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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파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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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Nov 25. 2019

피의 언덕, 몽마르뜨

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파리의 집들은 건물에 창을 가리는 가리개가 장착이 되어 있다. 오래된 집들은 나무판자로 짜인 나무 덧창이 유리창 바깥쪽에 달려 있고, 우리 집처럼 발같이 내렸다가 올렸다가 할 수 있게끔 되어 있는 곳도 많다. 우리 집은 큰 도로를 끼고 있어, 밤늦은 시간까지도 오가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우리 집 벽에다 침입자를 풀어놓는다. 하여 내가 좋아하는 노을이 흩어지고 나면 덧창을 돌돌 돌려 빛과 집을 갈라 둔다.


불을 끄면 그야말로 암흑이다. 서로를 더듬어야 찾을 수 있을 만큼 어둡다. 처음에는 이러한 어둠에 적응이 안되었지만 지금은 금세 그녀의 온기에 기절을 해버린다. 아침이 오면 소리는 아침을 알려도 빛은 어떤 소식도 전해줄 수가 없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어두운 방을 더듬어 창가로 가 무거운 발을 천천히 돌려 열 때면 일종의 기대감이 생긴다. 오늘 날씨는 어떨까? 프랑스의 겨울은 거의 흐리고 비도 잦기 때문에 기대는 자주 무너지지만 오늘처럼 맑은 날이면 어디론가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날이 아주 좋았다. 이틀 전만 해도 소나기가 같은 비가 내리다가 해가 지자 파리에서는 무척 귀하다는 눈이 되어 내렸다. 파리에서 맡는 첫눈이라니. ‘신기하다’ 라는 말을 또 버릇처럼 뱉으며 우리는 아이처럼 팔을 우산 밖으로 내밀어 내리는 눈을 일부러 옷에 묻히곤 했다.


날이 아주 좋았다. 오늘은. 구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햇빛은 어떻게든 틈을 찾아 땅을 노랗게 다 칠을 해두었다. 엠마도 오랜만에 밝은 날에 기분이 좋은지 오늘은 조금 먼 곳까지 가보자고 했다. 어디가 좋을까 하다가 몽마르뜨가 눈에 걸렸단다. 관광객들에겐 악명 또한 높은 곳이라 우리가 여태껏 가볼 생각도 않았던 곳. 우리 집은 파리의 남쪽에 있어서 몽마르뜨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프랑스의 겨울은 낮이 짧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부터 서둘렀다. 혹시 몰라 돗자리와 커피, 따뜻한 차까지 챙겨 들고 집시들과 팔찌를 강매하는 이들이 있다는 곳, 몽마르뜨를 향해 겁 없이 발걸음을 서둘렀다.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2호선의 Anvers역이 아니라 14호선의 Abbesses역에서 내렸다. 노을이 내리는 시간에 맞춰 몽마르뜨에 오르기 위해서 시내에서 상점들을 둘러보며 시간을 조금 보냈다. 어제는 노란 조끼 시위 때문에 시내의 주요 역들이 문을 닫았다는데.. 오늘도 알 수 없는 시위가 있어 시내에는 무장한 경찰들이 가득했다. 아직은 본격적인 세일 시즌이 아니어서 쇼핑에는 별달리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거리의 건물들에 내려앉은 귀한 햇빛이나 구경하면서 몽마르뜨 언덕 쪽으로 걸었다.


중간에 생라자흐 역이 있어 화장실도 들를 겸 들려보았다. 생라자흐역의 대합실은 2012년에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해 깔끔한 현대식 상점들이 벽을 온통 차지하고 있었다. 모네의 그림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과 같은 분위기는 적어도 쇼핑몰로 바뀐 지금의 대합실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이미지와 삶의 장소에서 사람들은 전혀 다른 것을 바란다. 유지와 변화, 낡음과 새로움, 불편과 편리 사이의 갈등은 모든 오래된 도시들에겐 쉽게 가라앉힐 수 없는 문제들일 테다. 사람들이 바라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모인 도시의 매끄럽고 조용한 하루도 누구에게는 견딜 수 없는 병실 같은 곳이 될 테고.


아무래도 테러가 일어난 지 몇 년이 안 되어서인지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4명씩 짝을 이뤄 역 안을 순찰하고 있었다. 베레모를 쓰고 있지만 허리에 철모를 차고 있었다. 어깨를 뭉치게 할 한 팔 길이의 자동소총을 매고 주변을 둘러보는 병사는 여드름이 다 지워지지 않은 금발의 청년이었다. 역시나 이곳도 파리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화장실이 유료였다. 1유로나 하는 통에 줄까지 길어 우리는 화장실 가는 것을 포기하고 생라자흐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Abbesses역으로 곧장 가기로 했다.


Abbesses역에서 몽마르뜨 언덕으로 나가는 출구는 무척 독특했다. 병원에서와 같은 육중한 엘리베이터가 두 개쯤 있고 계단은 중세 시대 성처럼 나선형으로 빙빙 돌아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스무 번도 더 꺾이는 나선형 계단에 어지러움마저 느끼며 허벅지를 부여잡고 지상으로 나가자 아이들이 졸라대는 회전목마 너머로 기대하지 않았던 ‘사랑해 벽’ 이 보였다. 굳이 가봐야지 하는 생각은 안 했었는데 막상 보니 파란색 벽이 무척 예뻤고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아 슬쩍 들려서 사진을 찍고 찍어주었다.


“자, 이제 긴장해.”

“응, 긴장해.”


서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인을 해달라는 꼬마들이 천사 같은 웃음을 띄면서 달려들었고, 우리는 ‘농, 파흐동.’을 연발하면서 아이들을 벗어나 좁은 언덕길을 향해 총총걸음을 걸었다.



걱정과 달리 Abbesses역에서 사크헤 쾨흐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는 집시들과 팔찌를 강매하는 무리들이 없었다. 좁은 골목들이 갈라진 틈으로 파리의 시내들이 조금씩 내려다 보였다. 좁은 길에는 카페와 빵집, 작은 레스토랑 그리고 중고의류와 액세서리들을 파는 가게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가 들려 본 한 가게는 옛 창고를 그대로 고쳐서 쓴 듯 철제로 된 나선형 계단을 서로 비켜주면서 내려간 지하 쇼룸은 오래된 지하무덤에 온 것만 같았다. 좁은 쇼룸 안에는 한 벌씩 밖에는 없을 듯한 옷들이 적당히 진열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커플들과 부부들이 그러하듯 여자들은 옷을 고르고 남자들은 통로와 구석에서 자신들의 파트너를 넌지시 바라보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길을 내어주느라 또 나름 바빴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어색해서 한 두 번을 옷을 찾는 듯 뒤적거리는 것도 꼭 같았다. 나도 엠마가 옷을 고르면 가서 한마디 의견을 보태주고 다시 물러나서 여러 사람에게 길을 내주고 다시 자리를 잡고 하는 일을 반복했다. 내심 마음에 드는 옷이 있는 듯했지만 한국과 달리 구입은 하지 않고 나의 손목만 잡고 상점을 빠져나가는 엠마였다.



또 두어 번의 긴 계단을 기어가듯 오르자 하얗고 이질적인 사크헤 쾨흐 대성당이 우리의 눈을 찔러댔다. 대리석 안에 함유된 방해석 성분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하얀빛을 잃지 않는다는 모스크를 닮은 신기한 이름의 거대한 성당. 마치 파리의 자잘한 건물들을 피해 언덕에 내린 우주선 같은 이 이상한 성당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자 성당을 등 뒤에 두고 어디론가로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산 하나 없는, 같은 높이의 건물들로 대지를 말끔히 지워 놓은 파리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우와.”


우린 우리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우리의 뒤쪽에서 걸어오던 여러 국적의 사람들도 연이어 탄성을 질렀다. 마치 넓게 덮인 구름의 무게에 눌린 듯 지독히도 같은 높이의 건물들이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조금씩 다른 아이보리 빛을 반사시키면서 번져 있었고 간혹 보이는 뾰족하게 높은 성당의 첨탑들과 두드러지게 높아 보이는 에펠탑의 머리만이 이곳도 역시 하늘을 탐하는 ‘인간’의 도시임을 외치고 있었다. 산도 없고 어떠한 굴곡도 없는 평평하고 둥근 판이 우리를 바늘로 하여 천천히 돌고 있는 듯 어지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아직은 노을도 시간이 남아 우리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사크헤 쾨흐 대성당은 게임의 속 배경인 것만 같은 둥근 모양의 외형과는 달리 실내는 성당 안에 든 사람들에게 강제로 숭고함을 쥐어주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넓은 성당의 한가운데에 거대한 돔이 서 있었고 그 돔의 가슴쯤을 갈라 낸 창문들에서 내려온 빛들이 반사와 반사를 이어가면서 성당 전체를 같은 밝기로 밝히고 있었다. 어두운 벽 곳곳에 모자이크된 성화들은 어두운 색들로 채색되어 있어 그림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기보다는 모두가 성당 안의 어떤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다만 중앙 제대 위의 작은 돔을 가득 덮은 예수의 성심을 나타난 거대한 모자이크화만은 사람들에게 이 성당의 존재 이유를 강변하고 있는 듯 강렬했다.


대성당은 미사와 기도를 드리는 성당 중앙을 비어 두고 관람객들이 그 주변을 한 바퀴 둘러 나갈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우리가 성당 안을 천천히 돌아나가는 동안 1885년부터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는 성체조배가 행해지고 있었다. 수녀님이 부르는 성가는 조금 섬뜩하게 아름다워 잠시 멈춰 바라보는 사이 하마터만 나의 죄를 다 고백할 뻔했다.


대성당이 자리 잡은 몽마르뜨 언덕은 지금은 낭만과 예술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역사적으로는 파리 전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파리를 온통 불태울 수 있는 포대가 설치되어 있었던 곳이다. 그런 이유로 이곳은 파리의 최후의 보루였고, 이곳을 차지한 이들이 곧 파리의 주인이기도 했다.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에게 무력하게 항복을 한 후 세워진 제3공화정은 프로이센에 대한 항전을 계속 이어가지만 곧 파리를 포위당하고 만다. 프로이센 군에게 사방을 포위당한 채 132일 동안 외부로부터 어떠한 물자도 공급받지 못한 파리의 시민들은 동물원의 동물들, 거리의 고양이, 심지어 숨은 쥐까지 잡아먹어야 할 만큼 비참한 상황이었다. 이에 결국 3공화정부는 프로이센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이후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정부는 왕당파등 보수파가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정부를 차지한 보수파들은 대혁명의 유산이자 프로이센에 대항해 최후까지 항전을 하던 파리를 오히려 적으로 여기며 파리를 무력화시키고자 몽마르뜨의 포대를 장악하고 파리에 있는 국민 의용군의 무장을 해제하려고 했다. 그런 공화정부에 반대해 일어난 파리 시민들의 봉기는 세계 역사 상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인 파리 코뮌을 출범시키게 된다. 지금 봐도 놀랄만한 여러 가지 진보적인 정책들을 펼치며 시민들에 의한 정부를 꿈꾸었던 파리 코뮌은 72일 만에 사회주의 혁명을 두려워하는 유럽의 지원에 힘입은 보수적인 공화정부에 의해 잔인하게 진압되었다. 당시 175만 정도였던 파리의 인구 중에 2프로에 가까운 3만여 명의 시민들이 한 번에 학살을 당했다.


코뮌에 대한 보수파의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 끝난 후 보수파 정부는 프로이센에 대한 굴욕적인 패배를 포함한 이 모든 비극이 자신들의 도덕적인 타락의 징벌이라는 교회의 믿음에 따라 다분히 의심스러운 속죄하는 마음을 담아(속죄하는 말 아래 기존의 질서로 다시 정리되길 원하는 보수파의 의도 또한 담아) 피의 언덕 꼭대기에 이 대성당의 건립을 추진했다. 대성당은 30여 년의 시간 동안 진짜로 징벌을 받고 있었을 민중의 기부금만으로 만들어졌다. 건축가가 이 지독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건물을 나와 전망대로 유명한 대성당의 돔에 오르려다 6유로나 하는 가격과 가득한 사람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낮 등을 이유로 우리는 그만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이 다 보는 곳 말고, 나만이 발견한 것 같은 착각이라도 가질 수 있는 곳을 원하는 건 바꿀 수 없는 나의 혹은 우리의 버릇이다. 어릴 적부터 예술하는 사람을 꿈꾸면서 처음에는 지독히 노력을 했고 마침내는 지울 수 없는 강박이 되어 버린 것이 바로 ‘나만의 것’이라는 환상이다.


어릴 때는 남들이 따라 할까 무서워서 무슨 생각이 들면 남들에게 심지어 선생님에게도 의견을 구하지 않았고 남들을 따라 하게 되는 일도 무서워서 사람들의 충고 또한 흘려듣고 보고 배워야 할 작품들 또한 일부러 보지 않으려 하면서 스스로를 작은 감옥에 가뒤 놓곤 했었다.


이제 와서 보면 예술이라는 것은 자기 안에서 시작하는 것은 맞지만 오로지 자기 안에서만 결정되어 나오는 것은 아니고 문제로 가득한 어떤 가여운 자아가 세상과 부딪히는 순간, 누구의 결재도 없이 어지럽게 튕겨 나오는 것들, 다만 그것 중에 무엇일 뿐인 것을 안다. 그 여러 잔해들 속에서 또 마치 자신 능력 안에서 키워 낸 자신만의 것인 듯 하나를 골라 몰래 적당히 망쳐가다가 너무 늦었다며 께름하게 자기 이름을 써 놓고 뒤돌아 울곤 하는 거겠지.


아름다움은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그저 순수함 그 자체이니까. 아름다움은 순수함을 잡으려는 욕심이고 그래서 순수함을 결국 훼손시키는 폭력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시선은 한계가 있다. 너비와 깊이 또 지속시간에서 모두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결국 바라보는 행위조차 순수함을 잘라내는 것이다. 아름답다면서 무엇과 무엇을 갈라놓고 무엇만을 더 오래 기억하려고 하는 것 그 자체가 일종의 불순함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것 자체가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자신을 아름다움의 시작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그 누구도 자신만의 힘으로는 아름다움을 얻어낼 수 없다. 무엇보다 일단 만나야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어떤 단계에서 조차 순수한 자기만의 의견을 가질 수도 없다. 오래된 무한에 가까운 기억들이 나를 속이고 나의 의견에 남들의 의견을 섞고 티가 나지 않게 흔들어 놓는다.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모르겠다고 하고 내 이름을 써 놓았지만 그게 나의 것일까 나는 결국 무엇일까 하는 질문만은 절대로 지울 수가 없다.


순수하게 넓은 지평에서 나의 우연한 위치와 나의 보잘것없는 선택이 실은 내가 하는 건지도 모를 선택이 모여서 만든 조악한 형상. 그러니까 무엇도 열광할 만큼 대단하지 못하고 또 무엇도 경멸할 만큼 나쁘지 않다. 결국은 하나의 다 우연한 조각일 뿐.


하지만 길을 즐긴다는 불순함은 길을 하나로 보지 않는 일에서만 가능한 것. 한 걸음이 한 걸음과 다르다고 믿게 만드는 몹쓸 자의식이 결국 오해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를 한 걸음과 다른 한 걸음이 있다고 믿게끔 만드어 주는 것.


결국 예술이 종교에 기대어 생명을 이어왔지만 그것은 일종의 기만이었고 예술은 종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차라리 다른 종교 인지도.


예술을 한다는 것은 내가 우연한 기회에 잘라 가진 무엇으로 ‘이건 정말이지 ‘무엇’ 을 의미하고 있어!’ 라며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일. 그러니까 그것은 곧 위험한 포교인 거다. 성공하면 권력을 가지지만 실패하면 돌을 맞거나 쫓겨나 굶주리게 되는 것.



돌아가는 길에 난관을 붙잡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따라 나도 난관에 붙어 노을 안에 선 에펠탑을 찍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쓰고 그래서 결국 무엇이고 싶은 걸까.


바람이 차서 상점에 들려 털모자를 사려다가 맞는 것이 없어 두고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작은 광장에 모여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을 지나 또 두어 번 긴 계단을 걸어 육중한 엘리베이터가 있는 Abbesses역으로 돌아갔다.


글, 이미지 레오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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