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대신 이메일이면 환경보호일 줄 알았지
나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고 생각했다. 디지털 탄소 발자국의 존재를 알기 전까지는. 편지 대신 이메일을 보내면 이것만큼 완전한 환경보호가 없다고 생각했다. 구글 드라이브와 같은 클라우드야 말로 백해무익하고 더없이 좋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외장 하드를 버릴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그런 나의 편견을 깨준 것이 최근에 들은 디지털 탄소 발자국에 대한 팟캐스트였다. 예전에 비보티비에서 어떤 영상을 한 번 보고 지나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데이터센터를 유지하기 위해 환경에 영향을 끼치고 어쩌고...
좀 더 자세히 조사해보니 내용은 이러했다. 이메일, 클라우드, 넷플릭스, 유튜브, 각종 SNS, 컴퓨터의 충전 플러그를 계속 꽂아두는 것, 심지어 비트코인에, 노트북 근처 담배연기까지 탄소 발자국으로 이어진다니, 이 정도면 내가 살아있는 것 그 자체가 탄소 발자국이잖아.
물론, 종이 청구서보다 이메일 청구서가 훨씬 탄소 발자국이 적고, 환경에도 좋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각종 디지털 활동들이 탄소 발자국을 남긴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특히, 이메일 보관함에 남긴 5년 전 스팸메일과, 클라우드에 저장된 10년 전 지나가던 비둘기를 찍다가 초점이 나간 사진이 일종의 쓰레기처럼 남아 계속해서 탄소 발자국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발 더 나아가서, 이미 내가 실천하고 있는 일에는 셀프 칭찬을 해주자. 클라우드 구독을 해지하고 매달 도넛이라도 하나 더 사 먹자. 내 하드 드라이브뿐만 아니라 SNS, 클라우드 저장 공간까지 구석구석 신년맞이 디지털 대청소를 해보자.
이메일은 편지보다 60분의 1의 탄소를 배출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 친척과 이종사촌, 고종사촌, 외사촌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돌리고 그중의 절반이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와야 겨우 이메일 하나를 보낸 것에 맞먹는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메일은 탄소를 배출한다. 이메일을 한 통 보낼 때마다, 스팸메일은 0.3g, 보통 이메일은 4g, 사진이 첨부된 이메일은 50g의 탄소를 배출한다고 한다. 4g의 탄소는 자동차가 24미터를 주행할 때 발생하는 탄소와 맞먹는다고 한다. 흠, 그렇군. 하지만 하루에 한 통씩이라고 1년이라고 생각하면? 1000명이 한 통씩 1년 동안 매일 보낸다고 생각하면? 그 계산 결과는 이과 여러분들에게 맡기겠습니다.
나는 이메일을 보낼 일이 내가 올해 집을 살 가능성과 맞먹을 정도로 거의 없는 사람이지만, 업무상으로 이메일을 하루에 몇 번이고 주고받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렇다면 이메일을 보내지 않는다면 탄소는 발생하지 않을까? 그럴 리가. 이메일을 보관하고 있는 서버를 유지하기 위해 발생하는 탄소가 남아있다. 또한, 내가 이메일을 보내지 않더라도, 필사적으로 수신을 원치 않음에 체크를 하며 방어를 해도, 때로는 원치 않는 이메일이 나에게 보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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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스팸메일은 지우자. 나는 1년 또는 6개월에 한 번씩 개인 이메일 계정을 탈탈 털어 먼지 하나 없도록 청소한다. 원하지 않는 메일이 온다면 올 때마다 싫은 표정을 지으며 삭제하기보다는, 귀찮아도 하나씩 구독해지를 한다.
마실 수 있는 클라우드든, 그렇지 못한 클라우드든, 어느 쪽이든 차갑게 유지되어야 한다. 이메일이 서버에 보관되는 데에 탄소가 발생하듯이 클라우드도 그렇다. 이메일과 다르게 사진, 영상 등 다양한 파일을 저장할 수 있는 클라우드는 저장용량의 단위가 기가바이트로 올라가니 발생하는 탄소의 양도 늘어난다. 100기가바이트를 저장하는 데에 1년에 0.2톤의 탄소발자국이 생긴다고 한다.
나는 클라우드에 10년 치 사진과 기타 모든 파일들을 저장하고 있다. 열심히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거듭하여 3기가 정도로, 그러니까 용량이 10분의 1로 줄었고, 그 이상으로 더는 늘지 않는다. 디지털 탄소 발자국을 알게 되고, 이 마저도 모두 하드 드라이브로 옮겨야 하나 고민 중이지만, 기기 분실로 인한 리스크와 어떤 환경에서도 파일에 접근하기 쉽다는 이점은 아직 좀처럼 버리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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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적으로 클라우드 파일을 정리하자. 특히 가장 용량을 차지하는 사진, 영상을 주기적으로 정리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만의 기준은 아무리 많아도 1년에 365장만 남겨두기. 이참에 후련하게 사진 미니멀리즘을 해보는 건 어떨까. 아, 개인적으로는 자동 업로드를 멈춰두는 것도 용량을 줄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정말 유감이다. 물론 우리가 직접 모든 사진과 비디오를 저장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매일 보는 사진과 영상은 어딘가에 저장되어있다. 아마도 거의 영원히. SNS에서 보는 사진과 비디오를 표시하기 위해 1분당 12g의 탄소가 발생한다고 한다. 하지만 기억하자, 웬만큼 자기 컨트롤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하루에 딱 1분만 인스타그램을 보고 다시는 열지 않는, 그런 위인은 좀처럼 없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나는 한 번도 현실에서 본 적이 없다.
30일간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서, 나는 모든 SNS 계정을 삭제하고 유튜브도 정보가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 그렇지만 저 글엔 분명 넷플릭스는 이제 필요 없다고 해놓고,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크리스마스라고 영화 캐롤을 보고, '도시인처럼'을 세상 누구보다 즐겁게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다, 나는 일 년에 두세 달 정도는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그동안 간절히 염원하고 기다려왔던 미드의 새 시즌을 보거나 영화를 보곤 한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묻는다면, 오늘부터 나 자신에게 30일간 다시 유튜브와 넷플릭스 금지령을 내렸다. 나 자신이여, 영화는 영화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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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이 지났어도 카카오톡, 라인을 포함하여 모든 SNS 계정이 없다고 말하는 나를 보며 눈이 띠용해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 시대에, 감히 SNS를 중단하라고는 절대 말하지않을 것이다. 하나 재미있는 제안을 하자면, 각종 SNS 피드를 정리해보자. 눈이 띠용해질만한 흑역사들에 웃음과 눈물 그리고 창피함을 만끽하는 새해가 될 것이다.
자고로 새해라면 대청소를 해야 제대로 새해를 맞이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는 디지털 대청소를 해보는 건 어떨까? 이메일과 SNS, 클라우드를 정리하며 작년을 정리하고, 흑역사를 되새겨보며, 다신 그러지 말기 파티를 여는 것이다. 그냥 먼지만 보면서 콜록거리는 대청소보단 훨씬 즐거운 청소가 될 것이라는 데에 우리 집 피아노를 걸어본다.
아, 친구에게도 슬쩍 이야기해보자. 디지털 탄소 발자국이란 게 있대, 디쥬노? 에서 시작해서 대박이지?로 끝나는 그런 짧은 대화 말이다. 실천하지 않아도 모르고 있는 것보단, 무의식 저 편에서 알고 있는 게 더 낫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한 번이라도 이야기해보는 게 좋고, 이메일을 하루에 한 통씩 덜 받기 위해 구독취소를 누르는, 그런 당신은 이미 영향력 있는 사람이다.
+ 조사하다 보니 재밌는 건 나만 알 수 없어서 공유해본다. Carbon footprint Calculator 라고, 내가 먹는 식단이나 집의 형태를 대략적으로 입력하면 내가 만드는 탄소발자국의 양을 알려주는 재밌는 계산기다. TMI, 나의 연간 탄소 발자국은 2.7톤이란다. 대체 소나무를 몇 그루나 심어야할런지. (참고로 2019년 한국인의 1인당 탄소배출량은 11.93톤이라고 한다.)
참고자료
10 Ways To Reduce Your Online Carbon Footprint
https://www.youtube.com/watch?v=T0vX7AiQaK4
Carbon and the Cloud
https://medium.com/stanford-magazine/carbon-and-the-cloud-d6f481b79dfe
A Guide to Your Digital Carbon Footprint – and How to Lower It
https://www.ecowatch.com/digital-carbon-footprint-2655797250.html
What's the carbon footprint of ... email?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green-living-blog/2010/oct/21/carbon-footprint-email
The internet’s YouTube habit has the carbon footprint of a small city
이대로 가다간…2030년 한국 ‘1인당 CO2 배출량’ 주요국중 1위 될지도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94419.html#csidxc381a7fc9cffe7fb94c078a2f3d8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