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준

by 안녕수니

요즘 들어 나는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30년 넘은 작은 아파트인데

구축이다 보니 외풍과 결로가 심해서 겨울나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이 집에 처음 이사를 온 게 12월, 눈이 펑펑 내린 다음날이었는데

추위를 유난히 많이 타는 나는 보일러를 아무리 때워도 따뜻해지지 않는 집에 1차 충격을 받았고

보일러를 포함한 컨백터, 온풍기 등 온갖 온열기기를 풀가동한 덕분에 후폭풍으로 날아든 전기세와 가스비 청구서에 2차 충격을 받았고

아침마다 송골송골 맺혀있는 유리창의 결로와 며칠만 환기를 안 시켜도 검버섯처럼 번지는 곰팡이에 3차 충격을 받았다.


내가 그동안 너무 좋은 집에서만 살았나 생각해 보면 이사오기 전 집은 바선생이 수시로 출몰하는 빌라였고, 전전집은 샷시를 한 번도 바꾼 적 없는 20년 된 아파트였다. 하지만 이렇게 외풍이 심한 집은 처음이다. 아무래도 집주인이 임대만 돌릴 목적으로 리모델링할 때 저렴한 샷시로 날림시공하고, 단열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이 집을 계약하게 된 건 거실 창 밖으로 보이는 한라산 때문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한라산과 탁 트인 전망을 보고 나니 집의 낡은 상태도, 화장실 수압도, 수납이나 옵션도 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이 전망 좋은 집을 누구에게 뺏길세라 몇 시간 고민도 하지 않고 일사천리로 계약을 해버렸다. 그게 벌써 2년 전이다.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푸른 녹음,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앙상한 나뭇가지가 주는 자연의 흐름이 좋았다.

이제 어느 집을 간다 한들 이런 풍경을 보여주는 집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아무리 풀로 틀어도 졸졸 흐르는 수압과 오래되어 나사가 흔들거리는 위험천만한 수납장, 곰팡이와 결로는 용납이 안 된다.


더 이상 이 집에서 겨울을 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너무 이사가 가고 싶어 졌다.

그런데 내가 이사 가고 싶은 집은 지금 사는 집보다 연세가 3배나 비싸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는 있지만, 지금까지 누리던 나의 작은 사치(라고 해봤자 장 볼 때 좀 더 비싼 유기농 야채, 성분 좋은 조미료 등을 사는 것이 내 삶의 낙이다)는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첫째 학원도 보내야 하고, 일 년에 한두 번은 여행도 가고 싶은데

그 연세를 낼 돈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그냥 조금 더 살아볼까 싶다가도,

그런 것보다도 가족의 따뜻한 보금자리가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내 대나무숲인 남편한테 툭툭 털어놓았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나는 아주 작은 티끌보다도 미미한 존재인데 뭐가 이리 불만도 많고 고민도 많고 욕심도 많을까. 온전히 행복이라는 걸 느껴본지가 너무 오래된 것 같아. 매사에 불평불만뿐인 인간이야 난. 오빠는 어떨 때 행복해?"


"나는 그냥 우리 가족이 행복하면 그걸로 행복한걸"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황희, 맹사성에 버금가는 청백리의 대명사였을 것 같은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나는 뭔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 행복해질 것 같은데. 남들이 봤을 때도 멋진 집이라던지, 아이들 배우고 싶어 하는 거 아낌없이 지원해 주고, 일 년에 몇 번은 여행을 갈 수 있는 여유로움 같은 거 있잖아. 그런데 이렇게 바라기만 하다 보면 끝이 없을 것 같아. 그걸 아는데도 마음이 고쳐 먹어지지가 않아. 그래서 불행해."


"다른 사람이랑 자꾸 비교를 하니까 그래. 남들을 보지 말고 너랑 우리 가족만 봐."


스쳐 지나가는 실바람에도 휘청거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 기준이 확실한 대쪽 같은 사람이 곁에 있어 다행이다. 여전히 나는 모든 걸 가지고 싶고, 자주 불평을 하겠지만 오늘 남편과 나눈 대화를 떠올리면서 다른 사람들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을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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