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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ie Feb 05. 2023

30일간 국 하나 반찬 하나

대충 해먹고 살기의 미학

1일 1식, 키토, 닭가슴살만 먹기 등등 이렇게 먹고 저렇게 먹으면 건강해진다는데 도대체 뭘 어떡하라는 건가 싶다. 쏟아지는 각종 건강 식습관 정보에 무릎을 꿇고, 그저 묵묵히 집에서 요리해먹으면 건강해지리라 믿으며 살았다. 최근 몇 년간 나는 식생활에서 나쁜 요소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라면, 인스턴트식품, 색소와 향료가 잔뜩 들어간 음식들을 더 이상 먹지 않고, 평일에 먹는 식사는 모두 직접 만들어 먹는다. 그럼에도 이 토실토실함은 변하지 않았고, 회사에 다니며 동시에 집에서 반찬을 매일 생산해 내야 한다는 이상한 의무감에 빠져 살았다. 


그렇게 요리가 부업처럼 느껴진 때가 몇 번 있었다. 매일 요리를 하는 대신에 밀프렙이란 걸 해보자고, 일요일에 반찬을 네다섯 가지를 만들고, 무슨 케이크인가 쿠키도 만들어놨다. 분명 1인분인데 곱하기 일주일치를 만드니 마치 일요일에만 여는 식당을 운영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일요일의 낮시간은 모두 날아가고, 점점 더 큰 용량의 냉장고가 필요해질 뿐이었다. 


10년간 급식을 먹으며 자란 나는, 3첩 반상만이 진리라고 생각해 왔다. 된장국하고만 밥을 먹는 건 풍족한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1즙 1채 영상에 문화충격을 받았다. 된장국 하나에 야채절임 하나만 놓고 밥을 먹는데, 그 된장국을 만드는 과정이 어마무시하게 쉽다. 그동안의 룰은 다 무시하고 야채를 댕강댕강 썰어서 대충 넣고, 먹고 싶은 건 다 넣는데 심지어 베이컨과 계란까지도 넣는다! 된장은 적당히 풀으라는 것, 조금 싱거워도 되고 짜면 반찬으로서 그건 그대로 좋다는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뭔가 마음이 편안해졌다. 






구운 파 마리네이드, 파래와 연두부를 넣은 된장국, 낫또와 잡곡밥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따뜻한 식사


열심히 요리를 완성하고 설거지도 다 하고 이제 앉아서 먹기만 하면 되는데 이미 그전에 지쳐버릴 때가 있다. 1즙 1채 영상의 댓글들을 읽어보면, 주방에서 더 이상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해 주는 거 같아서 힘이 된다는 글들이 많았다. 소식을 해서 건강이 어떻게 좋아지고, 영양학적으로 어떤지 등등 과학적인 근거에 대해 말하기 이전에, 이 식사법이야말로 미니멀리즘이고 피곤하고 무기력할 때는 적당히 조절하며 사는 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나는 평일에 하루 2끼, 모든 식사를 1첩 반상으로 먹고, 주말에는 외식이나 파스타, 전골같이 먹고 싶은 걸 먹었다. 점심에 된장국 두 그릇 분량을 만들어서 저녁에도 나눠먹는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하고서 나물이나 야채볶음 등 그다음 날 먹을 반찬을 한 가지 만들어둔다. 그럼 다 합쳐도 하루에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지 않으니 준비하고 정리하는 것도 간단하다. 밀프렙보다 수고가 덜 들면서, 냉장고와 냉동실을 쉬게 해 주니 전기 절약도 되고, 매일매일 따뜻한 된장국을 먹으니, 장점만은 3첩 반상이다. 


이걸로 영양섭취가 제대로 될지에 대해서는 딱히 고민해 본 적은 없는데, 그래도 단백질을 조금 의식해서 밥에 콩을 넣거나 된장국에 두부를 넣는 등 콩을 매일 섭취하도록 노력하긴 했다. 생각해 보니 된장이 이미 콩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이 글을 쓰며 깨달았다. 유레카. 






무엇이든 감싸 안아주는 된장국 


한국에서 된장찌개를 만들면 항상 정해진 재료를 넣었다. 양파, 애호박, 두부, 버섯 등등. 그러다 일본에 와서 미소 장국을 먹으면 정말 별의별 재료가 된장국에 들어가는구나 싶어서 처음엔 놀라고, 먹어보면 의외로 잘 어울려서 두 번 놀란다. 예를 들면, 여름이 되면 그 계절의 제철 채소를 된장국 재료로 넣는데, 토마토나 가지가 들어간다. 가게마다 다르고, 그날 남은 재료마다 다르고, 계절마다 된장국의 재료가 달라진다. 


조금 시들해진 샐러드 야채, 김, 손이 잘 가지 않는 야채절임까지 집어넣는다. 거의 우유에 밥 말아먹는 수준으로 들으면 경악할만한 조합도 된장국은 하나의 요리로 만들어준다. 덕분에 식재료를 버리게 되는 일은 사라졌고, 집에 있는 것을 먹으니 식비도 많이 줄었다. 


국 하나 반찬 하나로 한 달간 음식을 해 먹는 일이 지루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정해진 틀 안에서 매일매일 조금씩 다른 맛과 조합을 생각해 내는 일이 즐겁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요리하는 시간이 행복해졌다.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고 있다 


"우린 숲에 의지해 살아가지만 숲을 보호하기도 해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 외에는 취하지 않죠."
다큐멘터리 <아기 코끼리와 노부부>


나는 인스턴트식품을 끊고 밥도 딱 한공기만 먹으니 적당히 먹고 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밥을 한 공기 먹고 과자를 한 사발 먹을 때도 있었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포만감과 풍족함이 부족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매일같이 1첩 반상을 먹은 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몸과 마음에도 부담이 가지 않는 식사법'에 대해 깨달았고, 전체적으로 먹는 양이 조금 줄어들었다. 이제는 외식을 하러 가면 양이 조금 많다고 느낄 정도다. 


최근 소식좌에 대한 콘텐츠가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미디어는 여전히 우리에게 더 많이 먹으라고 이야기한다. 더 많이 먹기 위해 더 큰 냉장고를, 많이 먹어서 늘어난 지방을 위해 각종 운동 레슨을, 자극적인 음식들로 인해 망가져있을 몸을 위해 더 많은 건강보조제를 권한다. 


극단적으로 단식을 하거나 하루아침에 식단을 바꿀 필요는 없지만, 이제는 적당히 먹는 것을 알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코로나에 걸렸을 때, 그 전전날에 사둔 야채 몇 가지로 집밥으로 열흘을 버텼다. 만약 평소에 자극적인 음식이나 많은 양의 식사를 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항상 풍족한 식사를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때로는 필요한 것만 취하려는 시도와 경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새해에 먹은 오세치 요리


30일간 1첩 반상을 하면서 왜 그간의 식단 개선에 실패했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로 머리가 납득하지 않으면 몸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많은 반찬과 음식을 먹고 싶어서 꾹 참는 모습을 상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매일 같은 루틴으로 스스로 만들어먹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고, 그렇게 평화로운 30일이 지나갔다. 왜 절에서 스님들이 사찰음식을 먹는지 새삼 몸으로 깨닫는 시간이었다. 


지금 나의 식단과 집안에 있는 먹을거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그렇게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올해는 더 건강하고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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