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고2 때의 일이다. 유신을 반대하는 대학생 형 누나들이 유신반대 유인물을 학교 선생님들 시험지 만드는 경필과 등사기를 빌려서 몰래 흑석동 내가 살고 있는 옆방 K누나 자취방에서 만들었다.
유인물을 신촌으로 가지고 가야 하는데 흑석동 84번 종점 옆 파출소에서 경찰들이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은 무조건 신분증 검사를 한다고 누나가 흑석동 경찰 허를 찌르는 작전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나에게 특수임무를 시켰다.
함 군 말이야 부탁이 있는데 교복 입고 가방에는 아무것도 없이 빈가방을 들고 우리 방으로 와 봐 핬다.
누나와 형들이 만든 유인물을 신촌 기차역 근처 XX다방에 가서 흑석동에서 부탁하신 물건 가져왔습니다라고 하면 거기 사장님과 아가씨들이 내용물만 빼고 책가방을 돌려줄 거야 했다.
흑석동 경찰이 버스정류장에서 검문 검색하는데 중대부고 2학년 교복을 입은 나는 경찰이 검문 없이 통과시켰다.
신촌에 약속된 다방에 가니 다방 주인도 심부름하는 아가씨도 학생 수고 많았어하면서 쌍화차에 계란도 올려주었다. 그날 흑석동으로 돌아오는 버스가 용산서 한강다리 넘을 때 기분은 개선장군 기분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에 터졌다. 신촌 일대서 데모하다 잡힌 인원이 불어서 누나가 서대문 경찰서에 잡혀갔다.
경찰서에서 그녀 본가가 있는 경주 경찰서에 의뢰하여 부모님이 서울에 왔다. 그녀 아버지는 월남전에도 참전했던 분이라 딸이 데모를 한다는 것은 빨갱이에게 포섭된 것으로 간주했다.
당장 경주로 가자고 대학교는 무슨 대학이냐 아버지는 목숨 걸고 베트콩과 싸우다 왔는데 딸년은 빨갱이 추종자라고 했다.
가경 선생은 그녀 아버지를 우리 집으로 오게 했다. 손자는 심부름으로 취향 대로 마시라고 소주 막걸리 맥주 세 종류의 술과 술을 못하는 할머니용으로 칠성사이다를 사 왔다. 요즘은 음료가 다양하지만 그 시절은 사이다는 칠성사이다 하나였고 할머니는 그거면 최고였다.
이때는 심부름만 했지 대학생 형님 누님들이 왜 데모를 하는지 유신헌법을 왜 반대하는지 몰랐었다.
대학생이 되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그 이전 12.12에 대하여 각종 기록을 찾아서 공부했다. 학생시절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를 개만도 못한 놈으로 알고 지냈는데 강신옥 변호사가 변호하면서의 회고담을 여기저기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설마 하였는데 박정희와 김재규를 공부할수록 박정희에 대한 충성심은 분노로 변했고 개만도 못한 놈으로 생각했던 김재규가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