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잘 하고 있어
병원에 다녀왔다. 이제 아침약을 1개만 먹기로 했다. 공황증 약을 접었다. 수면제도 용량을 조금 줄여서 잠자는 시간을 줄여보기로 했다. 지금은 3알 다 먹으면 10시간에서 12시간씩 자니까 좀 줄여도 될 것 같다. 대신 3알을 먹으면 잠은 잘 와서 좋았기 때문에, 3알 중 일부 약의 용량만 조금 줄여보기로 했다. 선생님이 웃으면서 "이제 불안하지도 않고, 공황도 안 오죠?" 라고 물었다. 그렇다. 불안한 것도 없고 공황도 없다. 이렇게 사람이 멀쩡하게 살 수도 있구나 싶게 마음이 편하다. "무기력증도 없으시구요?" 무기력한 것도 없다. 그냥 심심할 뿐이다.
회사를 그만 둔 것에 대해서 아직도 생각한다. 만약 내가 병휴직을 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마음이 편했을까? 회사를 그만 둔 이유 중 하나는 아침에 도저히 일어나기가 어려워서 회사에 갈 수가 없으니까, 근태불량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만둔 것도 있는데, 병휴직을 내고 지금처럼 수면제를 조정했다면 달라졌을까? 모든 것을 제치고 병휴직을 냈더라도 이 회사와의 인연이 계속 된다는 것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았겠지? 그러니까 이런 편한 마음은 갖지 못했겠지?
의사 선생님이 그동안 못 간 여행도 다녀오라고 했다. 본인 같으면 남미나 아이슬란드 같은 곳을 가겠다고. 지금 당장은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서 길게 어디를 다녀오기 어렵기도 하고, 아직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선생님 말을 듣고 나서 울릉도를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어제 어떤 글을 봤다. 20대 여자가 졸업 후 3년간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다가 부모님과 갈등 후 독립해서 각종 알바를 하다가, 쿠팡 알바를 8개월 동안 하고, 60여 곳에 이력서를 낸 후 소기업이지만 취직했다는 내용이었다. 무기력에 시달리다가 생계를 위해서 일을 시작하고 나니까 뭔가 의욕도 생기고 생기가 돌았다는 경험담을 보면서 나도 혼란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좀 더 적극적으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혹시 취직하고 싶을 때 왜 그만뒀는지, 그만두고 공백기간 동안 뭘 했는지 이야기하려면 나도 뭔가 생동감 있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개월에 100만원, 총 5개월간 진행되는 프로젝트 하나에 추가 합류하게 되었다. 그나마 일이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 것에 감사하면서 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데 집중해야겠다. 남편이 취직하고 나면 그래도 경제적으로 좀 더 안정이 되겠지. "나는 언제 취직할까?" 물어보니 나 하고 싶을 때 하란다. 아직은 취직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좀 더 느긋하게 보내도 되려나. 어쨌든 드디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것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