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겨울바람이 불고 기말 시험만 보면 방학이고 해가 바뀌면 졸업이었다.
할아버지가 소를 팔아 서울로 유학시킨 이유가 경기고 찍고 서울대 가는 것인데 이미 박지만 때문에 경기고 가는 것은 원천봉쇄되었다.
처음으로 박지만 보다 늦게 태어난 것에 화가 났다. 그렇다고 아버지 어머니에게 왜 결혼을 늦게 했냐 따질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방학에 3일 정도 고향에 다녀오면 큰 여동생이 오빠는 서울가 공부하느라 엄마 이버지 싸우고 화나면 엄마 때리기도 해 했다.
여름방학에 고향에 다녀오면서 감자와 옥수수 가져온 것을 절반 나누어 그녀의 집으로 갔다. 초인종을 누르니 문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나왔다.
지금 어머니 아빠 전쟁 중이니 돌아가 미안해했다.
가는데 이거 받아. 횡성에 다녀왔는데 어머니가 싸주신 거 딱 반으로 나누어 가져왔다.
어머나 나 옥수수 좋아하는데 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연말에 장군 진급 심사에 그녀 아버님이 탈락되었다.
평생 바다의 사나이로 지냈고 자부심이 있었으나 그것도 지역이 전라도라고 안 되었다.
요즘이야 군대에서 장군 진급 심사에 사관학교 독식 전라도 제외가 사라졌지만 김대중이 목포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기명삼과 40대 기수론으로 언론을 장식하던 시절은 사관학교 이전 갑종 장교들과 사관학교 출신들이 장군 독식을 했고 전라도 출신은 어쩌다 생색내기로 장군이 되었다.
그녀 아버지는 대령으로 전역해서 모든 재산을 정리해 미국으로 이민 갔다.
그녀가 먼 곳으로 가고 나는 중학생이 되었으나 한동안 공부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이도 재미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경 선생이 물으셨다.
무슨 고민이 있냐기에 고민은 아니고 초등학교 친구 아버지가 전라도 출신이라고 장군이 안 되어
세월이 30년 흘러 내가 전시연합심리전사령부 군수참모를 하는데 그녀는 미국 측 군수 참모였다.
훈련브리핑은 영어로 하고 지내온 인생사 이야기는 우리말로 주고받았다.
그녀는 이민 초기에 한국에서 아버지가 전라도 출신이라 장군이 못된 것만큼이나 흑인 보다도 못한 차별 대우를 받고 공부했다고 한다.
미국은 인종 차별이 있어도 개인이 노력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나라라고 했다.
그녀 남편은 백인이었고 의사라서 자기가 군인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이번 훈련 마치고 귀국하면 전역할 것이라고 했다. 석별의 정으로 양주 조니워커 블랙라벨을 선물 받았다. 나는 그녀에게 하회탈을 선물했다.
우리나라는 인종차별이 아니라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별이 극심한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