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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동훈 Nov 12. 2021

MBTI를 묻는 시대



요즘엔 좀 사그라든 것 같지만, 여전히 MBTI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특히나 새로운 사람들과 어색한 분위기를 해소하는데 MBTI만큼 좋은 것 없는 것 같다.
맹신하거나 극도로 불신하는 사람들 외에는 그럭저럭 친밀한 분위기 형성에 괜찮은 것 같다.

얼마 전, 새롭게 시작한 스터디 사람들과 처음으로 대면모임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였을까, 누군가 서로에게 MBTI를 묻기 시작했다.

“저는 I인데, 00님은 혹시 무슨 유형이세요?”
“저요? 맞혀보세요 ㅎㅎㅎ”

같은 유형인 사람들끼리는 같아서 깔깔대고, 다른 유형의 사람에게는 정말 그런 것 같다고 끄덕끄덕거리면서 어색함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처음 MBTI를 언급한 사람이 물었다.
“그거 아세요? ‘나 기분 우울해서 머리했어’라는 말에 답하는 방식으로 성향을 가를 수 있대요!” 다들 어떻게 대답하세요?

이때 대답별로 성향을 가르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무슨 일 있어? 머리해서 괜찮아졌어?” - F유형(감정형(Feeling)이다.
“파마했어? 아니면 볼륨매직?” - T유형(사고형(Thingking))이다.

근데 두 가지 유형에 내가 원하는 답은 없었다!
나에게도 묻길래 이렇게 답했다.

“우울한데 왜 머리를 해?”
혹은
“우울해서 머리를 한 건 좋아. 근데 그걸 왜 나한테 말해?”

이 대답을 들은 스터디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경악을 금치 못하며 그러면 안된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그러면 안 될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우울해서 머리를 한다거나
그걸 굳이 내게 와서 말하는 것은 여전히 이해가 안된다. 어쩌라고?

그렇다고 해서 남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 건 아니다.
누군가 머리를 하거나 옷을 새로 사면 나름 잘 알아차리긴 한다.
먼저 얘기를 꺼내서 기분좋게 한 경우도 많다. 착각이려나?
또는 아무리 머리를 했다고 말해줘도 도대체 뭘 하긴 한 건가 생각할때도 있다.
이런 건 어떤 유형인가?

뜬금없이 MBTI가 유행이 되어 여기저기서 언급되는 걸 보면서 흥미롭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의문이기도 했다. “전 세계에 70억명이 넘는 사람이 있다는데, 이걸 어떻게 유형화하지?”

의문은 걱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MBTI를 묻고 자신이 생각한 바와 다르거나, 자신과 맞지 않는 유형임이 드러났을 때(서로 상극이거나 찰떡인 유형을 알려주기도 했다) “넌 나랑 못 놀겠네”라거나 “넌 나랑 너무 잘 맞겠다!”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하는 모습을 봤을 때, 또는 MBTI를 맹신해 누군가의 성격유형을 듣고 “아 ~ 너는 이런저런 사람이구나?”라며 성급히 사람에 대한 판단을 마쳐버리는 것들을 목격했을 때 MBTI는 단순히 반짝하다 사라질 유행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뭐든지 무조건 수용하는 태도와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 그리고 어떤 것을 맹신하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된다. MBTI를 단순히 재미나 흥미로 바라볼 때는 훌륭한 분위기 메이커가 될 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 여겼을 때 후폭풍은 엄청나다. 사람은 결코 16가지 성격유형으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 또한 ESTJ(사교적인 외교관) 이라는 성격유형을 가지고 있지만, 때에 따라 극도로 내향적일 때가 있고, 이성적인 사고와 감정적인 행동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번갈아 나타날때가 있다. 4개의 알파벳으로 규정할 수가 없는 것이 곧 사람이자, 인격이다.

스터디 모임 하나에 대한 사족이 길었다. MBTI를 떠나고서도 우리는 너무나도 성급히 많은 것들에 대한 판단을 마쳐버리지는 않는지 생각해본다. 도서관 옆에 앉은 사람이 코를 골며 자는 걸 보고 무례하고 개념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거나, 퉁명스럽게 대꾸하시는 가게의 사장님을 예의 없다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알고 보면 비염이 너무 심해서 자신 또한 고통받고 있을지도 모르고, 최대한의 친절을 베푸는 것일 수도 있는데도. 그만큼 인간은 수없이 많은 판단(틀릴 가능성이 다소 높은)을 한다. 이 글을 쓰면서도 주위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성급한 판단을 많이 했다.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인지한 이상, 의식할 수 있고, 줄일 수 있다. 그것 또한 인간이기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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