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다. 1년 중 가장 좋아하는 달이다. 겨울을 견디어 낸 무채색의 잔가지 사이로 하루가 다르게 발그레한 꽃망울과 연두연두한 잎이 솟아나는 걸 보고 있는 것이 마냥 좋다.
이제는 일반적 물리 법칙이 되어버린 ‘나이와 인생 체감속도 비례 법칙 ’. 20대엔 20, 40대는 40, 60대가 되어서는 60킬로미터의 속도로 세월이 느껴지는 것이 인생이라던가. 누가 정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상대성 이론보다 우수한 설명이다.
내 인생이 40킬로미터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을 무렵, 속도가 마치 나를 잡아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 이렇게 내 인생이 쏜살같이 달려가다가 막다른 도로 위에서 휘리릭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두려움에 떨다 속도의 무서움을 극복할 나만의 방법을 찾았다. 일 년에 한 번씩 발을 꼭꼭 밟아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매년 4월에 했다.
매년 한 번은 속도를 늦춰 앞만 바라보던 고개를 돌려 창밖의 꽃 구경을 한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개심사 청벚꽃이나 달맞이고개의 화사하고도 시원한 벚꽃 사진을 눈으로 찍어두고 나면 그해의 잔상이 기억에 남고, 기억이 풍성해질수록 시간은 더디 갔다. 그런 시간을 가지며 푸릇한 잎들과 다시 한번 시작되는 나의 새로운 한 해를 격려했다.
그런데, 아뿔싸, 어느덧 사월 말이다. 사월 말이 다 되어가도록 아파트 단지 내 꽃나무 한 번을 올려다보지 못했다. 나는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는데 연두 잎들은 푸릇푸릇하게 짙어지며 무게를 뽐내고 있다. 나의 시간을 도둑맞아버린 느낌이다. 작년과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니 올해 근무지가 바뀌고 일의 무게가 무거워져 있었다.
인사발령 한 줄로 자리와 역할이 정해지는 것이 내 직업의 숙명이라지만, 올해의 인사발령은 여느 해와는 다르게 4월까지 주위의 아무것도 신경 못 쓸 만큼 나의 영혼을 앗아가 버린 무게였다. 더불어 잠시도 브레이크를 밟지 못한 올해의 내 인생 속도는 멈춤 없이 계속 달리고 있었다.
그날도 굳어진 어깨에 무거운 서류 가방을 메고 회의 참석을 위해 서울 출장을 가는 KTX 안이었다. ‘딩동’, 핸드폰 문자 하나가 울린다.
‘가입하신 보험 계약의 보험료 납입이 완료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
20년 납 80세 만기의 보험 두 개의 보험료를 이제 내지 않아도 80세까지 그 회사에서 나를 지켜준다고 한다. 그 보험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우체국에 입사한 친구의 권유로 들었었다. 그 친구도 여전히 직장인으로 20년을 꼬박 채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같이 떠올렸다. 통장을 스쳐 가는 월급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이 월급쟁이 애환이라지만, 그런 애환을 240번은 족히 감당해 내며 하루 8시간 꼬박 내 자리를 지키며 켜켜이 쌓아온 그 월급으로 보험료 납부를 마쳤다.
출장길 옆에 앉은 후배에게 문자를 보여주며 말했다.
“나, 20년 일해서 보험료 납입 끝냈대”
“팀장님, 대단하시네요, 20년이요? 와….” 한다.
나는 안다. 이것은 녀석의 12년 후 대단한 모습이라는 것을. 월급쟁이에게 다른 선택을 하는 것엔 굉장한 기회비용이 따르기에, 8년이나 묵직이 자기 자리를 지킨 월급쟁이가 다른 선택을 할 기회는 희박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이 마치 대단함으로 포장되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특별한 재주도 기술도 없는 평범한 월급쟁이다. 가끔 기분 전환으로 네일 서비스를 받을 때 한낮 손톱에 젤을 바르는 기술 하나 없는 나 자신에 대해 부끄러운 생각이 들 때도 있다. 2, 3년 주기로 맡은 업무가 바뀌기에 일에 대한 내공도 전문성도 깊어지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20년간 묵묵히 일한 나를 칭찬할 점도 캐어 내 봐야겠다. 생각해 보니 어느 자리에서건 주어진 자리에서 책임감과 인내로 끈기 있게 버티었다는 것. 그걸 가능하게 해 준 나의 엉덩이 힘을 칭찬해야겠다. 아직은 출근할 자리가 있고 나의 의지만 있으면 하루 정도 휴가를 내어 바깥바람을 쏘일 수 있다는 것, 꽃과 단풍을 보며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는 감사함이 세월의 속도감과 비례해 깊어지는 것은 월급쟁이에게 주어지는 보너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