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인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헤어스타일이다. 그래서 개인별로 오랫동안 자신의 얼굴 모양과 머릿발의 특성에 맞는 스타일을 적용하고 고수해 왔다. 그러나 어쩌면 그 스타일이라는 것이 아주 옛날 우리 동네에 터를 잡은 이발사나 미용사의 능력과 성향에 따라 좌우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든 '변신'을 시도해 볼 필요도 있다. 우리의 신상에 큰 변곡점이 생기거나 혹은 어떤 특별한 임팩트를 받아들여야 할 때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나에게 맞지 않은 스타일인데도 마치 내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 지금 거울에 보이는 나의 헤어스타일이 진정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인가?
나를 아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듯이, 나의 헤어스타일은 지난 40년 동안 올림머리였다. 그런데 그 헤어스타일은 내가 원했다든지 아니면 이발사가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냥 머리카락이 굵고 빳빳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마 위쪽으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일명 '올빽' 머리다. 우리가 익히 아는 한량들이나 카사노바들이 좋아하는 전형적인 기름기 올빽이 아니라, 군인으로 착각할 수도 있는 짧은 머리 올빽이다. 어쩌면 그렇게 머리가 짧기 때문에 더욱 강하게 혹은 단순무식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짧은 헤어스타일을 오랫동안 고수하다 보니, 지난 몇십 년 동안 2주에 한 번씩은 거의 규칙적으로 이발소나 미장원을 다녔다. 미용실의 흰 천 위로 떨어지는 머리카락도 거의 없었지만, 머리가 약간만 기준치를 넘어서면 그 스타일이 망가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미용실을 옮겨 다니며 스타일을 설명하기도 싫어서 멀리 이사를 가지 않는다면, 줄곧 한 미용실을 고집한다. 지금 다니는 미용실은 약 16년 동안 이용하고 있다. 그러니 내 차례가 되어 익숙한 의자에 앉으면, 10분도 채 되지 않아 작업이 종료된다.
헤어스타일 변경을 시도한 적이 딱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대학시절 록 밴드를 할 때였다. 국내. 외의 유명한 라커들의 헤어스타일을 동경했기에, 그들의 모든 것을 따라 하기에 급급했다. 대학 생활 2년 동안 책가방에는 오로지 악보와 소주와 새우깡을 챙겨 다녔기에, 결국 11개의 F학점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그 참담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제대 후 복학하고 나서는 거의 학교 안에서 꽁꽁꽁 틀어박혀 살아야 했다. 그러고도 높은 학점으로 졸업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또 한 번은 한창 회사 생활을 하다가 업무로 만난 사람들과 직장인 밴드를 결성해서 활동하던 때이다. 그 당시 직장인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길게 길렀던 거 같다. 직장 선배들이나 지 그 책자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면 다음날 조금 자르고 또 고객들이나 협력사 직원들이 '뭔가 좀 달라 보이네요'라고 하면 며칠 내로 약간씩 조치를 했다. 그때는 내 생애 마지막으로 '문신'을 고민해 보기도 했었다.
그렇게 40년 동안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유지했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머리를 내렸다. 어느 심리상태가 복잡했던 날, 샤워를 끝낸 후 거울을 보면서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즈음 여러 가지 주변 환경들이 한꺼번에 나의 어떤 결단을 종용하고 있었고 또 실실거리며 압박하고 조여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변화의 갈망도 어느 정도 작용을 했는지도 모른다.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나의 헤어스타일도 그렇게 변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한꺼번에'에 해당되는 일들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생애 처음으로 교통사고를 냈다. 30년 운전을 하면서 한 번도 저지른 적 없는 교통사고를 낸 것이다. 그것도 집 앞에서 유턴하다가 앞차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나의 순발력으로도 제때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 당시 생애 처음으로 지독한 '각결막염'에 걸려서 몇 주를 고생했는데, 퇴근 무렵의 그 시간에는 정말 빛 번짐과 눈부심이 심해서 세상이 겹쳐서 보이거나 혹은 흐르멍텅하게 보였다. 그런데 그것은 또 이유가 있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력 결핍이 이유였다. 당시 아들의 수능시험과 그에 따른 정시지원 그리고 원서 접수 등 가장 숨 막히는 민감한 상황들의 연속이었고, 근력은 약하지만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와이프의 건강에 적신호가 왔고 이를 인정하고 감당해 내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더불어, 내가 가장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어머니께서 '중증치매'로 인해 더 이상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최근 몇십 년 동안의 기억을 빼앗긴 것으로 추측되는데, 나는 어머니께서 마흔 살 때 낳은 막내아들이기 때문에 기억을 소환해 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한꺼번에' 닥친 이유들이 있었다.
주변의 반응은 다양했다. 전체적인 반응은 이랬다. '난 너의 헤어스타일에 별로 관심 없다'였다. 솔직히 당연하지 않은가? 나도 다른 이들의 헤어스타일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으니까 말이다. 지극히 사랑하는 연인이라면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착해 보인다'. '순해 보인다'라는 평가가 가장 많았다. 어떤 이는 '젊어 보인다'. '차분해 보인다'라고도 했다. 또는 '촌스러워 보인다'라는 평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표정 뒤엔 '거참 그냥 살지. 이제 와서 뭐 하러 헤어스타일을 바꾸느냐?'라며 비아냥 섞인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자 '올려라! 올려라! 다시 올려라!' 시위하듯이 얘기하기 시작했다. 결국 진지하게 원복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결국 머리를 내린 지 한 달 만에 손을 들었다. 다시 머리를 올려버린 것이다. 아니 절충안을 선택했다. 오른쪽은 올리고 왼쪽은 내린 채로 놔뒀다. 그것도 우연히 한번 해봤지만 나에겐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보기에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40년 동안의 올림머리도 부담스러웠고, 한 달 동안의 내림 머리도 어딘듯 어색했지만, 지금의 언밸런스 머리가 타협안으로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이제 누구도 나의 헤어스타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올림도 내림 도 아니기 때문이다. 올림도 내림 도 맞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의 헤어스타일에 만족스러워하는 것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