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았네 속았어
내가 중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거 같은데, 당시에는 영화인지 단편 드라마인지도 모르고 자면서 깨면서 티비에서 본 소나기라는 영상이 있었다. 비몽사몽간이어서 드문드문 봤지만 영상은 아름다웠고, 들었던 주인공들의 목소리는 맑았다. 그리고 중학교에 입학하여 소나기라는 작품을 교과서를 통해서 알게되었다. 거의 시에 가까운 느낌의 아름다운 작품이었던 거 같다.
이 후 황순원이라는 좀 촌스런 이름의 소설가가 대단하다고 느껴져서 <카인의 후예>같은 작품들을 찾아서 읽었더랬다.
여튼 당시엔 넷플릭스나 유튜브가 없어서 그 영화는 그냥 기억속에만 아름답게 남아 있었다. 그러다 최근 기억 속의 소나기를 유튜브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1979년에 만들어진 영화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드라마는 아니었던 것이다. 당시에도 비몽사몽중에 봐서 기억에 나는 장면보다 목소리가 더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다 커서 다시 들으니, 성우들의 목소리라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그래 주인공 목소리는 아니었구나, 그땐 다 찍고 후시 녹음했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도입부를 보자마자 충격을 받게 되었다.
무슨 아마존을 배경으로 한 것도 아닌데, 이건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소년소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거 아니었나?? 사실 이 전부터 카메라의 좀 불순한 의도가 느껴지긴 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다가 등장한 이 장면을 보는데, 내가 느낀 그 불순함은 확신에 가깝게 되었다.
보면 볼수록 나는 카메라의 불순함에 불쾌함까지 느끼게 되었는데, 결정적인 건 초반의 이 장면이었다.
도대체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자아이의 팬티를 누구에게 이토록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당시 우리나라의 영화 관람객을 생각했을 때 아마 성인 남성을 겨냥한 거였을거다. 대 놓고 로리타적 감성을 겨냥한 장면인거 같다. 이런 로리타 컴플렉스적인 시선은 여주인공을 잡는 카메라 워킹 내내 일관적이다.
이 장면은 당시 어린이들의 옷차림을 보여준다. 물론 같은 영화다. 세련된 서울 여자아이 컨셉이겠지만, 이 영화는 소녀의 다리가 없으면 진행이 안될 정도다.
이 서울 소녀는 영화에서 다른 등장인물과 달리 가장 짧은 옷만 입는다.
소녀의 늘씬한 다리는 누구를 위하여 계속 등장하는 지 알 수가 없다. 이 다리가 없으면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은 진행이 안된다.
왜 인지 뻔히 알 수 있도록 영화 속 소녀는 단 한 번도 긴 바지를 입지 않는다. 아것이 소년 시선의 판타지가 아니라는 건 나이 좀 먹은 사람들은 다 안다.
보면 볼 수록 이건 성인 남성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숨겨진 애로영화로 보이는 거였다. 어른들을 벗기지 말고, 순수함을 가장해서 아이들을 메타포로 작품 한 번 만들어보자라는 감독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클로즈업도 예사스럽지 않다. 원래 클로즈업은 강조하려고 하는 거다. 여주인공의 벌린 입을 잡았다는 건 뭘 강조하고 싶었을까?
카메라가 이렇게 잡으니 나이도 의미없다.
도대체 어떤 의도를 가진 건지 너무도 뻔하다. 요새 같으면 이런 거 아역배우 섭외해서 찍을 수 있었을지 당시는 진짜 야만의 시대였다.
장면장면이 남성 판타지다.
여자는 죽도록 앓고 난 후, 곧 죽을 예정이지만 짧은 치마를 입어야 한다.
영화의 말미에 남자아이는 여주인공의 죽음을 털어버리는 느낌의 장면과 음악으로 마친다. 철저하게 여주인공은 소비로 끝나는 것이다.
당시 소나기의 포스터를 보면 진짜 감독의 의도가 여실하게 드러난다. 얼굴만 바꾸면 당시 애로영화 포스터랑 다를바가 없다.
내 기억 속 아름다운 소나기 어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