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담 J Jul 02. 2024

생각보다 괜찮아

[우울증 환자 생존기] 잘 하고 있어

프로젝트 2개에 참여하고 있다. 하나는 멘토로, 하나는 프로젝트 매니저로. 중간에 행사 기획/운영 매니저로 용역 제안서도 하나 썼다. 예전에는 접시를 17개씩 돌렸는데, 3개만 되어도 벅차다 느꼈다. 마음의 여유가 없달까. 모든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무엇에든 자신이 없었다. 사람을 만나고 실행하기 전에는 긴장이 엄청 되었다. 공유문서로 작업했는데 피드백이 없으면 '내가 뭘 잘못해서 상대방이 뭔가 마음이 상했나?' 걱정도 되었다. 막상 강의와 멘토링을 해보니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것이 내 안에 충분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그렇게 나쁜 작업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참 다행이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그냥 물 속에 끝없이 잠기는 나를 어떻게든 건져 올려서 물에 젖은 목화솜 이불같은 묵직한 뭄과 마음으로 겨우겨우 일을 마치고도,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를 못 느꼈었다. 그런 피드백을 충분히 받지도 못했고, 스스로 그런 피드백을 만들어내는 것에도 너무 지쳐 있었다. 그런데 밖에 나와서 일을 하니, 자신감 없는 나도 너무 잘 느껴졌지만 막상 일을 해내고 피드백을 받은 이후의 성취감도 잘 느껴졌다. 내가 엄청 쫄아서 하는 일들이 막상 하고 나면, 나쁘지 않은 피드백들을 받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안심도 되었다.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게 나에게 기회를 많이 주고 싶다.




병원에 다녀왔다. 이제 아침약을 1개만 먹기로 했다. 공황증 약을 접었다. 수면제도 용량을 조금 줄여서 잠자는 시간을 줄여보기로 했다. 지금은 3알 다 먹으면 10시간에서 12시간씩 자니까 좀 줄여도 될 것 같다. 대신 3알을 먹으면 잠은 잘 와서 좋았기 때문에, 3알 중 일부 약의 용량만 조금 줄여보기로 했다. 선생님이 웃으면서 "이제 불안하지도 않고, 공황도 안 오죠?" 라고 물었다. 그렇다. 불안한 것도 없고 공황도 없다. 이렇게 사람이 멀쩡하게 살 수도 있구나 싶게 마음이 편하다. "무기력증도 없으시구요?" 무기력한 것도 없다. 그냥 심심할 뿐이다. 


회사를 그만 둔 것에 대해서 아직도 생각한다. 만약 내가 병휴직을 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마음이 편했을까? 회사를 그만 둔 이유 중 하나는 아침에 도저히 일어나기가 어려워서 회사에 갈 수가 없으니까, 근태불량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만둔 것도 있는데, 병휴직을 내고 지금처럼 수면제를 조정했다면 달라졌을까? 모든 것을 제치고 병휴직을 냈더라도 이 회사와의 인연이 계속 된다는 것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았겠지? 그러니까 이런 편한 마음은 갖지 못했겠지? 


의사 선생님이 그동안 못 간 여행도 다녀오라고 했다. 본인 같으면 남미나 아이슬란드 같은 곳을 가겠다고. 지금 당장은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서 길게 어디를 다녀오기 어렵기도 하고, 아직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선생님 말을 듣고 나서 울릉도를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어제 어떤 글을 봤다. 20대 여자가 졸업 후 3년간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다가 부모님과 갈등 후 독립해서 각종 알바를 하다가, 쿠팡 알바를 8개월 동안 하고, 60여 곳에 이력서를 낸 후 소기업이지만 취직했다는 내용이었다. 무기력에 시달리다가 생계를 위해서 일을 시작하고 나니까 뭔가 의욕도 생기고 생기가 돌았다는 경험담을 보면서 나도 혼란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좀 더 적극적으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혹시 취직하고 싶을 때 왜 그만뒀는지, 그만두고 공백기간 동안 뭘 했는지 이야기하려면 나도 뭔가 생동감 있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개월에 100만원, 총 5개월간 진행되는 프로젝트 하나에 추가 합류하게 되었다. 그나마 일이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 것에 감사하면서 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데 집중해야겠다. 남편이 취직하고 나면 그래도 경제적으로 좀 더 안정이 되겠지. "나는 언제 취직할까?" 물어보니 나 하고 싶을 때 하란다. 아직은 취직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좀 더 느긋하게 보내도 되려나. 어쨌든 드디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것에 감사하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 백수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