인 곳에서, 개연성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게 희망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오늘 하루가 시궁창 같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마라. 안갯속에서 '미래'호가 오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Shantih, Shantih, Shantih.


매거진의 이전글두 개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