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국어교사가 아닌 장교로 21년 근무하고 사회에 나오니 이력서를 써도 받아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국어 중등교사 2급 자격증이 있으니 국어교사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노량진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교육학 국어전공 수강료를 납부하고 강의실을 찾아다니며 공부하니 20년은 젊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도전 첫해는 정말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는 독서실에서 살았습니다.
첫해 시험은 국어전공은 합격선 보다 무려 4점이나 높은 점수였는데 교육학이 하도 말장난을 많이 꼬아서 문제가 무얼 묻는지 알 수 없는 상태라 확실히 아는 것 답을 쓰고 모르는 것은 아는 답 수가 가장 적었던 번호 2에 몰빵을 했다.
낙방이었습니다.
눈물을 전기 대학 떨어져 울어보고 30년 만에 불합격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천주교 신자지만 철학관을 찾았습니다.
지금은 없어졌는데 서정리 성당 근처에 중학 동창 회두 거사가 운영하는 청명철학원에 갔습니다.
거사님 나에게 관운이 남아 있나요 물었더니 국가의 녹을 먹을 운은
4급 벼슬운인데 다 사용했다고 했다.
도전해 봐야 가능 없다는 소리에 임용 공부 수험서를 참사랑 국어 카페에 선착순 3명 착불로 보내주고 임용을 정말 접었다.
임용은 접었는데 강원도 국어교사 원서 제출 첨부물이 중학교 고등학교 6년 생활기록부 사본이었다.
요즘은 전산화로 본인 신분증과 발급 비용만 준비하면 어느 학교나 발급이 가능하지만 그때는 출신 학교를 찾아가야 했다.
대방동 S중학교에서 발급받고 흑석동 모교를 갔다. 고등학교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병원이 우람하게 서 있었다.
염치 불고하고 안내 데스크에 물었다. 제가 여기 부고 13회 졸업생인데 학교 어디로 이전했나요?라고 물으니 웃으면서 이전한 지 10년 넘었는데 학교 졸업하고 모교 한 번도 안 오셨어요? 예. 처음입니다라고 했다.
도곡동 숙명여자고등학교 바로 옆에 부여고까지 합해 공학으로 이전했다고 알려주었다.
학교에 가니 최신 시설로 다시 고등학생이 되고 싶은 맘이 들 정도로 시설이 좋았다. 행정실에 가서 신분증을 내고 졸업증명서와 생활기록부 사본을 발급받았다.
그럼 뭐 할까요 물었더니 돈 없이는 살 수 없으니 건설일용직으로 일하다 어느 순간 쉴 때가 올 거야. 그때부터 글을 쓰게나 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회두거사가 내가 몸 다칠 운세를 기분 나쁠까 봐 쉴 때가 올 거라고 표현한 것 같다. 나는 다리를 다쳐 병원신세를 몇 년 지는 동안 습작을 했고 작가가 되었다.
뉴스에는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했다거나 학부모가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힘들게 한다고 한다. 나 어린 시절은 선생님 그림자도 안 밟는다고 했는데 격세지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