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마음 하얀 마음 8

나는 고아다

by 함문평

몇 년 전 초등학교 동창이자 나를 문학의 길로 안내해 준 조성복 시인이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소식을 나는 고아다라고 해서 이 나이에 무슨 고아야 고아 아닌 사람이 더 적은데 했다.


치매라도 살아 계시는 동안 자주 뵙거라 했는데 그래 대답은 하고 2년 동안 6번 뵈었다.


광복절에 돌아가셨다.

생일이 음력 추석 다음 날이라 살아계실 때 생일상이 추석에 먹고 남은 음식이지 내 생일이라고 따로 만든 음식은 미역국뿐이라는 불평을 하셨다.


광복절 금년 음력으로 7월 일인데 동생들에게 어머니 추모모임을 기억하기 좋게 광복절로 하자고 제안했다.


음력으로 기일을 보내면 그날이 매년 변하는데 광보절로 정하면 직장 다니는 손자 손녀들도 연차 내는 번거로움 없으니 좋겠다고 동의를 했다. 어머니 편히 쉬셔요. 고아지만 씩씩하게 살게요.

어머니는 참 불행한 여인이었다.

외할아버지 자식들이 2남 3녀인데 아들 둘만 중학교에 보내고 큰 이모와 어머니는 학교도 안 보냈다.


막내 이모만 여고를 나왔다. 막내 이모가 방학 때 시집을 간 언니를 방문하여 한글을 가르쳐주었다. 큰 이모와 어머니는 막내 이모가 한글을 깨쳐준 선생님이다.


어머니 일기를 초등학교 4학년 때 보게 되었다. 맞춤법 받침이 틀리고 소리 나는 대로 쓴 엄마의 일기에는 시집살이 고달픔과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적혀있었다.


맞춤법은 틀리지만 발음 나는 그대로 썼다.

우리 남매들이 공책 사용하다 학년이 끝나면 버린 노트 뒤에 사용 안 한 부분을 뜯어서 노끈으로 묶은 엄마의 일기장에는 어머니가 태어나서 기억할 수 있는 최저 나이 7세 정도부터 6.25 피난 이야기 외할머니 중풍 맞은 걸 아버지가 고쳐준 이야기 내가 쌍둥이로 태어났으나 형은 홍역을 앓다가 죽은 이야기 등등 엄마의 미니 자서전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지도사님이 어머니 관에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라고 해서 중학생 시절 어머니가 시골서 가져온 늙은 호박을 들고 가기 무겁다고 대방동 S중힉교 언덕길에 내동댕이 쳤던 일이 생각나서 엄마 호박을 던져버린 거 죄송했어요라고 썼다.


살아계실 때 자주 찾아뵈라는 먼저 부모님을 보낸 친구들의 말을 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는가를 후회했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어머니가 비록 치매지만 어떤 때 알아보실 때 눈물을 흘리시며 장남이 면회 온 것을 좋아하는 걸 왜 자주가지 못했을까 후회가 되었다.


어머니는 치매요양윈과 원주의료원 중환자실을 여러 번 왕복하다 돌아가셨다. 마지막 임종 전에 어머니를 뵈려고 갔더니 형제들 순서를 정해서 한가족씩 1일 오전에 한 번만 면회가 허락되었다.


좀 더 어머니 건강이 악화되기 전에 뵈러 오지 못했나 후회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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