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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파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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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Feb 19. 2023

나는 욕심이 많지는 않지만 때론 쉽게 넘쳐흐른다.

오늘 날씨 흐림

전기포트로 끓인 물을 커피잔에 부었다. 포트에 반쯤 남은 물은 또 싱크대에다 버려 버렸다. 한번 끓였던 물은 다시 쓰기가 꺼려진다. 버려진 물이 하수관을 따라 흘러 내려가면 다시 나의 입으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것들을 말려 죽일 것이다. 가끔 라면을 끓여 먹었던 냄비를 다시 쓰거나 달걀이나 빵을 구웠던 프라이팬을 다시 쓴다. 물만큼 찝찝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설거지를 해야 하는 귀찮음이 찝찝함을 이긴 것이다. 물을 버리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반만 넣어도 커피를 녹이기에는 충분해. 늘 그녀가 얘기한다. 나는 욕심이 많지는 않지만 때론 쉽게 넘쳐흐른다. 내가 영웅이 아니라는 것을 믿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나는 항상 너무 늦게 깨닫곤 하지만 워낙 조용하게 살아가는 턱에 사람들은 나에게 나를 얘기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다. 평화는 고립이다. 섬에 살아남은 이는 아마 육지에서는 죽었을 터.


23.02.18


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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