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지금 우리 사회의 흑인 여성은 누구인가?

by simple life

사람의 긴 생을 짧게 만들어 보면 어느 삶인들 영화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내겐 늘 픽션보다 팩트에 기반을 둔 이야기가 더 감동을 주는 거 같다. 얼마 전 보게 된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또한 그러하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사람들은 나사(nasa)에 근무하는 흑인 여성들인데, 캐서린 존슨(타라지 P 헨슨 분), 도로시 본(옥다비아 스펜서 분), 메리 잭슨(자넬모네 분) 셋이다.


이 셋은 수학과 물리, 기계 쪽에 학위를 가진 흑인 여성들이고, 나사에서 계산원으로 일한다.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전이라 나사에선 로켓 발사에 필요한 좌표나 항로 예측에 필요한 수식을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할 사람들이 필요했고 그들을 컴퓨터라고 불렀다. 내가 어릴 때 컴퓨터를 순우리말인 셈틀로 하자고 한 주장이 나온 이유가 이런 단어 사용에서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인데 그 당시 미국 버지니아주에선 버스 안 좌석 흑백 분리, 화장실 흑백 분리, 음수대 흑백분리, 도서관 흑백 분리, 대학 흑백 분리가 여전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다. 물론 세금은 흑백을 분리하지 않았던 거 같다. 나사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캐서린 존슨은 일하는 곳에 흑인 화장실이 없어서 800m 떨어진 흑인 전용 화장실을 다녀야 했고, 흑인용 주전자에 물을 떠서 마셔야 했다.


그리고 백인들은 이런 상황에 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정말 자연스럽게 여긴다. 모두 상당히 정도가 아니라 미국 최고의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50여년이 지난 후의 나는 그들의 자연스런 행동이 악행으로 느껴진다. 왜일까?


후반에 가면 흑인 여성들이 하는 compute(계산)은 기계 computer가 대신하게 되고, 이런 상황을 미리 준비했던 흑인 여성 도로시 본은 코더가 되고, 같이 일했던 흑인 여성 모두의 일자리를 보호하고 자신은 나사 흑인 여성 최초로 나사에서 슈퍼바이저가 된다.


톡톡 튀는 매력으로 인습에 적극적으로 항거했던 메리 잭슨은 미국에서 흑인 여성 최초로 항공 엔지니어가 되었다. 1979년 랭리 여성 프로그램 관리자로 일하게 되었고, 모든 인종의 여성 권익을 위하여 힘썼다.


영화 히든 피겨스의 주인공 중 가장 비중 있는 역할은 캐서린 존슨인데 그녀는 어려서부터 물리와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존슨은 NASA의 첫 유인우주선 궤도를 계산해냈고, 이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15년 민간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 훈장을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수여받았다.

영화에서 지구 궤도를 비행한 첫 우주인인 존 글렌 대령은 비행 직전 캐서린 존슨을 찾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숫자를 확인한 후 '됐다'라고 해야 준비된 거예요"

2016년 나사는 우주여행 분야에서 그녀의 공헌을 기념하는 의미로 캐서린 존슨동을 헌정했다.


1862년 9월 링컨은 남북전쟁 중 안티텀 전투에서 전황이 북부에 유리해지자 ‘노예해방 예비 선언’을 발표하였고 이듬해인 1863년 1월 1일 예비라는 두 글자를 뗀 미국의 노예해방을 선언하였다.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미국에서는 흑인을 노예로 부리지는 않았지만, 같은 사람으로 대우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노예해방은 흑인을 노예로 부리지 말 것을 선언한 것이지 동등한 인간이라고 선언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영화에선 흑인을 흑인 스스로도 니그로(nigro)라고 부른다. 지금은 인종차별 논란으로 미국에서 사용하지 않는 용어이지만 이때만 해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니그로는 ‘검은색’을 뜻하는 스페인 ·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한 용어로, 미국에서 흑인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지금은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American)’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한 지 100년 정도가 지났으나 사람의 의식은 아주 더디게 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시간에 배운 아노미현상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백인들은 악역이 되어 버린다.


몇 년 전에 본 영화 '헬프'도 1960년대 미국 남부 미시시피 주의 흑인 여성들의 삶을 보여 준다. '히든 피겨스'가 1960년대 미국 엘리트 흑인여성담(談)이라면 '헬프'는 1960년대 미국 가정부 흑인여성담(談)이다. '히든 피겨스'에 나오는 당시 미국 최고 엘리트 흑인 여성들도 이렇게 차별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생활하는데, 하물며 가정부야 그 신산한 삶이 어떠하겠는가? 당시 흑인이자 여성에 무학(無學)까지 더하면.


약자는 언제나 이렇게 투쟁적으로 살아야만 숨을 쉴 수 있는 것일까?

지금 흑인 여성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참고로 한 문헌 (트렌드 지식사전 2, 2014. 5. 23., 인물과사상사)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더 홈즈맨(The Homes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