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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힘 좀 빼세요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by 윤호준

얼마 전에 팔목을 다쳐서 한의원에 다닌 적이 있다. 진료시간이 달라 두 개의 한의원을 번갈아 다녔는데, 두 한의사의 침자리가 확연히 달랐다. 오른쪽 팔목이 아파서 갔는데, A한의사는 왼쪽 발목 근처에 대부분의 침을 놓았고, B한의원에서는 오른쪽 팔목 인근에다만 놓았다. 어떤 한의사의 침치료가 효험이 있었는지 따져볼 수는 없지만, 그렇게 네 번의 침치료 이후에 통증이 많이 개선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두 명의 한의사들이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점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몸에 힘을 완전히 뺀 상태에서 침을 맞아야 효과가 있다는 말이었다. 뾰족한 침을 손에 하나 들고 그 옆에는 침통을 대기시켜 놓은 채, '힘을 빼세요!'라고 수차례 강요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두 분의 표정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정말 내가 봐도 내 몸에서 힘이 빼지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지 '힘을 뺄 줄 모르는 분이시네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숨과 웃음이 섞인 희한한 콧소리를 내더니, 그 상태로 침을 놓기 시작했다.


이런 해프닝은 단지 한의원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해마다 받아야 하는 건강검진의 과정에서 초음파 검사실 앞에만 가면 긴장된다. 고난도의 기술인 복부의 각 장기 위치별로 힘을 빼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그걸 못해내는 나에게 짜증을 내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끝까지 노력해서 검사를 마치고는 안도의 긴 숨을 내쉰다. 그런데, 그렇게 옆구리에 힘이 빠지지도 않은 어색한 상황에서 더욱 당황스러운 상황이 연출된다. 옆구리에 기계가 닿으면 간지러워서 어쩔 줄 몰라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대부분 말들은 안 하지만 기가 찬다는 듯이 입술을 깨문다.



나는 자타가 인정하는 운동 좀 하는 사람이다. 운동신경이 평균 이상으로 발달되어 있고, 특히 공과 손을 이용하는 운동에는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운동신경도 꽤 좋고 또 근력도 잘 발달되어 있는 내가 실패한 운동이 있다. 그것은 바로 수영이다. 이미 8년 전과 4년 전에 두 번을 시도했는데도 결국 실패했다. 분석해 보면 다양한 원인이 복합되어 있겠지만 내가 인정하는 주요 원인은 몸에서 '힘을 빼는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힘을 빼는 데 성공한 분야도 있다. 바로 골프다. 골프를 잘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힘을 빼는 능력'이다. 아니 힘을 컨트롤하는 능력이다. 내가 어깨에서 힘을 빼는 데는 약 9년이 걸렸던 것 같고, 그립에서 힘을 빼는 데는 거의 11년이 걸렸던 것 같다. 그렇게 오래 걸려서 내 몸에 완전히 터득이 된 것 같으면서도 약간이라도 과한 의욕이 생기면 다시 예전의 습관이 찾아오기도 한다. 골프는 그렇게 예민한 스포츠다. 혈압이나 심장병 등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가급적 골프를 시작하지 말길 권한다.



나는 짙은 쌍꺼풀에 큰 눈을 갖고 태어났다. 게다가 눈썹까지도 짙다. 형제자매 아니 사촌들까지 큰 눈 일색이다. 그렇게 어릴 적부터 눈이 휘둥그레 큰 사람들만 보아와서 그런지 나는 오히려 큰 눈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눈이 작은 이성을 좋아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신체적인 측면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눈에 힘 좀 빼세요'라는 말이었다. 내가 거울을 들여다봐도 이 부리부리한 눈이 다소 부담스럽다. 그러나 그 커다란 눈동자 뒤에는 다정하고 착한 동네 아저씨가 미소 짓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헤어스타일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있다. 아니 말 그대로 밤송이처럼 날카롭게 사방으로 뻗쳐있다. 타고난 것이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 때 만들어진 헤어스타일이 지금도 그대로다. 스타일의 변화를 모색하려고 수차례 시도해 봤으나 미용실 원장님들이 모두 손사래를 쳤다. 그러니 사회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대개 '동네 깍두기' 같은 혹은 '늙은 군바리'같은 첫인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내 안에는 농부와 시인 그리고 우체부와 풍류가가 살고 있다. 올해도 스타일의 변화를 시도해 봤지만 결국 허망하게 실패했다.



그렇게 나에게는 '힘을 빼는 일'이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 그 '힘'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왜 나는 살아오면서 그 중요한 것을 컨트롤할 수 없게 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긴장감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 잘 살아가야 한다는 절실함이었다. 아버지 없이도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자존심이었다. 그래서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고 한 번도 생떼 부리지 않고 그렇게 충실하게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중년이 되니 이제 그 긴장감 넘치는 일상이 조금씩 싫어지기 시작했다. 특별한 일도 없는데 기상시간은 점점 빨라지고, 일에 대한 욕심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그리고 재산 축적에 대한 목표치도 마냥 높아지기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상사태를 선포한 후 긴급 점검을 해보기로 했다. 내가 너무 경직된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세상과 회사와 친구와 가족과 소통을 통해 점점을 타협점을 만들고 그에 걸맞은 풀림을 작업하려 한다. 너무 타이트하게 조여져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내 일상의 볼트를 반바퀴 정도 풀어놓으려고 한다. 스스로 만든 칭찬과 응원의 렌치를 이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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