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경조사비 일몰법 만들자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by 윤호준

국가가 부강해지고 사회가 발전할수록 그 구성원들은 점점 불편하고 애매한 것들을 싫어하게 된다. 각자가 속한 조직 내의 독특한 보스의 지시사항이나 혹은 형식적인 관계에서 비롯되는 의무적인 상황들을 제외하고는 불합리한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살면서 마주치는 많은 일들을 두고 자주 계산기를 꺼낸다. 국민으로서 혹은 시민으로서 혹은 직원으로서 어떤 손해를 보는 것도 싫어하지만, 더불어 어떤 측면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워한다. 특히 젊은 세대부터 시작된 혁명적인 더치페이 제도는 이제 전 연령대로 확산되어 일반적인 계산 문화로 정착되었다.


그렇게 세상은 불편이나 불평등과는 동행할 수 없는 수학적 관계가 지배하게 되었다. 갈등이나 뒤끝이 없는 사회적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의 일상에는 어떤 불편한 관습 하나가 깊숙이 뿌리 박혀 있다. 현재로서는 그 관습을 누구도 함부로 건들지 못하지만 또 언젠가는 우리들이 꼭 해결해야 할 숙제 같은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상부상조의 관습에 익숙해져 있고 그것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며 아주 중요한 일상의 절차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이를 냉정하고 심각하게 평가해 보면 가끔은 '어떤 잘못을 하지 않고 의심을 받는 것처럼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는 이 관습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통해 정확한 여론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 방안을 연구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 전체가 힘을 모아 이 무거운 공을 저 푸른 창공을 향해 쏘아 올려야 한다


이 시대의 금요일은 바야흐로 힐링과 설렘의 밤이다. 지금 이 저녁시간부터 평화로운 주말이고 바로 지금부터 48시간 이상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설레는 시간을 맞이하는 우리의 일정표가 주말에 집중되어 있는 경조사 참석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더욱이 그 경조사의 발생지가 지방이라면 토요일과 일요일 전체를 다 할애해야 하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물론 가까운 친인척과 관련된 행사라면 그런 이벤트를 통해 오랜만에 친척들과 만날 수 있으니 기대감에 피로를 잊을 수도 있다. 그리고 가까운 친구의 일이라면 그 어떤 것도 다 소화하고 감내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제도의 확장된 덫에 걸려 허덕이고 있다. 회사 동료, 동호회 회원, 업무와 연관된 지인들까지도 두루두루 챙겨야 하는 풍토로 너무나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스마트폰과 통신의 획기적인 발전이 큰 역할을 했다.



주말 행사 참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볍게 생각해 본다. '전 직장동료의 아들이 서울시내 호텔에서 결혼식을 한다는데, 축의금을 얼마를 내야지? 요즘 호텔 뷔페는 15만 원까지도 한다는데 말이야. 아니면 점심 식사는 눈치껏 패스해야 하는 걸까?' 등을 상의하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섣부른 판단으로 상호 간에 돌이킬 수 없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약 3개월 전에 부친상 장례식을 치르고 온 옛 동료가 점심 식사 후 커피 한잔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나라 경조사 문화 말이야. 이거 어느 대통령이든 큰 결단을 내려서 이런 관습을 점진적으로 없애든지 아니면 모두가 인정하는 적절한 기준을 마련해 주든지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우리나라 같은 독특한 유교 사회에서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기 힘든 민감한 문제라고는 알고 있지만, '대통령령 시행령' 이런 걸로 해결하면 안 될까?"


"왜 이번에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일이 있었다기보다는 내가 한번 직접 겪어보니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은 경조사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 다르고 그 기준도 분명하지 않으니 국민들이 혼란스러워하잖아."


"그래, 참고할 만한 기준이 없는 것은 맞지. 내 생각엔 정치권에서 시동을 걸지 않는다면, 시민단체가 이를 이슈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맞아. 누군가는 5만 원, 누구는 10만 원, 또 다른 이는 20만 원. 심지어 3만 원도 있고. 그런데 이건 정말 내가 이런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좀 섭섭했던 것은 지금 내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 직원들 중에서도 70%는 부의를 하고, 나머지 30%는 안 했더라고."


"그래? 그건 좀 의외네. 10% 정도라면 부지불식 중에 놓쳐버릴 수도 있겠다 했을 텐데, 30%는 좀 놀랍네."


"그런데, 정말 내가 진짜 당황한 것이 뭔지 알아? 이런 일들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그 30%를 찜찜하게 느꼈다는 것이야."


"ㅎㅎ. 그건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그렇다고 그걸 어떻게 조치할 방법도 없으니, 지금은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동료는 이렇게 거들었다.


"그것이 국가적으로 접근하기 힘든 문제라면 나는 적어도 우리 회사 내에서라도 적절한 가이드를 만들어서 배포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 솔직히 퇴직자의 자녀가 결혼을 한다며 '노동조합'을 통해 경조사 안내 이메일을 보내오면, 나는 솔직히 좀 망설여지더라고. 그리고, 어떤 사람은 형제자매 사망에 대한 부고장도 보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본인 결혼식인데도 축의금은 사절한다는 양해의 글을 보내기도 하고... 참 각양각색이지. 이런 것은 조직 내에서 기준안을 만들 수 없는 영역일까?"


"듣고 보니 박 부장 말도 일리가 있네. 회사 내에서라도 기준을 만들어서 배포하고 홍보해서 운영을 해 본 다음, 일정 기간 경과 후 그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되어 정착화되면 자연스럽게 사회 전체로 확대될 수도 있겠지."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경조사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실제로 장례식장에 직접 조문이 금지된 기간도 있었으며, 결혼식의 최대 하객수를 정해 놓고 진행하도록 권고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공포 속에서 3년을 보내면서, 경조사비에 대한 자동이체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되기도 했다. 청첩장이나 부고장에 '마음 전하는 곳'이라고 안내해 놓고 직접 방문보다는 계좌이체를 유도하는 것이다. 어쩌면 과도기적인 측면에서 절묘한 대안이라고 본다.



나는 기회가 생긴다면 이 문제를 이슈화해보고 싶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인공지능, 메타버스, 로봇, 무인 항공 등 4차, 5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지향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뿐인가? 우리의 핏속에 강렬히 흐르는 풍류의 DNA를 살려서 K-컬처를 만들어 내지 않았는가? 이제는 문화영역이 국가의 중요한 산업분야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회의 구성원들이 원칙도 없고 기준도 없는 애매한 '경조사 관습'에 의해 작은 오해와 불신을 일으켜서야 되겠는가?



나는 확신한다. 이제는 시도할 때가 되었다. 공청회와 연구와 통해 가장 보편타당한 기준안을 만들어서 일정 기간 시범적으로 운영하다가, 2030년에는 이 확대된 경조사 관습을 폐기하는 일몰법을 제정해야 한다. 지금부터 공론화 과정을 통해 경조사비 기준안을 만들어 약 4년 정도 운영해 보자. 그 결과에 따라 약 3년간 단계별로 제한적으로 운영하다가 2030년에는 가족끼리의 행사로만 경조사 제도를 허용하는 것이다. 애매한 것을 분명한 것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희생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누구는 손해고 또 누구에게는 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꼭 한 번은 거쳐야 할 과정이다. 지금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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