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때 교생 선생님이 20명 중앙대서 부속고로 내려왔다.
국어 선생님은 첫 시간부터 교생 선생님에게 맡겼다.
문예창작과 4학년이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우리 모두 달밤에 춤을>이라는 작품이 최종 결선에 올랐으나 낙선했다고 한다.
그 시절은 각 신문사 낙선자들끼리 연락해 낙선집을 만들어 출판하는 출판사도 있었다.
그 이면에는 비록 낙선했지만 당선작에 문학적으로 지지 않다는 자신감의 표출이라고 생각했다.
교과서를 던져버린 수업을 했다. 교과서 대신 낙선집을 들고 와 우리 모두 달밤의 춤을 전문 낭독을 해주셨다.
학교 축제에 시인을 초청해 시낭송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예비 소설가가 자기 작품 전문을 들어본 학교는 우리뿐이라는 생각에 좋다고 했더니 우리 반 서울대를 목표로 공부하는 두연이와 정기는 언성을 높였다.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나가야지 입시에 하나도 도움 안 되는 달밤에 춤이나 읽고 미친 거 아녀라고 했다.
다음 시간은 교생 마지막 시간이었다.
교생 선생님이 작심하고 유신을 비판했다.
기생 관광도 비판했고 직접 박정희 대통령을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죽음을 두 여인이 지켜본 것에서 그때 그 수업이 이걸 예견한 수업 아닐까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해방 전후사 이야기 친일 행위자 정리 못한 것과 왜 남북회담 쇼를 하고 님이나 북이나 헌법 개정일이 12월 17일이냐 이것 북은 김일성이 영원히 통치하고 남은 박정희가 종신한다는 밀약이다 그런 이야기를 열변을 토할 때 내가 손을 들었다.
여기는 이과반인데요라고 했다.
순간 붐위기는 식었고 서울대 목표하는 두연이와 정기가 엄호 사격을 했다.
맞아요 우리는 이과반이라 그런 역사적 정치적 이야기는 문과반에 가서 하세요 했다.
교생 선생님은 창밖으로 구름을 보시더니 웃으셨다.
수입을 마쳤는데 교생실습 마친 소감이랄까 후기가 그다음 주 발행된 학교신문에 났다.
다음 해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는 10.26이 발성했다.
국가적 큰 사건이지만 우리 고3에게 중요한 것은 대입 예비고사와 본고사였다.
세월이 40년이 흘러 서울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그 교생 선생이 최성각 소설가라는 것을 발견하고 기뻐 최성각 검색하고 그가 쓴 책은 모두 대출받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