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새 학기기가 되면 각 과목의 첫 시간마다 선생님의 혈액형을 묻는 친구가 있었다. 결과는 네 개 중 하나. 아니 하나가 더 있다. 끝까지 선생님 본인의 혈액형을 말씀해 주시지 않아 알 수 없는 미궁형이다.
그 친구가 선생님의 혈액형 정보를 수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혈액형별로 선생님들의 시험 출제 유형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특정 혈액형의 선생님은 꼬고 꼬아서 문제를 낸다고 한다. 그런 경우는 아무리 공을 들여도 만점에 다다르기 어려워, 목표 점수를 90점대로만 맞추고 다른 과목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참 기발하다. 어린 나이에도 그 사실이 꽤 참신하고 우스웠는데, 지금 생각해도 유쾌한 기억이다. 그 친구는 재수해서 서울대에 입성했다. 그런 결과가 있으니 내 눈에 그 친구는 전략가다.
이것도 과학의 발전이라고 해야 할까. 과거 부모님께 물려받은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나누던 것을 지금은 십육 등분으로 분류하여 성격과 행동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너의 MBTI는 뭐야?'
5, 6년 전만 해도 ‘그게 뭐야’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더 많았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이 네 개의 알파벳 지표로 자신을 설명한다. MBTI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약간의 인내심만 내어주면 된다. 인터넷 질문지에 답하는 시간만 기다려 준다면, 십분 뒤 우리는 그 사람을 열여섯 칸 중 한 칸 안에 넣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아, 너 그런 성격이구나’ 예측할 수 있다. 그 사람의 행동 양식을 조금 오래 관찰한 사람이라면 일반인들도 심리학 전공자인 양 상대방의 MBTI 추측도 가능하다.
MBTI는 사람의 성격과 기질을 설명해 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고맙게도 직업군, 타인과의 궁합도 맞춰준다. 우리 직장에서도 가볍게 조사한 적이 있다. 특정 MBTI 인자를 갖는 직원들이 70퍼센트 이상이었다. 그 결과를 보면 사뭇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산업에 여성이 진출해야 하는 시대적인 필요성 속에서 적합한 직무를 찾아 줄 목적으로 개발되었다고 하니 이 검사 결과를 무시하지 못하겠다.
지구상에는 80억 유형의 MBTI가 있을 텐데, 이 열여섯 유형의 분류는 관계 속에서 여러 기능을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다른 생각을 하거나 행동할 때 ‘내가 비정상인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올 때가 있다. 죄지은 것도 아니면서 뭔가 어깨가 움츠러드는 상황도 있다. 이럴 때 주변인들과 MBTI가 다르다는 정보는 ‘나는 이래서 그렇다.’, ‘그들은 그래서 그렇다. 라는 논리로 나를 설득하며 그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피도 나눌 수 있는 혈맹 같은 끈끈함까지는 아니겠지만, 열여섯 명 중 한 명은 나를 이해할 것이라는 동지애로 움츠러진 어깨를 잠시 펼 수 있다. 다른 유형의 사람들을 대할 때는 그 사람의 성향을 받아들이고 그 자체를 인정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선입견으로 보이지 않는 선을 그을 수도 있다. “너 혹시 T야?” 요즘 유행하는 T와 F 논쟁이다. T(Thinking) 유형은 논리, 분석을 근거로 판단한다. 반면 상대적인 F(Feeling) 유형은 관계를 참작해서 결정을 내리기에 공감형으로 해석된다. 나 같은 F 부류는 T 유형의 사람을 공감 못 하고 인간미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 그 관계를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더 마음을 열지 않고 기계적인 대화만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내가 호감 가는 T 상대에게는 나에게 없는 그런 냉철한 모습이 매력이라고 후한 평가를 하기도 한다. 과학적 심리 분석의 결과물도 내로남불 표현처럼 일관성 없이 적용하는 것이 우리의 한계다.
한 가지 신기한 점도 있다. MBTI는 바뀌기도 한다. 극단적으로 끝에 있는 성격이 아니고서야 I(내향형)과 E(외향형) 성향이 바뀌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P(인식형)와 J(판단형)가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이 말은 시기와 주변 상황에 따라 나 자신이 변한다는 것일까. 아니면 나의 기질은 그대로인데 드러나는 모습이 변했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검사는 신뢰할만할까.
이런 성격 검사를 재미로 보면서 나를 알고 관계를 이어 나가는 데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가 있다. 나를 알기 위해 하는 검사인데 내가 나를 평가해야 한다. 검사를 하는 과정에 온전히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솔직하게 나를 보여야 한다. 이제 정말 객관적인 나인지 내가 생각하는 나인지는 모를 일이다. 어쩌면 내가 추구하고 싶은 나일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것이든 나를 깊게 들여다봐야 할 일이다. 나를 알기 위한 과정이 고차원의 과학적 분석이라 할지라도 '너 자신을 알라' 하셨던 소크라테스의 말씀은 역시 기본 중의 기본임을 깨닫는다. 결국, 나를 알기 위해서는 나를 성찰하는 눈을 떠야 한다.
선생님의 혈액형을 묻던 그 친구는 요즘 MBTI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고 있을까. 그 당시 선생님들의 혈액형 대신 MBTI를 묻고 그것에 맞게 전략을 짜고 공부했다면, 더 치밀한 전략으로 시험을 준비하여 재수를 면했을까. 아니면 네 배나 고된 전략을 짜느라 삼수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