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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ie Feb 15. 2020

30일간 술 끊기

그리고 이 글은 맥주를 마시며 쓴다

 나는 심각한 맥주덕후였다. 편의점에서 파는 수입맥주 4캔 정도는 가볍게 클리어했다. 시간이 많은 주말에는 낮부터 천천히 마시고, 시간이 없으면 없는 대로 시간을 쪼개서 마셨다. 친구들은 늘 내게 통풍을 경고했고, 병원에선 그러다 지방간 걸린다는 소릴 들었다. 


이쯤 되니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의 모습이 상상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알코올 의존증 정도겠거니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프거나 중요한 시험이 있기 전에는 2주 동안 나름 긴 금주기간을 가졌으니 술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높은 성적과 면접 합격 등 일상에서 성취라 부를 만한 것들도 이뤄냈으니 나는 그저 '술을 조금 많이 마시는 친구'정도겠거니 생각했다. 


해가 지나면서 조금씩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숙취라는 것이 뭔지 알게 되었고,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밤새, 무한대로 마실 수 없었다. 경제 감각이 깨어나면서 한 달에 술 마시는 데 몇십만 원을 쓰는 이 상황은 옳은 것인가에 대해 머릿속에서 대국민토론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금주를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마치 시간이 지나며 식사량이 저절로 줄은 것처럼, 술도 그럴 때가 오겠거니 싶었다. 금주 대신 절주, 술 마시는 날과 그 양을 줄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적지 않게 마시고 있었다. 











금주를 시도하기 전날, 새해 첫 식사를 하며 다큐멘터리 <I am maris>를 봤다. 공황장애와 거식증을 겪다 고등학생 때 이미 요가강사가 된 maris의 이야기였다. 우리가 속하는 곳은 결국 우리 자신이 만들어내야 한다는 말과 그것은 우리가 어딘가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지워내야 가능하다는 말이 계속 기억에 남았다.


늘 해외에서 늘 바깥사람, 외부인의 기분으로 살던 나의 근본적인 고민이 그 자리에서 녹아버린 것만 같았다. 자유롭게 살고 있지만, 그래도 한 군데쯤은 나를 늘 환영해 주는 곳이 있기를 바랐다. 이렇게 겉만 맴돌고 떠돌다가 끝나는 건가 싶었다. 그건 내가 더 언어 공부를 했어야 했던 걸까, 아니면 문화적 차이인 걸까. 그 어느 것도 아니야,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도 돼. 


어쩌면 나는 그동안 어디엔가 속하고 싶다는 마음을 술에 숨겨왔던 게 아닐까. 그것을 깨달은 순간, 처음으로 술이 없는 삶이 궁금해졌다. 











그때 <셰프의 테이블>을 통해 yum cha에 대해 알게 되었다. 중국에서 차를 마시고 딤섬을 먹는다는 의미란다. 술 대신 차를 마시며 살아가는 삶은 어떤 것일까. 그 단순한 질문으로부터 생애 처음 의도적인 금주가 시작되었다. 술 대신 차를 더 자주 마시며, 다이닝 펍에 가면 맥주 대신 라임 조각이 들어간 탄산수를 시켰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삶에서 나는 어떤 이득을 얻었을까. 


1. 선명한 의식과 맑은 아침 : 금주를 하기 전에도 요가와 명상으로 선명한 의식을 되찾으려 노력했지만,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 것에는 비할바가 못된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모든 것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걸어가다 떠오르는 생각들과 그 구조도 아주 선명했다. 무엇보다 아침에 힘들지 않게 일어나고 해장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매일 지속된다는 건 생각만 해도 활기차진다. 


2. 정상적인 식욕 : 회식이 끝난 새벽 3시에 각자 빅맥 하나씩 포장해서 집에 돌아갔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술을 마시면 음식이 무한정 들어간다는 느낌은 기분 탓이 아니다. 알코올이 식욕과 관련한 신경세포를 활성화시킨다거나, 식욕을 억제하는 뇌 부위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와있다. 술이 없는 저녁 덕분에 과식하지 않고, 비로소 내가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내 식욕에 대해 알게 되었다. 


3. 금전적 여유 : 수입맥주는 4캔에 만원, 하지만 과연 곱게 캔맥주만 마실까, 안주도 사야지. 가끔은 밖에서 술을 마시고 싶을 때도 있다. 어떤 날은 조금 비싼 술을 사 와 소믈리에 인척도 해보고 싶다. 그러다 보면 한 달에 50만 원 60만 원은 금방이다. 어떤 날은 먹는 것에만 한정되어있지 않다. 술을 마신다는 건 한 때 '시발 비용'이라 불리던 홧김 소비에 불을 지르는 격이기도 하다. 


금주를 하는 동안엔 식당에서 술값과 음식값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도록 머리 아프게 계산할 일이 없다. 술을 줄이면 근사한 외식 한번 더 할 수 있다. 술을 줄이면 책을 더 많이 살 수 있다. 술을 마시고 모든 것을 미래의 나 자신에게 맡기는 게 아니라, 술을 덜 마심으로써 나 자신의 미래에게 투자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 모두 그걸 몰라서 못하는 건 아니다. 


4. 더 많은 생산적인 시간 : 가끔 주말 낮에 청소를 할 때도 맥주를 마시며 했다. 내게 맥주는 하기 싫은 일을 견디게 해주는 물약 같은 존재였다. 하기 싫은 일을 해내는 대신, 그 후 공부같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일들을 하기가 어려워지는 게 아주 큰 단점이었다. 


주말 낮부터 맥주를 마시며 청소하는 대신, 맨 정신에 온 마음을 담아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한 경배와 같은 청소를 한다. 매일 2시간 동안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고, 다른 2시간 동안 언어 공부를 하며, 1시간 동안 글을 쓰고 자기 전엔 술 대신 책을 먹어치운다. 술에서 깨어있는 시간이 길수록 하루 동안 놀랍도록 더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었다. 


5. 도전과 자기 절제력 : 이렇게 저축해 놓은 시간, 돈, 그리고 에너지를 가지고 새로운 분야, 내가 하고 싶었던 일에 도전할 수 있었다. 가야지 생각만 하던 곳들, 꿈쩍도 않던 버킷리스트를 드디어 하나씩 지워나가는 기분이란.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있다는 기분은 이 금주 효과의 핵심이 아닐까.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금주를 2주 동안 성공적으로 지속하고 있을 즈음, 그 약속이 깨져버렸다. 해외에서 바텐더로 일하던 때라, 매니저와 손님이 주는 샷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는 게 핑계라면 핑계다. 일하는 날을 제외하곤 술을 마시지 않았으니, 나머지 2주는 금주보단 절주에 가까웠다. 


완벽한 금주에는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이 30일간의 시도는 꽤 의미 있었다. 단순히 술을 끊는 게 아니라,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거절을 잘 못했다. 일하면서 받는 샷에 충분히 No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다. 또, 나는 여전히 남을 꽤 의식하며 살고 있었다. 바에 가서 탄산수에 라임 조각만 넣어마셔도 사람들은 그게 진토닉인지 탄산수인지 신경도 안 쓴다. 그걸 괜히 '소프트드링크만 시켜도 되나'하면서 혼자 바 앞에서 끙끙대고 있었다.








<어느 애주가의 고백>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한 때 나처럼 알코올에 의존하고 중독되었던 작가가 술에 대해 고백하고, 또 그것을 끊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책을 보면서 나도 모르는 새에 난 코카인도 안 하고, 필름이 끊긴 적도 없으며, 술 때문에 가산을 탕진한 적도 없다며 위안을 했다. 

"대부분의 알코올 중독자는 우리가 흔히 아는 증세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저 술 없는 인생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뿐이다." 


책 <어느 애주가의 고백> 중


결국 내가 술을 완전히 놓고 싶지 않았던 것도 술 없는 인생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알코올 중독자였을 것이고, 내가 술자리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30일간의 금주, 아니 절주가 나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나 자신에 대한 나의 오해를 알게 되고, 내가 술에 중독되어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다. 술 마시는 것이 더 이상 일상이 아닌 특별한 이벤트가 되었다는 것, 술 마시는 게 일상이 아니라 술을 안 마시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사실은 언젠가 술을 삶에서 완전히 지울 날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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