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내가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들
남편이 회식하고 들어왔다. 하루 종일 혼자 있어서 빨리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름 빨리 들어왔다. 그 사이 나는 운동 선생님과 사랑이를 달래가며 운동을 했다. 남편이 들어와서 이야기를 나눴다.
남편이 말했다. "친구가 너랑 나잖아? 매일 만날 수 있는 친구가 한 두명 있으면 되는 것 같아. 다른 친구는 필요없을 것 같아. 요즘 너를 보면 운동 선생님이 최고의 친구같아.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고 운동 선생님 만나고 나면 기분도 좋아지고. 다른 멀리 있는 친구들보다 훨씬 너에게 좋은 것 같아." 맞다. 요즘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남편, 운동 선생님, 상담 선생님이다.
멀리 있는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낫다는 말이 맞다. 가까이서 자주 만나고, 서로 용기를 나눠가질 수 있는 사람이 제일 좋은 친구다. 요즘 쇼펜하우어의 책이 유행이다. 혼자서도 잘 살라는게 요지인데, 오롯이 혼자서만 살 수는 없다. 물론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힘을 기르면 함께도 잘 살 수 있다.
예전에는 약속도 많고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나를 보는 사람들은 내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녀서 내가 다양한 지인을 사귀는 매우 사교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힘든 시간을 지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서면 그렇게 허무했다. 밀려오는 허무감에 내가 왜 사람을 만나려고 계속 노력했을까 싶었다. 사람들로부터 힘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던 거다. 그래서 힘든 시간을 혼자 견디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견뎠다.
결혼을 하고 대학 때 친구들과 소식이 끊겼다. 그들이 돈독해지는 사이, 내가 혼자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서 그들 관계에 엮일 순간을 놓치면서 유대감이 끊어졌다. 그게 많이 상처가 됐다. 20년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하루아침에 연락을 안 하게 되니, 상실감이 어마어마했다. 지금도 가끔 그 상실감이 덮쳐올 때가 있다. 하지만, 벌써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지금 생각하면 그냥 그렇게 될 일이었다. 나는 친구가 먼저 세상을 떠난 경험이 있어서 누군가가 생각나면 바로 연락하고 만나곤 했는데, 한 쪽이 늘 먼저 연락해서 만나는 친구사이는 평생 가기가 어려운 것 같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손을 내미는 경우 그 관계는 유지하는데 에너지도 많이 들고 한쪽이 지치면 이내 끊어지기 마련이다. 어릴 때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에 모두에게 잘 하고 싶고, 있을 때 잘 하고 싶어서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꾸준히 이어가려고 꽤나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스쳐가는 인연에 모두 의미를 둬서 괴로운 거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 훨씬 와닿았다. 인연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스쳐가는 모든 것에 의미를 두지 말아야 한다. 흘러가는 것은 흘러가는대로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모두 각자의 인생이 있다. 이제 어떤 누구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와도 흘러간 인연에 대해서는 '그런가보다' 할 것 같다.
나에게는 지금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나의 생활에서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서로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잘 하면 된다. 앞으로도 엄청 많은 친구를 만들려고 노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친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보람있고, 삶에 도움이 되는 시간이 되기가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영하도 20대 때 친구들과 보낸 시간을 혼자서 사색하고 책 읽는 시간으로 썼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다. 친구들과 보낸 지난 시간이 아쉬울 때가 있다. 내가 더 단단해지는데 큰 도움은 안 된 것 같다. 뭐 그 때는 그게 더 중요하고, 즐겁게 느껴졌으니까 그랬겠지만, 인생이 중반을 지나가니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힘들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내 진짜 친구다. 서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나이가 들어서 이 모든 걸 안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겪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말해줘도 안 들린다는 게 웃기기도 하다.
긴 휴가가 시작되었고,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중이다. 새로운 공부도 시작했고, 순간순간 기분이 다운되지만 뭔가 움직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중에 만나고 싶은 친구들은 아주 오래되고, 언제 만나도 어제 만난 것 같은 친구들 두어명 뿐이다. 이 시간을 잘 보내서 다시 건강한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앞으로의 시간이 설레고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잘 보내기 위해서 나를 움직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