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내 몸의 맞장구 스위치를 켜놓아라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by 윤호준

나는 기업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B2B영업을 했다. 그 과정에서 드라마틱하고 짜릿한 수주 사례들도 많았고 또 몸속의 모든 기능이 번아웃되는 피말리는 경쟁상황들도 많이 경험했고 또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실패의 순간도 맞이해야 했다. 그중에서 그 규모가 손꼽을 정도로 큰 대형 사업의 수주 결과가 해당 업계에서 오랫동안 회자된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해당 사업에 대해서 우리 회사는 진입 초기였던 터라 수주 확률이 경쟁사들에 비해 떨어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때 사업이 최종 종료된 후 발주사의 결정권자와 만나서 차 한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경합했던 4개 회사의 제안서 평가 결과를 최종적으로 분석한 결과 정말 박빙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업추진단에서 엄청 고민을 했죠. 그때 제가 평가에 참석했던 단원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사업의 제안 과정에서 어느 회사가 가장 적극적이었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어느 영업대표가 가장 절실한 자세로 경쟁에 참여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정말 놀랬습니다. 평가단원 모두가 차장님 회사를 선택했습니다. 게다가 그 중의 한 분이 'A 영업대표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어깨가 들썩여지고 뭔가 에너지가 생겨납니다. 아마도 제 한마디 한마디에 딱 맞는 맞장구를 쳐주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하. 놀랍지 않습니까? 그 맞장구가 사업자로 선정된 이유입니다."



우리 동네와 회사 주변에는 편의점들이 정말 많다. 브랜드별로 목 좋은 블록의 코너마다 편의점들이 점령하고 있다. 그런데, 그 편의점들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어떤 편의점은 항상 사람들로 가득하여 줄을 서서 계산을 하고 있고, 또 어떤 편의점은 뭔가 휑할 뿐더러 손님들은 간간이 출입하고 있었다. 어느 날 무알코올 맥주를 사기 위해 X 편의점에 들러서 무알코올 맥주의 진열 위치를 물었더니, '맥주 코너에서 찾아보시면 됩니다.'라면서 싱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개를 숙여서 한참을 찾으니, 딱 2종류의 무알코올 맥주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찾던 브랜드가 없어서 다른 P 편의점에 가서 똑같이 물었다.


"네, 손님! 우리 매장에는 총 4종류의 무알코올 맥주가 있습니다. 이쪽으로 와 보세요. 여기 맨 위쪽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습니다. 추가로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라고 말하고는 황급히 계산대로 돌아갔다. 직원의 애티튜드에 의해 매출이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해가 갈수록 재활용품 분리 배출량이 늘어난다. 그래서 배출 주기를 주 1회에서 주 2회로 늘렸다. 그런데 분리수거장소로 가면 약간 신경에 거슬리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경비원이나 업무지원센터 직원이 옆에 서서 제대로 분리배출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는데, 뭔가 감시당하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 후에 재활용품 바구니를 들고 갔더니, 어떤 처음 뵙는 할아버지가 나를 맞이했다. 여기서 내가 왜 '나를 맞이했다'라고 표현을 했을까? 그분은 내가 수거장소로 들어가자 바로 내가 들고 있던 재활용품 바구니를 빼앗아 가더니, 곧바로 능숙한 손짓으로 종류별로 구분된 분리배출을 끝내버리는 것이다. 그러고는


"퇴근하고 분리배출하기 귀찮죠? 허허. 바구니에 담아 오더라도 종이류와 비닐류는 별도의 봉투에 따로 모아서 오는 것이 편해요."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동안 재활용품 분리배출 때문에 거슬렸던 누적된 불편함들이 순식간에 해소되었다.




지방 출장이나 여행 때문에 내 생활 근거지를 벗어난 곳에서 식당을 찾는 일이 많다. 그럴 때마다 그 식당들의 만족도는 금세 결정 난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의 분위기와 자리에 앉았을 때의 반응만 봐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제대로 서비스를 받기 위한 상황을 언급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상호 커뮤니케이션과 배려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도 묵묵부답인 경우들이 많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뭘로 드실래요?'라고 묻는 경우들도 있다. 또 어떨 때는 바짝 붙어서 과잉 주문을 추천하기도 한다. 반면에, 다시 찾고 싶은 식당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서 오세요. 날씨가 춥죠? 편하신 자리에 앉으세요' 그러고는 손님이 자리에 앉아서 메뉴를 골랐다는 제스처를 취하면 '뭘로 준비해 드릴까요? 넵. 약 10분 정도 걸립니다.' 그리고 심지어 반찬 그릇들이 비면 먼저 다가와 '반찬 더 가져다 드릴까요?'라고 묻기도 한다. 친절한 말 한마디로 서로가 행복한 커뮤니케이션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누군가는 억지로 그 시간들을 의무적으로 때우며 보내고, 또 누군가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며 보내고 있는 것이다.




수산시장이나 전통시장에 가면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과도한 호객행위와 마주하게 된다. 특히 회센터를 갈 때면 지역에 상관없이 비슷한 장면들이 연출된다. 일단은 손을 뿌리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또 '이리 오세요. 이리 오세요'라고 하는 애타는 목소리가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러니 그 상황에서 큰 목소리로 부르거나 혹은 과도하게 잡아당기거나 하면, 오히려 쳐다보지 않거나 도망을 가게 된다. 가벼운 미소에 낮은 목소리로 맞이하는 부담을 덜 주는 집에서 멈추게 된다. 고객에 대한 반응이 장소와 상황에 따라 너무나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최근 인간의 가장 활발한 소통 수단인 SNS를 할 때도 적절한 맞장구는 매우 중요하다. 참가자 수가 백 명이 넘는 단톡방에서는 짧고 명료한 문장으로 팩트를 얘기하는 것이 맞겠지만, 친목모임이나 가족이나 친구 모임에서는 맞장구가 큰 역할을 한다. 말로 표현하기가 애매한 상황에 대해서는 이모티콘이나 줄임말로 재치 있게 맞장구를 쳐주는 문화도 좋다. 물론 SNS는 늘 오해를 야기할 수 있는 소통 방법이다. "내가 알아서 알게" "응. 그건 내가 알아서 한번 해볼게." "내 알아서 할게." "알아서 해야지." "알아서. ㅠㅠ" 등등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동일한데, 상대방에게 전해지는 메시지는 정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소통은 직접 목소리로 해야 한다. 특히 어떤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얼굴을 마주 보고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상호 간에 느끼는 뉘앙스의 차이가 대인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자나 카톡을 보내기 전에 꼭 한번 다시 읽고 나서 보내야 한다. 읽은 횟수만큼 수정할 단어나 오탈자가 발견될 것이다.



지금까지 일상생활에서의 맞장구나 상황에 대한 반응 그리고 사람들과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살면서 경험한 것들 중에서 일부분을 소개해 보았다. 이는 전문적인 교육과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큰 대가를 지불해야만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각자가 그 필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조금씩 습관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길들이면 되는 것이다. 혹시 그것이 귀찮고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태도를 항시 모드로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저 상대방이 있을 때만 스위치를 켜면 된다. 내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또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해 준다는데, 어쩌겠는가? 이제부터 누군가와 함께 있거나 혹은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는 미리 내 몸에 설치된 맞장구 스위치를 켜라.

keyword
작가의 이전글1-20. 가해차량과 아우디차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