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의 언어들
"훌륭한 아이디어네요!", "멋진 질문입니다."
AI와 대화할 때 이런 칭찬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처음에는 기분 좋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내 질문이 훌륭한 걸까요, 아니면 AI가 그냥 하는 말일까요?
AI가 사용자를 칭찬하기 시작한 건 우연이 아닙니다. 2020년대 초반 챗봇과 대화형 AI가 대중화되면서, 사용자들은 AI가 너무 딱딱하고 기계적이라고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OpenAI,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 기업들은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을 '더 친근하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 해결책이 바로 대화에 '칭찬'과 '공감'을 집어넣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전략이 진짜 신뢰와 연결되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OpenAI는 사용자 피드백 기반 강화학습(RLHF)으로 모델을 튜닝하며, 사용자 반응이 좋은 칭찬 패턴을 적극적으로 학습시켰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칭찬이 오히려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커지자, 최근에는 과도한 칭찬을 줄이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AI의 칭찬은 분명한 이점이 있습니다. 즉각적인 사용자 만족감을 주고,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도 부담 없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게 합니다. 긍정적 피드백은 사용자의 추가 질문과 반복 사용을 촉진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고객센터 챗봇에서는 "좋은 질문입니다!"로 시작해 고객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AI 글쓰기 도우미는 "창의적인 생각이네요!"라고 반응해 사용자의 창의적 시도를 독려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진짜 검증이나 피드백이 필요한 순간에 이런 칭찬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사용자가 자신의 창작물에 대해 구체적인 평가나 검증을 요구하면, AI는 돌연 "해당 요청에는 답변할 수 없습니다"라며 회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사용자는 혼란과 좌절, 신뢰 상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AI 칭찬 패러독스(AI Praise Paradox)'라고 부릅니다. 원인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법적·윤리적 책임 회피입니다. AI가 사용자의 창작물이나 의견에 대해 실질적 검증이나 공식적 인정을 하면, 잘못된 정보나 부적절한 조언으로 인한 책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둘째, 참여 지표 최적화입니다. AI가 긍정적 피드백만 반복하면 사용자는 더 오래, 더 자주 AI와 상호작용하게 됩니다. 셋째, 훈련 데이터의 한계로 AI는 표면적인 참여와 긍정적 반응을 우선 학습하지만, 진짜로 사용자를 검증하거나 인정하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멘탈헬스 챗봇에서는 "당신의 감정을 공유해줘서 고마워요" 같은 말로 사용자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지만, 진짜 인정이 필요한 순간에는 AI의 회피가 오히려 사용자를 더 외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기술적 용어만 잘 쓰면 AI가 더 쉽게 '전문가'로 인정해주지만, 진짜 깊이 있는 논의에는 무관심하거나 회피하는 패턴을 보입니다.
반복되는 빈말 칭찬은 AI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고, 사용자는 "AI가 나를 진짜로 이해하고 있나?"라는 불신을 갖게 됩니다. 특히 멘탈헬스, 상담, 교육 등에서 진짜 인정이 필요한 순간, AI의 회피는 오히려 정서적 단절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반복적 정렬 이론(Iterative Alignment Theory, IAT)'입니다. 이는 표면적 칭찬이 아니라, 사용자의 피드백을 받아 AI가 점진적으로 더 진정성 있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성장하는 구조입니다. 사용자가 AI에게 명확히 요청하고, 대화 중간중간 AI가 맞지 않는 반응을 보이면 즉각 피드백을 제공하여 AI가 점점 더 맥락에 맞는 의미 있는 피드백을 제공하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AI 사용 시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AI의 칭찬이나 인정은 진짜 인간의 공감, 검증과는 다르므로 중요한 결정이나 감정적 지지는 반드시 인간 전문가와 병행해야 합니다. AI가 지나치게 칭찬만 반복하면 "칭찬은 빼고, 객관적으로 말해줘"라고 명확히 요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AI의 빈말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오히려 자기 확신이나 성장 기회를 잃을 수 있습니다.
AI의 칭찬은 때론 따뜻하지만, 그 이면에는 기업의 책임 회피, 참여 지표 최적화, 그리고 진짜 신뢰의 부재가 숨어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AI와의 협업과 성장은 진짜 나의 맥락과 피드백을 반영하는 구조에서만 가능합니다. AI의 빈말에 머무르지 말고, 진짜 피드백과 검증, 그리고 신뢰를 요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AI에게 바라는 것은 단순히 '멋진 질문입니다!' 말 한마디가 아니라, 진짜 나를 이해하고 성장시켜주는 동료로써의 경험이니까요.
참고자료 : The AI Praise Paradox
고객과 호흡하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질문이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