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글에서 검정교복 덕분에 경찰의 검문을 피해 대학생 형님 누님들 데모 유인물 운반을 했는데 이번에는 헌병의 검문을 피하는 데 사용했다.
누나의 애인 결혼해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었는데 안양 수도군단에서 군 복무를 할 때였다.
면회신청해서 얻은 외박증으로는 위수지역 통제가 있어서 경기도에서 시간을 보내야지 서울로 오면 중간에 헌병 검문에 걸렸다.
누나는 애인 면회를 가면서 나를 대동했다. 면회를 토요일에 신청해 일요일 저녁 8시까지 귀대하면 되었다. 책가방 속에 청바지를 넣고 누나가 두툼한 외투를 들고 갔다.
군대 위병소를 나온 누나의 애인은 군복을 벗어서 군화와 함께 마크 오바로크 치는 집에 맡기고 내 교복을 입었다. 나는 가져간 청바지와 누나가 들고 간 외투를 입었다.
안양에서 서울행 시외버스를 탔다.
중간에 헌병이 검문을 하는데 머리 짧은 나를 검문했다. 나는 주민등록이 아직 미발급이라 중대부고 학생증을 보여주었다.
헌병은 가짜 학생은 교복을 입어서인지 검문이 없었다. 그렇게 한번 성공하자 누나는 내가 고교를 졸업하자 내교복을 가져갔다.
그때는 병사 복무기간이 36개월이라 병장 만기 전역까지 교복은 유용하게 쓰였다.
그 시절 36개월 복무 중에 대학교에서 교련을 이수했으면 복무 단축을 시켰다.
1학년 마치면 15일 2학년 마치면 1개월을 단축시켰다. 병장 말년 한 달은 엄청 큰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소대장이 되었을 때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최규하 대통령이 166만에 하야하고 전두환 대통령 시기였는데 마지막 교련 세대가 소대 있었다.
소대원 31명 중에 병장 14명 이병 13명 일병 2 상병 2명인데 14번째 병장이 교련 이수로 13명을 추월해 가장 먼저 전역을 했다.
어떤 이는 검정교복이 자율성을 없게 만든다고 교육적으로 부정적인 말을 한다. 하지만 나는 교복의 순기능이 빈부격차를 최소한 학교 내에서는 외모 복장서 표시가 나지 않아 좋았다.
요즘 교복이 없는 학교나 교복이 있어도 디자인 소재가 부자 동네 학생 교복과 가난한 동네 학교 교복이 표시가 나는 것은 교육적으로 좋은 것인지 교육 철학자 교육심리학자에게 물어보고 싶다.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있다. 학생들의 학교 폭력에 학부모가 선생님들에 대한 폭력과 경찰에 아동학대로 고발하는 건수가 늘어간다고 난리다.
교육은 나라의 100년을 준비하는 일이다. 대통령이 빨강조끼 출신이든 파란 조끼 출신이든 아직 한번도 대통령 만든 경험은 없지만 노랑조끼당 출신이든 일관성 있게 추진되었으면 좋겠다.