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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ie Mar 12. 2020

30일간의 <디지털 미니멀리즘> 실천기

내 인생에 더 이상 넷플릭스란 없다

나는 밤을 새워가며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시즌 하나를 다 끝낸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그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또 어느 날은 계란찜 레시피를 찾으러 유튜브에 들어갔다가 정신 차려보니 화산 폭발 영상을 보고 있었다. 나만 이러는 거 아니니까, 이것은 일종의 인간의 본능인 것 마냥 여겼다. 스마트폰과 넷플릭스가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어. 


하지만 적어도 나는 스마트폰에 SNS 앱을 모두 삭제했으니까,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는 전자책을 읽으니까. 그렇기에 칼 뉴포트의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읽기 전까진, 디지털기기에 방해받지 않고 살아간다고 착각했다. 


이 책은 30일간의 디지털 디톡스를 제안한다. SNS는 물론, 메신저, 넷플릭스, 유튜브, 팟캐스트, 음악 앱, 그리고 인터넷 그 자체까지 30일 동안 일절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30일이 지나고 정말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느끼는 기술을 골라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이 얼마나 간단한 룰인가? 그리고 얼마나 실천하기 어렵고, 인터넷을 안 쓰는 나의 모습을 상상조차 하기 어려우며, 생각만 해도 벌써 금단현상이 오는 기분이다. 






디톡스 기간 중 인스타그램의 쓸모없음을 깨달아 계정을 삭제했다. 



나는 위에서 언급한 모든 기술을 다 차단했다. 물론 몇 개의 예외도 존재했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에서는 부득이하게 생활에 정말 필요한 경우 룰을 정해 사용해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디지털 디톡스를 한다고 업무 메일을 한 달 동안 답장하지 않을 순 없는 거니까. 나의 경우에는 인터넷 검색, 음악 앱,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예외로 두었다. 




전화 외에 모든 알림 다 꺼놓기

: 나 빼고 다들 로그아웃해주세요 


소리, 배너, 그리고 숫자가 하나씩 올라가는 그 빨간 배지까지 모두 다 꺼두었다. 메시지처럼 부득이하게 하루에 한 번씩 확인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시간을 정해 확인한다. 시간을 정했다면, 알람을 설정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메시지를 3일이나 뒤에 확인해서 카페에 핸드폰을 두고 왔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던 나의 에피소드에서 나온 깨달음이다.


나중엔 핸드폰도 꺼놓고 살았다. 더 지나서는 핸드폰을 처음 집에 (의도적으로) 두고 나갔다. 처음엔 핸드폰을 두고 나갔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괜한 걱정도 들었지만 늘 그랬듯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알림을 꺼놓으면 핸드폰을 사용하든 안 하든, 주의가 분산될 일이 없다. 더 이상 날씨 확인하러 핸드폰 켰다가 나도 모르게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거나, 앱을 열지 않게 된다. 내가 원할 때 확인하고, 앱을 사용하는 것에서 스마트폰에 뺏긴 나의 절제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메신저 모두 삭제하기

: 연결되지 않을 자유


3년 전에 이미 나는 카카오톡을 탈퇴했다. 카카오톡 계정이 없는 한국인은 마치 외계인이나 다름없다. 카톡으로 보내주겠다는 사람들에게 '저는 카톡 계정이 없으니 메일로 보내주세요.'라고 하면 다들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면 '카톡 계정이 없으시다고요?'라며 믿지 못하겠다는 어조로 되묻거나.


지금도 여전히 나에게 연락수단은 문자와 전화, 메일 이 3개면 충분하다. 카카오톡의 장점들(무료!)은 아이메시지, 페이스타임으로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업무상으로 메신저를 부득이하게 사용해야 할 때도 존재한다. 메신저를 쓰면서 일하는 경우에는 업무시간에만 확인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출근 전에 잠깐 확인했다. 메일도 주말이나 밤에 확인해봤자 해결하지 못하고 다음날까지 그 생각만 하며 기다려야 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일 점심시간과 오후 시간, 하루에 딱 2번만 확인한다. 


메신저를 없애고 문자와 전화로만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의 장점은 '말에 무게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카카오톡을 비롯한 메신저로 소통을 하다 보면 가볍고, 불필요한 말들이 넘쳐난다. 매일 반복되는 지인들의 '배고파', '일하는데 시간이 안가'라는 무의미한 카톡 메시지는 내가 메신저를 탈퇴하게 한 결정적 계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매일 여러 번 이야기하기보다, 한 달에 한두 번 서로 안부를 묻는다. 불필요하고 겉도는 말에서 벗어나 한 달에 한번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함께 경험을 나눈다. 우리는 항상 연결되어있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왔다. 관계란 항상 붙어있고 연결되어있어야 하는 걸까? 이제는 그것에서 벗어나 '연결되지 않을 자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디지털 미니멀리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고독'에 대한 재조명이었다. 누군가와 연결되어있지 않다는 것이 고독이 아닌, '고독의 부재'에서 벗어난다는 개념은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각종 영상 금지령

: 유튜버들은 내가 없어도 잘 살고 있겠지


나는 밥을 먹을 때 늘 넷플릭스 아니면 유튜브를 보곤 했다. 나름 그 장르도 인터뷰 아니면 다큐멘터리니까 유익하고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물론 모든 것은 내 착각이며 심오한 자기 합리화이니라. 


스트리밍 서비스, 영상들을 다 끊고 대신 밥 먹을 때 재즈를 틀어놨다. 처음엔 맛에 집중할 수 있고, 이런저런 생각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유튜버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분 새 영상 올리셨으려나?' '뭐뭐 하신다고 하던데 잘되어가나?'. 어쩌면 유튜버들은 나와 밥을 함께 먹는 가족과도 같은 존재라고 내 머릿속에 세뇌되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음악 앱엔 없고 유튜브에만 있는 노래들은 또 어떠한가. 모니터를 긁으면서 정말 듣고 싶지만 꾹 참고 구글에 가사를 검색해서 내가 스스로 불렀다. 이때부터 살짝 짠내가 나기 시작한다. 


한 달 뒤에 다시 만난 유튜버들은 역시 내가 없어도 잘 살고 있었다. 내가 구독하는 유튜버들은 5명도 채 되지 않아 1시간도 안되어 몰아보기도 다 끝났다. 유튜브가 화산 폭발 영상을 제안해주든 말든, 나는 곧 흥미를 잃고 유튜브를 껐다. 예전에는 분명 유튜브 없는 삶을 상상조차 못 했는데, 이젠 유튜브 없이도 내 인생 성공시대 시작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넷플릭스는... 넷플릭스가 뭐였죠?


덕분에 나는 놀랄 정도로 많은 시간을 절약하고 있다. 최소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이니,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공부하는 데에 투자하고 있다. 




바깥에 이어폰을 가지고 나가지 않기

: 원래 음악은 마음으로 듣는 거잖아요


음악은 본디 나라에서 허락한 항정신성 의약품이므로, 디지털 미니멀리즘에서 죽어도 뺄 수 없는 존재였다. 대신 그것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했다. 예를 들면 바깥에 이어폰을 가지고 나가지 않고, 공부할 때는 되도록 음악보다는 이어 플러그를 꽂을 것, 무언가에 집중해야 할 때는 가사가 없는 차분한 음악만 들을 것. 


옛날 철학자, 과학자, 각종 위대한 자들은 오랜 시간 산책을 하면서 깊이 사고하고 구조를 짰다고 한다. 음악 없이 걸어 다니니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음악의 가사보다 주변의 고양이와 정원, 바다에 집중할 수 있어 밖에 있는 시간이 더 행복하게 느껴졌다. 




팟캐스트, 뉴스, 각종 아티클 금지

: 정보는 내가 스스로 섭취하는 것


팟캐스트는 주의를 분산시켜서(사실 음악보다 덜 좋아해서), 뉴스는 자극적인 소식으로부터 내 에너지를 지키고 싶어서, 브런치나 미디엄에 있는 아티클들은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서. 그래서 30일 동안 이 3가지를 멀리했다. 


필요한 경우엔 구글 검색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다양한 정보를 얻는 소스는 책이었다. 팟캐스트나 뉴스는 가만히 있어도 다 알아서 정리해주고, 말해준다. 하지만 책은 정보를 떠먹여 주지 않는다. 스스로 찾아서 읽어 내려가야 하며, 사고해야 한다. 내가 주체적으로 정보를 취득한다는 그 느낌이 좋았다. 덕분에 콘텐츠를 소비하기보다 생산하는 주체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이 더욱 강해졌다. 


모든 내용이 다 담겨있는 뉴스 대신에 셀렉트 된 업계 동향 사이트나 잡지를 구독해 읽는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쯤은 같이 밥 먹는 사람에게 슬쩍 물어보자. 아니, 사실 안 물어봐도 tmi까지 다 이야기해주는 경우도 많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에 유용한 Tool/tip


스크린 타임 설정 : 아이폰의 경우 설정에서 어떤 앱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등 이용 시간과 관련한 각종 통계를 볼 수 있다. 일정 시간대 동안 앱을 닫아두는 Downtime, 앱이나 사이트별로 시간제한을 걸어둘 수 있는 유용한 기능들이 있다. Mac에도 같은 기능이 있다. 

*안드로이드의 경우 비슷한 기능을 하는 앱들이 있다. 


아이폰에서 사파리 비활성화 : 나는 디지털 디톡스가 끝나고 아이폰의 사파리를 비활성화했다. 한마디로 완전히 숨겨버린 것이다. 


추천, 피드 비활성화 : 유튜브나 SNS를 부득이하게 사용해야 한다면, 이 크롬 확장 앱을 강력 추천한다. 추천이나 피드를 비활성화하는 것만으로도 이용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메일함 정리 : Unroll.me는 간단하게 각종 메일을 수신 해제(Unsubscribe)해주는 무료 서비스이다. 정말 필요한 메일, 업무 메일에만 집중할 때 유용하다. 


크롬에서 Tab키로 검색 : 크롬 브라우저 주소창에 검색엔진 주소(예: naver.com, youtube.com)를 입력 > Tab키 > 검색어를 입력 후 엔터를 치면 바로 검색이 가능하다. 각종 주의를 분산시키는 요소로 가득한 포털사이트 메인을 거치지 않고 빠르게 정보를 찾아볼 수 있어 애용하는 기능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깔끔한 구글을 사용해 검색한다. 







디지털 미니멀리즘 전 평균 3시간에서 30분으로 줄어든 스마트폰 이용 시간

나는 이제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 영화관에 간다. 유튜브는 일주일에 한 번, 어쩌면 한 달에 한번 몰아보는 것으로 족하다고 느낀다. 메신저 아이디를 공유하기보다 페이스북 친구가 되자고 한다. 페이스북 피드는 확인하지 않고 링크를 통해 페이스북 메신저로 바로 접속한다. 모든 SNS와 메신저는 스마트폰에서 삭제한 지 오래다. 


한동안 내 별명은 '59분 인생'이었다. 모든 과제를 59분에 겨우 제출한다고 해서 지어진 별명이었다. 나는 그만큼 일 미루는 데에 정말 프로였다. 내가 왜 일을 미루는지, 일을 미루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없이 고민했다. 누구는 내가 완벽주의자라고 했고, 어떤 기사는 내 뇌 모양 자체가 다르니 천성이라 했다. 


지금은 더 이상 일을 미루지 않는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결과물을 제출한다. 나는 병적인 완벽주의자도 아니었으며, 미루기는 내 천성도 아니었다. 스마트폰과 각종 기기가 분산시킨 나의 주의와 절제력을 되찾은 것뿐이다. 스마트폰에서 멀어지고 그렇게 나는 더 행복해졌다. 더 이상 산만한 기분도 들지 않는다.




최근 같이 지내는 룸메이트들의 스크린 타임을 확인해봤는데, 그들이 인스타그램에만 쓰는 시간이 하루에 평균 2시간이었다. 나도 놀라고 그들도 놀라고 온 동네가 함께 놀랐다. 나도 한 때 그렇게 지내던 때를 기억한다. 나는 내 주의와 시간이 지배당하는지도 모르고 살아왔었다.


당신의 오늘 스크린 타임은 몇 시간인가? 그 시간을 좋아하는 것, 해야 하는 일에 더 투자할 수 있었다면 당신의 인생은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킬링타임을 위해 시간을 죽이지 말고 당신만의 시간을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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