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분이랑 잘 지내고 싶은데… 제 말을 할 틈이 없어요."
지난주 저녁, 트레바리 클럽원에게 들은 말이다. 회사 선배 때문에 고민이 깊다고 했다. 선배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인데, 대화가 끝날 때마다 왜인지 더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 하소연을 듣고 있자니, 문득 나의 부끄러운 과거가 보였다.
2.
처음 팀장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팀원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는 짧게 상황을 얘기했고, 나는 지레짐작으로 솔루션을 제시했다. "일단 이렇게 해보고 다시 얘기해 봅시다." 그는 무표정한 채로 알겠다고 했다.
몇 달 뒤, 그와 마음을 터놓을 만큼 친해졌을 때 다시 그때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울면서 말했다.
"그때 정말 억울했어요. 제가 이미 다 해본 방법이었거든요. 저는 그냥 팀장님이 제 얘기를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주길 바랐는데… 정작 제 마음을 말할 기회가 없었어요."
머리를 한 대 띵 하고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도움을 주었다고 착각했지만, 그에게 나는 그저 '말 많은 팀장'이었을 뿐이다.
3.
말 많은 걸로 하면 우리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나이를 드실수록 묻지도 않은 일상을 말씀하시고 잔소리도 하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번도 불편한 적이 없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어머니의 말에는 항상 어머니가 아닌 아들이 먼저 있었다. 내 안부, 내 걱정, 내 미래가 먼저 있고 그다음에 말이 따라온다. 우월해 보이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아들이 잘됐으면 하는 진심이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말의 양이 문제가 아니었다. 말의 출발점이 '나'를 향해 있느냐, '상대'를 향해 있느냐의 문제였다.
4.
팀원과의 그 사건 이후, 나는 스스로를 점검하는 습관이 생겼다.
질문의 비율을 살핀다. 티키타카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야 좋은 질문이 나온다. 궁금함이 없는 질문은 공허하게 겉돌기 마련이다.
도움은 상대가 원할 때만 꺼낸다. 먼저 나서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배려가 아닐 수 있다. 상대가 요청했을 때, 성공담이 아닌 실패담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꺼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월감에서 말하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묻는다. 무례함은 대부분 여기서 출발한다. 가르치려 들거나 우위에 서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섞이면, 상대는 본능적으로 그 무게를 느낀다.
5.
내가 대학교에서 광고를 전공할 때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기억하는 인상 깊은 정의가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생각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나누는 것'이라는 점이다.
오늘의 대화에서 나는 얼마나 말했고, 상대는 얼마나 말했을까. 대화가 끝난 후, 상대의 표정은 가벼워 보였을까.
나는 이미 그 표정에서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