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학교사 시절

by 함문평

군에서 전역을 하고 잠시 야학교사를 했다. 나의 전임자가 기간제 학교교사를 하다가 임용고사에 올인하겠다고 급하게 후임 국어교사를 찾았다.


반대로 임용고사 두 번 떨어지고 3수를 고민 중에 회두거사가 이미 나의 국가의 녹은 소령으로 다 받았으니 국가의 녹은 이 시간 이후 기대하지 마라 해서 3명에게 책 나눔 하고 그가 하던 야학교사를 인수받았다.


정규 학교인가가 없기에 중학과정을 공부하고 고입 검정고시를 합격해야 중학 학력을 인정받았다.


학생 시절부터 교과서를 잘 가르치는 선생보다 교과서를 던져버린 선생을 좋아했던 터라 나도 야학에 나가 수업 중에 비가 내리면 창문을 열고 비를 감상하게 했다.


다음 국어 시간까지 비에 대한 자기만의 느낌을 원고지 5매에 써 오라고 했다.


나이 60대 50대 40대가 주축인 학생들에게 원고지 5매 쓰기가 만주벌판처럼 원고지가 넓어 보였을 것이다.


학생들은 힘들게 원고지 5매를 작성했다.


문제는 그런 나의 수업이 8월에 있을 검정고시에 전혀 도움이 안 될 거라고 걱정이 된 야학 교장 선생님이 작문 같은 거 시키지 말고 고입검정 시험에 나올 것만 가르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대답을 예 하기는 했어도 수업 시간에 작문을 시키지는 않았지만 학기말 과제로 학교를 그만둔 시기를 회상하는 글을 써 학기 마치는 날에 제출하라고 했다.


수업 시간에는 역대 검정고시 기출문제를 분석해서 수험생들이 많이 틀린 유형만 모아 가르쳤다.


이 학교 학생들도 교과서를 잘 가르치는 선생보다 던져버린 선생을 좋아하는지 그해 검정고시에 20 명이 응시해 국어는 19명이 합격선 이상의 점수를 받았다.


검정고시 합격이 되자 국어 시간은 교과서를 던져버린 시간을 만들었다.


학생 여러분 글이라는 것은 내 인생을 살면서 나의 생각 나의 느낀 점 혹시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것에 대한 진솔한 반성을 쓰는 것이 좋은 글쓰기라고 가르쳤다.


처음부터 글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좋은 글을 쓰겠다고 일 년 내내 생각만 하는 사람보다 일단 쓰고 일 년 동안 생각날 때마다 수정하는 사람이 좋은 글을 쓴다고 가르쳤다.


정말 나의 수업을 잘 들은 나이 많은 학생들은 철자법은 틀리지만 읽는 사람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 많았다.


1970년대 먹을 것이 부족해 입 하나 줄인다고 초등학교 졸업하고 남의 집에 가서 허드렛일 돌봐준 사연 중학교에 입학은 했으나 다음 분기 공납금을 내지 못해 담임 선생님 채근이 싫어서 자퇴하고 서울로 와서 하대하는 용어로 공돌이 공순이를 한 이야기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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