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아들이 만든 생일케잌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이 시대에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낸다는 것은 정말 비극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그 신분 자체로 안타깝고 애처로운 일이다. 어쩌면 이 땅의 어른들은 MZ 세대들의 버릇없음과 단순함과 이기심 등 생각의 차이를 논하지 말아야 한다. 찬찬히 그들의 하루를 한번 따라가 보라. 하루를 제대로 인간답게 살아가는 이가 몇이나 있겠는가? 인성이 형성되어 가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수학학원에서 영어학원으로 그리고 학교에서 관리형 독서실로 하루 종일 책상과 호흡하고 책과 노트와 씨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다.
학군이 좋다는 대도시의 한편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가족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유명 학원이 많이 밀집된 곳 인근으로 학교를 선택하고 또 독서실 근처로 이사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를 압박했다. 그렇게 온 가족이 하나의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면서 '공부'라는 것에 빠져들면 결국은 누구나 만족해하는 그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기에 지금 학업에 투자하지 않으면 이후에는 기회도 없을 것이라는 조급한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중간중간에 이 길이 옳은지에 대한 갈등도 엄청났다. 어깨가 축 처진 채로 책가방을 둘러매고 학원 투어를 하는 아들을 보며 기분이 상쾌할 리가 없었다. 이렇게 매일 학원을 가야 하는 걸까? 이렇게 매일 독서실 혹은 스터디 카페에 머무는 것이 맞는 걸까? 도대체 이들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이 오직 '공부'밖에 없단 말인가?라는 생각으로 우리나라의 학벌 지상주의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 있었던 적도 많았으니까 말이다. 물론 아들에게는 그런 갈등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말이다.
학원이나 학교에서 잘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아들에 대한 신뢰 50%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되는 설득과 애잔한 등 떠밀기 50% 정도로 고등학교 시절을 지탱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인서울이 가능한 상위 10%를 유지하는 것도 팽팽하고 또 간당간당했다. 실제 최근 TV 드라마의 소재로 많이 등장하는 것처럼, 부모 중에 누군가가 하루 종일 따라다니면서 밀착 관리를 하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유명하다는 대학들에 이름을 올릴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려면 그 드라마처럼 정말 독해야 한다. 아이도 뭔가에 잔뜩 홀린 것처럼 지독해야 하고, 부모도 시간과 마음과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 사춘기 즈음의 청소년과 3년 동안을 아니 어쩌면 6년가량을 그렇게 잔인한 일상으로 보내는 것은 '인간승리' 아니 '무서운 가족극'이다. 결국 나도 그리고 아들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정말로 오늘의 결과에 만족한다. 어쩌면 이번 선택이 아들에게 최적의 분야로의 대망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날이 갈수록 기대가 되는 확신이었다. 비록 아들이 장담했던 라인들에 걸치지 못했지만 그리고 내가 희망했던 이름표에 미치지 못했지만, 아들이 이 길로 가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믿기로 했다. 누군가는 그런 마음을 더욱 확고하게 심어주기도 했다. 아들에게는 '타고난 예술적 감각과 남다른 강열한 의지와 착하고 곧은 마음씨'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은 정말 빨리 발전하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들이 주인공으로 사는 세상은 지금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 비정상적인 사회와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아마도 '공부'에 승부를 걸어서 취업이나 성공으로 가는 길은 30%도 안될 것이다. 제각기 나름대로 갖고 있는 특성과 끼를 살려서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거나 혹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다루는 현란한 기술로도 훌륭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며, 농업이나 어업이 모두가 부러워하는 가장 유망한 직업군으로 등극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 확고하게 자리 잡은 학벌 지상주의와 자꾸만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타인 의식 증후군을 이 땅에서 추방시켜 줄 것이다.
그렇게 대학생이 된 아들은 드디어 오늘 등교 첫날을 맞이했다. 그러니까 이제야 자유로운 영혼이 된 것이다. 나는 여느 날처럼 퇴근하여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태양처럼 밝게 빛나고 있는 딸기 케이크를 보았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아들은 그 첫날의 오전 내내 '엄마의 생일케잌'을 직접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중간급 마트에 직접 가서 필요한 재료들을 직접 구입해서 말이다. 그 '공부'라는 것을 하는 동안 겪을 수밖에 없는 크고 작은 의견 대립으로 인해 부모 자식이 어색한 관계가 될까 봐 늘 노심초사했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공부와 진로와 미래와 신뢰 등이 복잡한 미로처럼 얽혀 우리의 가족 관계마저도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들이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환기를 해도 집안의 공기들 속에서 떠나질 않고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모르는 척하며 외출 준비를 하고 있는 아들에게 살며시 다가가 허리를 꼭 감싸 안고 손바닥으로 등을 두드리며 작은 목소리로 '잘했다.' '잘했다. 멋있다.'를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