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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ie Feb 29. 2020

30일간 한겨울에 찬물로 샤워하기

보일러가 동파된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찬물 샤워란 한여름에 더위를 식혀주기 위한 등목 정도였다. 그걸 매일, 심지어 한겨울에도 할 줄은 몰랐지. 생산성 덕후인 나는, 유튜브에서 찬물 샤워에 대해 알게 되었다. 1년 내내 아프지 않을 수 있고, 지방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니 꽤 솔깃한 이야기였다. 


'찬물 샤워는 내가 살면서 해본 일 중에 가장 멍청한 짓 베스트 5 안에 꼽힐 것이다.' 찬물 샤워를 도전한 첫날에는 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절로 소리를 지르게 되고, 숨이 가빠져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럼에도 왜인지 이 익스트림한 찬물 샤워를 계속하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다. 


나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한국의 계절과는 정반대인 곳에서 살았다. 그러니까 그곳은 마침 한여름이었고, 때로는 날씨가 더워서 되려 찬물 샤워를 찾게 되는 날도 있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찬물 샤워를 하고, 조깅을 하며 요가 스튜디오까지 가는 일만큼 내게 활력을 주는 일도 없었다. 


얼마 전 나는 한국으로 귀국했고, 영하의 날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로는 40도를 육박하거나, 20도 언저리에서 선선했던 날씨 속에서 찬물 샤워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환경이었다. 아침마다 발에 찬물을 쏘면서 잠시 동안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침부터 이러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그럼에도 왠지 해야만 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힘들지만 그 후에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며 견뎌내는 것처럼, 숨을 몰아쉬어가며 찬물 속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매일 아침마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30일 동안 찬물로 샤워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커피가 뭐죠? 


 아침에 하는 찬물 샤워는 엄청난 활력을 주고, 낮에 하는 찬물 샤워는 에너지를 회복시켜준다. 그날 피로도에 상관없이 찬물 샤워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잠이 깬다. 동시에 어떤 일에도 준비가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 상태로 밖으로 나가면 나에게서 초록색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기분까지 들었다. 


덕분에 한 카페의 골드회원 일정도로 커피를 사랑했던 내가 찬물 샤워를 하는 30일 동안은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았다. 한 달 동안 마신 커피라곤 귀국하기 전 커피가 정말 맛있는 최애 카페에서 한 잔을 마신 정도다. 이제는 카페인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나 스스로의 에너지만으로 매일 해야 할 일들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매일 컴포트 존을 벗어난다는 것


 내가 매일 찬물 샤워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의지력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따뜻한 물이 나오는 왼쪽의 빨간 부분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컴포트 존이었다. 그 반대로 수도꼭지를 돌려 얼음장 같은 찬물에 뛰어드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의지가 필요하다. 그런 도전을 매일 해냈을 때 의지력과 절제력이 쌓여간다. 


한겨울에 찬물로 샤워도 하는데, 이것쯤이야,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조금의 용기가 필요했던 일들도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외국에서 좁은 골목에 있는 바에 혼자 들어가 보는 일도 숨 한번 크게 쉬면 참 쉬운 일이다. 그렇게 찬물 샤워를 시작하고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매일 1시간만 하던 요가를 2시간으로 늘려 실력을 크게 향상했다. 


꼭 해외로 나가고, 새로운 일을 찾는 것만이 컴포트 존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몇십 년 살던 곳이더라도 가보지 않은 수상한 장소에 가보는 것, 먹어보지 않았던 메뉴를 선택하는 것들이 훗날 더 큰 도전의 베이스가 될 수도 있다. 




추운 건 기분 탓이야


 나는 꽤 성실한 얼죽코(얼어 죽어도 코트) 회원이다. 인생에서 단 한 번도 패딩을 입어본 적이 없다. 확실히 한국처럼 겨울에 영하로 훅 떨어지는 날씨 속에서 코트만으로 버티긴 조금 힘들 때도 있다. 예전에는 간지를 위해 몸을 덜덜 떨면서도 코트를 입었다면, 지금은 코트만으로 충분하다. 찬물 샤워 덕에 여러 겹 껴입지 않고 긴팔 하나와 코트하나, 청바지만으로도 눈 속을 헤쳐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위 테라피를 하는 사람들은 한겨울에도 빙판 위에서 조깅하고, 반팔만 입고 눈밭에서 요가를 한다. 그럼 코트쯤이면 굉장한 호사겠다는 생각으로 이제는 겨울에도 아주 심플하게 입는다. 


가을만 돼도 나는 강박처럼 두꺼운 목도리를 두르고 다녔다. 내 목은 추위와 바람에 굉장히 취약하고, 실제로 심한 감기에 종종 걸렸기 때문이다. 몸을 꽁꽁 둘러 싸매던 것을 한 겹씩 제거하기 시작했을 때,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건강과 질병, 치유에는 정신력도 꽤 큰 영향을 끼친다는 건 정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추운 건 기분 탓이다.








 내가 나고자란 나라는 나에게 익숙한 곳이기에, 늘 컴포트 존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찬물 샤워 덕분에 한국에서도 외국인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한국어보다 다른 언어를 쓰는 시간이 더 많고, 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들을 해나간다. 집을 나설 땐 마치 여행에 온 듯 매일 두근거린다. 


우리의 일상 속 컴포트 존은 무엇이고, 그것의 반대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주 평범하게 매일 따뜻한 물의 은혜를 받고 있다면, 찬물 샤워가 그 해답의 시작이 되어줄 것이다. 나는 30일이 아니라 앞으로도 이 괴상한 짓을 계속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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