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뭘 잘못한 건 아니고요
광대한 목표를 만들어놓고는 결국 '장보기', '청소하기', '책상 정리'에만 체크하다 끝나던 나의 to do list를 기억한다. 아무것도 안 한 것보다는 낫지, 라며 나를 위로했고, 오늘은 5가지나 했는 걸, 이라며 나름 뿌듯해하기도 했다. (그럴 땐 보통 가장 중요하고 하기 싫은 일 하나만 빼고 다 체크되어있다.)
내 인생,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굳이 대답하자면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 좋지도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인생이란 멈춰있지 않고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본래 인간이란 장기적 목표보다 눈 앞에 있는 성취가 더 달콤해 보이는 법. To do list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내 목표는 책을 출판하는 것이 아닌, 장보기 마스터가 되어버린 듯했다.
그래서 나는 매주 혼자 하는 반성회를 시작했다. 내 장기적 목표를 되찾고, 이를 위한 세세한 목표와 과정들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왜 나쁜 습관은 고쳐지지 않을까' '왜 계획한 만큼 지키지 못할까' '왜 더 나아지지 않을까'에 대한 나의 대답이며 실천인 것이다.
물론 '반성회'는 무언가 잘못된 것에 대해 되돌아본다는 어감이 있다. 하지만 내가 하는 나의 1인 반성회는 나를 스스로 돌아보고 목표를 향해 등을 다독여주는 의미가 더 크다. 일종의 셀프케어이자 미타임(Me-time)인 셈이다.
일어나는 시간부터 잠드는 시간까지, 일주일 동안 내가 어떻게 시간을 썼는지 쭉 적어본다. 그러다 보면 도대체 이 시간대에 나는 무얼 했는지 기억이 도통 나지 않을 때도 있다. 나의 그 소중하고 수많은 시간들은 어디로 공중분해된 건지. 아니, 벌써부터 반성하고 자책하기 시작하면 안 된다.
이렇게 나의 일주일 간 시간 사용을 가시화하다 보면, 죽어있던 시간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에 할애하는 시간을 좀 더 줄여볼 수 있을 것 같아.' '이 자투리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기엔 좀 아까운데.' 나의 경우 넷플릭스를 보며 느긋하게 보내던 1시간 30분 동안의 점심과 저녁을 1시간 안으로 줄였고, 장보는 시간을 40분에서 20분으로 줄였다. 그러면 이 남는 시간은 뭘로 채우지?
모든 게 다 싫어졌던 때가 있다. 일이든 뭐든 엉망진창이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랐다. 한참 방에 혼자 있다가 나오면, 몇 시간을 내리 자면 해결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문제는 내가 무엇을, 왜 싫어했던 건지 짚어보지 않고 피하기만 했던 거다.
불만이 불평으로만 남지 않으려면, 내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내가 이번 주에 뭘 했을 때 행복했고, 어떤 게 싫었는지 가감 없이 다 적는다. 행복한 것을 더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싫은 것은 어떻게 제거해나갈 수 있을지. 내가 당장 다음 주에 실천 가능한 일들을 생각해본다.
물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 상황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 경우에는, 이럴 때일수록 어떻게 생각을 전환해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결국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면,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문한다. 생각의 전환도 나름 노력이 필요한 일종의 실천이 아닐까.
매주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적어나간 덕분에, 나의 취향은 더욱 분명하고 확고해졌다. 의외로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하며 버킷리스트에 새로운 목록을 추가해본다.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고 하고 싶은지가 늘 확실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탓에, 무엇을 먼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반성회는 그런 고민을 상쇄시켜주었다. 좋아하는 것 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왼쪽 리스트에 더 자주 나타나기 마련이다. (전문용어로 '최애'라고 한다.) 내가 더 자주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내 마음이 이끄는 것이라 믿고, 그것에 우선순위를 두며 매일 살아가고 있다.
조금 멋져 보이게 설명하자면, 반성회는 장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마일스톤을 설계하고 점검하는 과정이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릴까.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당신의 크고 아름다운 목표는 저 반대편에 있다. (장기 목표) 당신과 목표 사이에는 강이 있고, 그것을 건너기 위해 우리는 징검다리 돌을 매일 하나씩 놓고 있다. (중단기 목표)
나의 장기 목표 중 하나는 TEDx의 연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한 중기목표로 책을 출판하고 강연하는 것이 있다. 거기서 가지치기처럼 나온 단기 목표 중 하나가 바로 브런치 작가가 되어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화이팅)
고백하건대, 한 때는 글쓰기보다 글쓰기 관련 책을 읽는 것에 더 빠져있었다. 필사를 하는 건 좋은데 필사만 하다가 정작 본인 글은 안 쓰고 하루를 보내버리는 사태도 발생했다. 당장 눈 앞에 있는 성취가 더 달콤해서 이것만 쫓고 있던 것이다.
나의 크고 아름다운 장기 목표는 지평선에 가려져있어서 왠지 저쪽 울랄라 섬에 가는 게 더 빠르고 재미있을 것 같다. 지루해 죽겠다. 어느새 돌은 직선이 아닌 사선으로 놓이고 있다.
장기 목표, 중기목표, 단기 목표를 적어본다. 진행상황이 현재 몇 퍼센트 인지도 체크해본다. 중단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음 주에 가능한 일들을 적는다. 모든 일이 다 계획된 대로, 직선으로 강을 건널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다른 길로 새고 있다면 왜 그런지를 파악하고, 중단기 목표 혹은 장기 목표를 다시 조정해봐야 한다. 나는 이 방법 덕분에 그동안 미뤄오던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루 만에 끝냈다.
1에서 3까지 적고 생각한 것들을 종합해서 결론을 낸다. 다음 주 나의 이상적인 시간표는 어떤 모습일지, 그걸 보조하기 위한 루틴과 습관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해야 할 일도 당연히 적지만, 하지 말아야 할 리스트도 적는다. 때로는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것이 필요한 법이다.
'저 빼고 다 로그아웃해주세요.' 한 시간 동안 인터넷과 모든 기기를 끈다. 방안에 따뜻한 조명을 켜놓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과 향을 준비한다. 그리고 아래 5가지 방법을 따라가며, 종이에 하나씩 적어나간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말로만 하지 말고, 적어나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