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영화를 보는 내내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수상한 희곡이 바로 영화의 원작이었다. 이 영화는 다른 영화와 다르게 무대가 거의 고정되어 있는데, 바로 주인공 트로이(덴젤 워싱턴 분)의 비좁은 집이다. 이 집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되고 이 집에서 벗어나는 장면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등장인물은 트로이의 가족으로 제한되고 대사는 아주 많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연극을 보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사실 영화는 장면이 변화무쌍한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배경의 움직임이 거의 없으니 보면서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던 면이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후 한 달 정도가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집을 떠나 생활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대부분 집과 일터를 벗어나지 않는 삶이니 이 영화는 삶의 일상성을 보여주는 영화로구나 하는 깨달음이 든다.
나는 평소 삶의 어느 단면을 보든 신산(辛酸)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편인데, 이 영화를 보면서도 그러했다. 트로이는 어찌 보면 별 것 없는 한 청소부이지만 그의 삶은 어느 하루 편안하게 지나가지 않는다. (오늘 하루 평안했다면 지금 감사하시길)
흑인으로 살아가는 트로이는 인종차별로 자신이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살아온 삶에서 생긴 가치관을 자식에게 강요함으로 자식과 갈등하고, 일상의 탈출구로 바람을 피기도 하며, 장애인 동생의 보상금으로 마련한 집에서 생활하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하루 하루를 보낸다. 그렇다고 트로이가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자신의 불우했던 성장과정을 돌이켜보며 현재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사회에 불만족하거나, 아내와의 다툼이 있거나, 자식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누리는 삶에 죄책감이 함께 하거나, 관계에 변화가 생기거나 해서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삶에 풍랑이 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안고 삶은 앞으로 전진한다. 죽음을 향하여.
나의 삶은 마감하지만 그래도 남은 자들의 삶은 이어지고, 그렇게 삶의 일상성은 계속되어 나가는 것이다.
산다는 건 원하는 대로 간다고 느끼는 잠깐과 내 뜻과 상관없는 일상과 사건이 함께한다. 홀로 살아도 그렇겠지만 홀로 사는 삶이 아니라면 더욱 그러하다.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지만~
이런 노래가 기억이 난다. 여기에 이 영화를 본 내가 덧붙이고 싶은 가사는
산다는 건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누구든 알 수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