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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붓한일상 Mar 27. 2024

의도적인 정시 퇴근

복직 후 한달이 지났다. 언제 휴직을 했었냐는 듯이 일에 매몰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놓치지 말아야 할것은 지키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하나씩 일에 내주다보면 나중에 빈털털이가 되어버린 내 모습에 또 마음이 지칠테니 일부러 나를 챙겨야 한다.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첫 번째는 '의도적인 정시 퇴근'이다.

사실 4월 축제 준비가 한창이기 때문에 9 to 6로 업무를 처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예전 같았으면 의도적이던 아니던 야근을 밥먹듯이 했을텐데 요즘에는 일부러 6시만 되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가야한다고 말하며 부산을 떤다. 그 누구도 나에게 남아서 일을 하라는 말을 하지도 않고 정시에 간다고 눈치를 주는 사람도 없지만 나 스스로 일에 선을 긋기위해 일부러 티를 내면서 퇴근 준비를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조근을 신청한다. 문득 '조근'의 한자가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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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 朝覲(아침 조/ 뵐 근)  

예전에, 신하가 조정에 나아가 임금을 뵙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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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침 일찍 임금을 뵙진 않으니 일을 뵈러 간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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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 朝務 (아침 조/ 부지런할 근, 근심할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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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를 바꿔 쓴다면 '부지런한 아침', '근심하는 아침'으로 해석이 되는건가. 그렇다면 '부지런할 근' 보다는 '근심할 근'이 나의 조근을 적절히 표현하는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어찌되었든 '야근 보다는 조근을 하자. 그리고 절대로 6시가 되면 나를 기다리는 준이에게 달려가자'는 취지로 의도적인 정시퇴근에 애를 쓰고 있다.


초과근무 신청서를 쓸 때 가끔, 아니 사실은 매일 고민한다. 야근을 할까. 친정엄마가 오시는 수, 금요일에는 여유있게 일을 마무리 짓고 퇴근을 할까라는 고민. 일을 마무리 짓지 않고 내일 한다고 사고가 나는 것도 아니지만 뭔가 불안하게 붕~떠있는 상태로 퇴근하는 것도 스트레스를 받기는 한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 어제 꿈.

나는 누군가와 있었고, 방이 여러개 있는 장소였다. 얼핏 떠오르는 기억에 오래전 부모님과 같이 살던 아파트 구조와 비슷했다. 방과 방 사이에 드레스룸과 화장실이 있어서 서로의 방이 연결되었던 곳.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뭔가 하고 있었다.


울음 소리가 들렸다. 엉엉 우는 소리. 그 소리 중간중간 들리는 "엄마~ 엄마~!" 누구지? 자세히 들어보니 준이의 목소리다. 나를 찾는 소리였다. 그런데 꿈에서 나는 준이가 오는 걸 피해 다른 방으로 이동하면서 그 곳에 있던 다른 누군가에게 내가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아마 뭔가 하던 일이 마무리 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은데 그러던 중 잠에서 깨고 말았다. 울고 있던 준이를 그냥 둔채로. 엄마가 여기에 있다고 말도 하지 못하고 한번 안아주지 못한채 그렇게 그냥 잠에서 깨고 말았다.


새벽 5시, 애메하게 일찍 잠에서 깼다. 다시 잠들고 싶었지만 꿈을 다시 꿀 수는 없었다. 일어나 준이의 방으로 갔다. 이불을 다 걷어차고 볼이 차가워진 채 잠들어있는 아이.(왜 이럴 때는 이렇게 측은한 자세로 있는거야!) 이불을 덮어주고 볼을 쓰다듬으며 꼭 안아주었다. 마치 꿈에서 울고있던 준이를 달래주지 못한 미안함을 사과하듯이.


출근을 하고 또 정신없이 바쁜 하루가 지나갔다. 오늘은 출장에 나가 5시30분에 일이 끝났다. 사무실로 갈까 집으로 갈까 살짝 고민했지만 집으로 출발. 오늘은 의도적인 이른 퇴근을 했다.


꿈에서 일을 마무리 하지 못했다고 준이의 울음을 피했던 나는 휴직하기 전의 내 모습이었다. 준이가 엄마라는 말도 못하고 아빠만 찾아서 걱정을 샀던 엄마. 그렇게 애쓴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 있기도 하지만 그 몇년의 시간동안 준이의 울음을 또는 준이의 외로움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복직하면 다른 삶을 살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나의 삶, 나의 가족에 대해서는 어떤 타협점도 갖지 말자고. 그 결심을 다 지켜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정시퇴근은 꼭 지켜야겠다.


의도적인 정시퇴근.

당신은 오늘 몇시에 퇴근했는가. 나를 지키고 있는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있는지 묻고싶다. 우리의 삶이 팍팍하고 외롭긴 하지만 그래도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기 위한 기준에 다른 것들과 타협하지 않기를 바란다.



#라라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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