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마음 하얀 마음 3

손자는 문해 교사

by 함문평

할머니는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할아버지는 서당에서 최고과정인 사서삼경과 통감까지 공부하였고 만주일대에서 아편 운반 심부름을 하다 아편 장사를 하기 위해 흥정 거래와 돈 계산 할 정도의 중국말 일본말을 하셨다.


할머니는 1910년 개띠 할아버지는 1911년 돼지띠였다. 할아버지의 최고의 욕은 에이 천자문도 모르는 년 또는 놈이었고 할머니는 최고 수치스러운 말이 천자문도 모르는 년 소리에 경기를 일으켰다.


요즘 같으면 신혼 초에 이혼해야 할 두 분이 싸우면서도 공통점은 장손 바보였다.


두 분이 다투다가도 장손이 할아버지 할머니 그렇게 싸우시려면 나 공부 안 하고 우리 모두 횡성 다시 들어가 소나 키우며 살자 하면 싸움은 즉시 중지되었다.


할머니와 난 대방동 S중고등학교 야구장 담장 너머에 살고 작은 아버지는 수유리 신일 중고등 학교 근처에 사셨다.


지금은 대방천 사거리에서 수유리 가는 버스가 150번인데 그 시절은 26번이었다.


할머니가 글을 모르니 할머니가 작은댁에 가고 싶으면 꼭 손자가 동행하거나 할아버지가 대동해야 했다.


할머니에게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다. 할머니 내가 한글과 숫자 가르쳐줄 테니 배우실래요 물었더니 네가 선생님도 아닌데 어떻게 가르치니 하셨다.


꼭 사범대학교 국어교육과 나오면 더 잘 가르치겠지만 할머니 길거리 간판 읽는 것과 시내버스 번호 26번 111번 211번 구분해 탈 수 있게 가르치는 건 손자도 할 수 있어요 했다.


그 주 토요일 일요일 그다음 주 토일 가르쳐드리고 실습을 했다.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원석문구점 간판 복덕방 대방교회 간판을 읽으셨다.


잘하셨어요 100점입니다 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지나기는 버스 번호를 읽게 했다.


마지막 실전으로 저는 할머니 뒤 1미터 간격 두고 따라만 길 테니 26번 타고 버스 안내양이 신일중고 내리라고 하면 내리는 것까지 해보세요 했더니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틀림없이 신일중고에서 하차하셨다.


하차하지 마자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까막눈으로 답답하게 살았는데 장손 덕분에 장님이 눈 뜬 기분이라고 펑펑 우셨다.


울음을 그치고 수박 한 통을 사들고 작은집 사촌 동생들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

할머니에게 기초 한글과 숫자를 알려드려서 할머니가 혼자 작은댁에 간다기에 다녀오세요 했다.


할머니가 혼자 26번을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고 수유리 신일중고등학교 안내방송을 들었는데 동작이 굼떠서 한 정거장을 지나서 내리셨다.


자신 있고 담력이 되는 사람은 그까짓 거 하면서 길 건너 정류장에서 반대로 한 정거장 오면 되는데 할머니는 당황해서 식은땀이 흐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나가던 여학생이 할머니를 수상히 보고 할머니 어디 아프세요 물었다.


할머니는 종이에 손자가 적어준 메모지 작은집 주소와 작은집 전화번호 신일중고에 내리면 횡단보도를 건너서 전파사를 끼고 골목으로 들어가 세 번째 집이라는 메모를 보여주었다.


그 여학생은 할머니를 모시고 한 정거장 버스를 같이 타고 메모에 적힌 작은집에 할머니를 모셔드렸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법한 것이 작은집 바로 옆집이 그 여학생 이모네 집이었다. 길 잃은 할머니를 안내해 드리고 이모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세상에 그녀도 중3이었다.


할머니가 작은집에서 대방동으로 일요일에 오셔서 그간 이야기를 했다. 바른생활 사나이 가경 선생은 그다음 주 토요일에 그 여학생에게 고마움 표시로 수유리에서 저녁 식사 대접을 했다. 나도 동행하여 자연스럽게 그녀를 알게 되었다.


고입 연합고사가 끝나고 우리는 같은 학원 종합반 반편성 시험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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