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렌티피티와 지식과 취향
"If I have seen fu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lders of Giants."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 남긴 기록 가운데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것은 1675년 2월 5일, 라이벌 관계였던 로버트 훅(Robert Hooke)에게 보낸 편지에 써있다는 바로 저 문구이다.
요새 만나는 사람마다 AI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직업이 없어질 거다, 인간이 영생을 누리게 되었다, 인류를 AI가 멸종시킬 거다 등등 방향성도 모두 다른 말이다. 어쩜 다 맞는 말 같다. 그 똑똑한 AI는 그렇다면 누구의 어깨 위에 올라와 있을까? 당연 인간이다.
"If AI has seen fu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Humanity."
만약 AI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것은 인간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기 때문이다.
AI사업을 하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은 중앙집권적인 거대 자본과 컴퓨팅 파워를 동원하여, 인류가 생산해낸 지식과 데이터를 공짜로 마구 추출하여 자기들이 돈 버는 사업에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걸 '비용의 외부화'라고 부른다. 한 마디로 비용은 우리가 내고 돈은 빅테크가 번다는 거다.
그런데 AI는 끊임없이 양질의 '인간의 원본 데이터'를 섭취해야만 환각(Hallucination)과 모델 붕괴(Model Collapse)라는 리스크를 방어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스스로 사유하고 창작하며 새로운 지식과 취향을 발굴해내지 않는다면, AI라는 거대 기계는 스스로 작동을 멈추거나 퇴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온라인 생태계는 이미 AI와 알고리즘에 의해 최적화되고 평준화되었다. 검색 엔진 최적화(SEO)와 추천 알고리즘에 맞추어 콘텐츠들이 생산된다. 네이버 블로그에 양질의 정보가 사라진 이유도 다 이 때문이다. 네이버 블로그 콘텐츠들은 사실 인간이 읽으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기계가 읽기 좋게 규격화되어 검색에 걸리라고 만들어 놓은 일종의 '합성 데이터다.
이런 상황을 알고 나면 나라는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은 주체적인 선택이 아니라 플랫폼이 주입한 통계적 결과물이라는 인정하기 싫은 사실과 만나게 된다. 들뢰즈(Gilles Deleuze)라면 아마도 현대인은 알고리즘이라는 거대한 트리(Tree) 구조에 갇혀, 이질적이고 우발적인 접속을 차단당한 채 획일화된 사고를 강요받고 있다고 말해줄 것도 같다. 이런 현실에서 스티브 잡스같은 차별화된 브랜딩이나 파괴적 혁신을 찾기란 더 힘들 것이다. 우리는 이미 통계적 평균치만을 내놓는 온라인의 데이터 바다에서 의지력을 상실한채 밀려가고 밀려오는 대로 떠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납작한 스마트폰에 갇힌 디지털 세상에서 산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저녁에 잘 때도 스마트폰을 켜두고 자는 사람이 많다. 사실 나도 그렇다. 이 스마트폰 세상은 획일화된 정보를 계속 추천해주는 평균적인 세상이다. 이런 디지털 공간에서 더이상 영감을 받지 못하게 되면 우리 인간들은 양질의 지식과 텍스트를 생산하지 않게 될 것이다. 아마도 AI시대가 지속가능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시나리오는 규제나 비용이 아니라 '인간들의 침묵'일 수도 있다.
AI 시대라는 것을 다시 환기하자. AI는 효율적이다. 그렇지만 인간이 '효율성'이라는 명목하에 사유의 노동을 외주화한다면, 인류라는 AI의 어깨는 더이상 AI를 받쳐주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어깨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 그 위에 올라탄 AI 역시 근친교배된 데이터만을 소화하다 지적 불임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AI를 부셔버릴 수는 없다. AI가 무너지게 두는 것도 답은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뭘 해야할까? 질문이 구체적이면 답은 정확해진다. 인간은 납작한 디지털 세상에서 스스로 나와 '오프라인에서의 물리적 연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지식과 취향이 아닌 철학과 문학, 경제에 대하여 살펴보고 읽고 듣고 영감을 얻는 세렌티피티가 가능한 물리적 공간이 꼭 필요하다. 암묵지라는 것은 공간과 시간이 함께 있는 곳에서만 체화되는 것이다. 이 공간에서 나는 모든 것을 숫자로 이해하는 AI의 통계적 예측을 벗어날 수 있고 스스로를 브랜딩 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
AI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이미 와버린 현실을 인정한다면, 인간은 디지털 세상에서 잠시라도 나와서 오프라인의 공간에 모여 읽고 토론하며 미소와 눈빛이 있는 자신만의 지식과 취향의 생태계를 가꾸어야 한다. 인간들은 원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빅테크 기업들이 순식간에 인간들의 어깨에 AI를 세울 수가 있었다. AI산업이 지속가능하려면 인간을 침묵하게 두면 안된다. 그래야 양질의 디지털 콘텐츠가 지속 가능해지고 AI를 지탱해주는 어깨도 단단해진다. 그리고 이런 지식과 취향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누구의 말대로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