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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붓한일상 Apr 22. 2024

폭풍이 한바탕 휩쓸고 간 뒤

문화재단 팀장의 축제 제작 기록

지난 토요일, 드디어 축제가 끝났다. 무사고 종료였고, 중간 중간 '개망했다'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들도 많았는데 어쨌든 사고 없이 끝난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이틀동안 빡빡하게 꽉채운 일정은 한순간도 쉴틈을 주지 않고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첫째날은 잘 끝났는데 둘째날은 하루종일 비도 내리고, 온몸이 비에 젖고 생각도 마음도 젖은 하루였다. 그 이야기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대략 아래 정도의 목차로 정리될 것 같은데 브런치북으로 만들어볼까도 생각하다가 주기적으로 올릴 자신이 없으니 우선 시작부터 하자. 나만의 축제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다. 

====


1. 기획

1-1. 축제의 준비

1-2. 축제의 기획

1-3. 축제의 공간과 시설

1-4. 축제의 안전 관리


2. 조직

2-1. 축제 담당자가 할 일

2-2. 축제 감독의 역할

2-3. 축제 주최/주관 기관이 할 일

2-4. 공공과 민간 사이, 중간지원조직의 역할

2-5. 구청의 지원


3. 제작

3-1. 축제에서 인력 관리

3-2. 야외 음악 공연 준비

3-3. 교통통제의 노하우

3-4. 제례 행사의 기본

3-5. 음식 나눔 행사 준비


4. 홍보

4-1. 축제 홍보의 종류

4-2. 주민 대상 홍보 방법

4-3. 구청의 홍보 협조 

4-4. 거리 홍보의 노하우


5. 마음 관리

5-1. 축제가 다가올 때 하는 마인드컨트롤

5-2. 손을 놓아야 할 순간, 버리는 패

5-3. 잘 해도 못 해도 욕먹는 순간

=====


더 많은 주제들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다 밝히면 곤란하니 이 정도로 해두자. 


팀원들과 축제를 만들면서 서로 웃으며 놀렸던 말이 있었다. 

"성취감 느꼈어~!성취감~! 이제 못 벗어나~!"

서로 너무 힘든 시기였고, 버티고 기대지 않으면 누군가 하나 쓰러져버릴 것 같던 순간. 서로를 다독이지 않으면, 나 또한 '무너지면 안되...'를 되뇌이던 순간들. 그때마다 누군가가 잘된 홍보에 성취감을 느끼고, 잘 만들어진 분위기에 만족을 느끼고, 아주 작은 성취감을 느끼면서 그 짧은 순간을 버텼다. 그래 이런거야... 마치 그 순간 모두에게 도파민이 분비되어 힘들었던 순간을 미화하듯, 그렇게 우리는 아주 짧게 느낀 성취감의 순간을 놀려댔다.  


문화와 예술을 다루는 기획자들은 D-day를 박아놓고 그 날을 향해서 전력질주 한다. 앞뒤 재지 않고 해야할 일을 쳐내며 그렇게 달린다. 때문에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그러질 때, 꾸역꾸역 안넘어갈 때가 있고, 그 순간을 넘어가야 다음 순간을 해결하고 결국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마지막까지 가는 것이다. 작은 어려움의 순간들을 넘어갈 때 느끼는 성취감. 그것이 우리에게는 독이자, 이 일을 때려지지 못하게 만드는 도파민이다. 그 도파민에 너무 오랜시간 중독되어 지금까지 왔다.  


팀원과 밤을 새며 마트에 필요한 것이 있어 가던 길에 이런 대화를 했다. 상처가 난 곳을 계속 때리다보면 피가 나고 딱지가 생기고 또 뜯어지고 딱지가 생기면서 피부가 두꺼워지고 결국에는 아픔도 느끼지 못할 만큼 굳은살이 생기는 것. 그게 우리 기획자의 삶인 것 같다고.  


나이가 40이 넘도록 이렇게 현장에서 뛰어야 하는 나의 모습을 보라고, 그래도 하고싶니? 팀원은 그 이야기를 듣더니 아찔하긴 한데 아직 이 일이 재미있고 좋다고 했다. 그래, 그럼 그렇게 가라.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할테니, 내가 조금 전에 한 이야기는 잊고 너가 즐거울 일들을 만들어가라고. 그렇게 우리는 같은 방향을 보면서 서로의 도파민에 중독되고, 서로의 에너지에 의지하며 그렇게 축제를 마무리 했다. 


10월에는 더 크게 길을 막고 축제를 해야한다. 그때는 더 많은 민원과 잔소리, 사공들의 목소리가 있겠지. 버틸 수 있을까, 끝나고 나면 지금처럼 그래 지나고나니 버텨지더라 라고 말하고 있을까. 버티는게 답일까, 아니 이렇게 경력을 쌓다보면 더 단단해지겠지. 마음은 수천만번 오락가락 하겠지. 다들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는 거겠지. 내가아닌 순간들, 그저 '일하는 나'에게 맡기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가겠지. 


비관적이기도 하지만 낙관적이기도 한 현실. 그래도 수고했다, 토닥이며 악수를 내미는 손들이 고맙고. 함께 비를 맞으며 현장에서 뛰어준 사람들이 있어서 고맙다. 그게 평험한 삶이고, 다들 그렇게 자신의 축제 안에서 버티며 사는 것이다. 


모든 현장이 끝나고 사무실에 들어와 "끝났다아!~!"를 외쳤다. 그래 끝났다. 다음이 곧 다가오지만 그래도 끝냈다.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요일, 월요일 줄줄이 출근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끝났으니 좋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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