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공짜는 없다
나는 요즘 다시 텍스트의 시대가 올 거 같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물론 나는 점쟁이도 아니고, 미래학 박사 학위도 없다. 사실 이 말을 하는 나도 책 안 읽은지 한참 되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곤했던 나였지만, 거의 한 십년 전부터 책을 읽지 않았다. 일단 눈이 좀 안좋아졌다. 그래서 작은 글자가 두 개로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책을 읽어도 피로가 몰려왔다. 한평생 눈이 좋았던 나로서는 날벼락 그 자체였다
굿바이 독서! 그동안 고마웠다.
미련이 남아 오디오북 어플을 구독했다. 그래! 눈이 안좋아졌지만, 귀가 들리니까 오디오북도 좋지. 열심히 들었다. 특히 잘 때 플레이해두고 자면 꿀잠이 솔솔이었다. 그동안 읽지 않았던 백경같은 두꺼운 소설책도 읽지 않고 들었다. 그러다 유튜브를 알게되었다. 몇 달 후 오디오북 어플을 해지했다. 무궁무진하게 많은 컨텐츠가 산처럼 쌓여있는 유튜브를 보고 듣고 하다보니 오디오북 어플을 한 달 내내 한 번도 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아듀 독서! 다음 생에 만나자.
유튜브에는 명강사들의 강의가 넘쳐났다. 의사, 변호사, 세무사, 작가, 마케터 등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몇십분씩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해준다. 그냥 이어폰만 끼고 들으면 오디오북보다 더 정보를 쑥쑥 흡수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엄청 똑똑해지는 거 같았다. 그래 기술이 발전하면 독서의 정의도 달라지는거야! 잘 때 명강사들의 유튜브를 틀어놓고 잠을 자니 역시 꿀잠이었다. 자면서도 흡수해라 이 좋은 강의를...
유튜브를 보고 들으면서 나는 이상한 것들을 알게 되었다. 일단 썸네일과 내용이 아무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썸네일이 책으로치면 표지인줄 알았다. 그런데 썸네일을 보고 콘텐츠를 클릭하면 전혀 다른 내용이 나왔다. 언제 썸네일에 있는 내용이 나오나 싶어 계속 보면 콘텐츠는 끝이 난다. 유튜브가 내 시간을 꿀꺽한 것이다.
그래서 자극적이거나 혹하는 썸네일은 거르게 되었다. 그랬더니 볼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래, 차라리 유튜브 오디오북을 듣자. 하지만 저작권이 만료된 셜록 홈즈와 아가사 크리스티 같은 고전들뿐이었다. "요즘 책이구나!" 싶어 클릭하면, 성우가 몇 페이지 읽어주다가 뚝 끊기며 "뒷내용은 서점에서 만나세요"라고 한다. 이것들이 나를 가지고 노네.
그제야 깨달았다. 유튜브는 나에게 지식이나 통찰을 주려고 존재하는 선한 플랫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시간을 뺏어서 광고를 보게 하거나, 자신들의 유료 강의를 팔기 위한 모델하우스였다. 모델하우스 믿고 집 계약한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속았다”이다.
그래, 세상에 공짜는 없지. 공짜는 대부분 쓰레기이거나, '나도 모르게 내 시간'으로 그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었다. 개중에 좋은 콘텐츠도 있겠지만, 차라리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지, 그걸 찾으려면 내 시간을 또 버려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래서 다시 텍스트의 시대가 올 것 같다.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저자는 뼈를 깎지는 않겠지만, 많은 시간을 쏟는다. 최저임금으로 따져봐도, 유튜브 썸네일에 낚여 스마트폰에서 허우적대는 비용이면 차라리 책 한 권을 사는 게 낫다. 책값을 지불하는 순간, 저자가 쏟은 그 많은 시간은 내 것이 될 수도 있다. 책이야말로 가성비 뇌훈련이다.
근데 이제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거의 '묘기'라고 불러도 될 거 같다.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을 보는일은 일주일에 한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아하! 지금이 현대판 조선시대구나. 조선시대에는 글(한자)을 안다는 것은 소수 양반들만의 특권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깔딱거리는 조선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그 권력으로 숨을 붙여놓았다.
조선시대에도 한글이 있었지만 한글이 글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세상을 움직이는 언어가 사실 우리들의 말이 아니라 그들만이 아는 한자라는 암호로 짜여 있었기 때문이다. 한글은 쉽고 편했지만, 권력의 언어는 아니었다.
영상은 쉽고 편하다. 누구나 볼 수 있다. 어린아이도 촌부도 그 누구도 소비한다. 반면 텍스트는 읽으려면 훈련이 필요하고 사고력이 필요하고, 해석도 필요하다. 한글이 아직은 한자수준의 암호는 아니지만, 점점 암호가 되어 갈수가 있다. 암호란 해독하기 어려우면 다 암호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속담이 있다.
꿈을 꾼 사람은 알것같기도하고 모르는거 같기도 해서 해몽을 잘 하는 선비나 점쟁이를 찾아 간다. 그 모호한 꿈에 해몽가는 의미를 부여하고 또 확정해준다. 결국 꿈은 해몽이 없으면 무의미해진다. 결국 권력은 해몽가의 몫이다.
P.S. AI 시대에 '물성'과 '사유'를 지키기 위해, 공유서점 <사서고생>을 오픈할 예정입니다. 혹시 이 글이 마음에 와닿으셨다면, 우리가 준비한 공간도 흥미로우실 겁니다. 텀블벅에서 파운딩 멤버를 모집 중이니 한번 구경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